국정과제 선정 정부 속도전 더해 민주당 일부에서도 호응 기류…다른 국책은행에 미칠 파장도 주목
금융노조는 지난 9월 16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금융노조 집행부와 조합원들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까지 가두행진을 했다. 금융노조는 △점포 폐쇄 중단 △적정인력 유지 △임금피크제 폐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국책은행 지방 이전 계획 폐지를 요구했다. 오는 9월 30일에는 2차 총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금감원)에 따르면 17개 은행의 파업 참여자 수는 9807명, 파업 참여율은 9.4% 수준이었다. 하지만 금융노조 총파업 당일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은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였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의 파업 참여율은 0.8%에 불과했다. 국책은행의 정확한 파업 참여율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시중은행에 비해 참여율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은 “산은 및 IBK기업은행 등의 파업 참여율이 시중은행 대비 높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책은행의 파업 참여율이 높았던 배경을 두고 산은 본점 이전 추진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은 직원들은 본점 이전에 대해 경쟁력 약화 등을 주장하며 연일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노조는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산은을 지방으로 옮겨야 한다지만 기업과 은행, 글로벌 투자기관 등 대부분 기관들이 이미 서울에 모여 있다”며 “산은이 서울을 벗어나면 오히려 그간 구축된 네트워크의 손실은 물론이고, 인적자원도 경쟁력을 잃을 것이 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9월 14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산은의 부산 이전은 국정과제로 선정됐고, 산은 회장으로서 어떻게 수행하는가가 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국정과제로 선정됐는데 직원들과 간다, 안 간다를 토론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산은의 우량여신을 시중은행에 넘기려고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산은은 최대 18조 3000억 원에 달하는 영업자산을 시중은행에 넘긴다는 시나리오를 세웠다. 해당 자산은 신용도가 최고 수준인 회사의 우량여신으로 알려졌다. 신용도가 높은 회사는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해 있어 산은의 수도권 소재 회사 거래 비중을 줄이고, 부산·경남 소재 회사 거래 비중을 높이려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9월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금융위에서 저를 포함한 간부들 사이에서 한 번도 해당 건으로 의미있게 논의한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산은뿐 아니라 다른 국책은행의 본점까지 부산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입장에서 산은의 본점 이전을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업은행의 파업 참여율이 높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부산광역시는 지난 6월 금융창업정책관을 신설하면서 “경제부시장 직속으로 산은, 수출입은행 부산 이전 등 실질적인 글로벌 금융도시 조성에 조직 역량을 총집중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노조의 총파업에 대비해 정부는 대책을 세워둔 상태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파업 대응 컨트롤타워로서 금감원 내 종합상황본부를 운영하고 있다”며 “파업 시에도 은행 업무연속성에 차질이 없고, 소비자 불편이 없도록 일일동향을 점검하는 등 면밀히 모니터링해왔다”고 밝혔다. 산은 관계자는 “산은 노조 조합원 중 70% 이상이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고, 산은 전체 인원 대비로는 45% 수준”이라며 “파업이 장기화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하루 파업은 특별히 업무에 차질이 있지는 않다”고 전했다.
산은 본점 이전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국회 설득이다. 한국산업은행법(산은법)에는 “산은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국회 과반을 차지하는 민주당이 산은법 개정에 반대하면 산은의 본점 부산 이전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본점 이전을 반대하는 산은 직원들의 바람처럼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일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산은 본점 이전을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산은의 본점을 서울로 제한하는 규정을 삭제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을 공동발의한 10명의 국회의원 중 8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김 의원은 “지역 소멸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국책은행 본점을 서울시에 한정해 위치하도록 하는 구도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금융노조 관계자는 “금융위가 산은법 개정 전에 산은을 이전 대상 공공기관으로 지정했다는데 이는 법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관련한 법률 검토 중이고, 국회 설득도 투트랙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산은이 발행하는 채권을 사는 곳은 증권사나 보험사 같은 기관들이므로 고객 기업을 감안하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고, 부울경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에는 돈이 풀리지 않아 사실상 국책은행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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