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주체 의문 커지고 3년간 M&A 추진도 안해…자진 상폐·특별 배당 등 주주 보호 방안 요구
지난 9월 26일 한국조선해양 소액주주들이 비영리단체인 ‘한국조선해양 소액주주연대’를 설립됐다. 10월 5일 기준 발행주식수 대비 0.5% 정도의 소액주주 지분이 모였다. 앞서 9월 29일 소액주주연대는 한국조선해양에 주주명부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으며, 회사는 10월 28일까지 주주명부를 발송하기로 한 상태다. 오는 10월 14일에는 소액주주연대 운영진 일부와 한국조선해양 측의 첫 간담회가 열릴 예정이다.
#사업 회사 역량 아직은 검증 부족
최근 한국조선해양의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5월 31일 15만 3500원이었던 주가는 올해 10월 6일 종가 기준 주가는 7만 9600원. 자회사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 대비 하락폭이 크다. 현대미포조선 주가는 지난해 5월 31일 8만 6000원에서 올해 10월 6일 11만 1500원으로 올랐다. 현대중공업 주가는 지난해 9월 30일 11만 5500원에서 10월 6일 12만 4500원으로 소폭이지만 상승했다.
유독 한국조선해양 주가가 맥을 못 추는 데에는 지배구조 개편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현대중공업을 존속법인인 중간지주회사 한국조선해양과 신설법인 사업자회사인 현대중공업으로 쪼갰다. KDB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한국조선해양에 현물 출자하고 한국조선해양의 신주를 산업은행에 지급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HD현대(옛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 구조가 완성됐다.
그러나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지난 1월 유럽연합(EU)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의 독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두 기업의 기업결합 승인을 불허했다. 결국 한국조선해양의 존재 이유가 모호해진 셈이다. 지난해 9월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시켰다. 이는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의 주가 흐름에 악재로 작용했다.
한국조선해양은 R&D 전문 사업형 지주회사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올해 1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한국조선해양은 △LNG, 수소, 암모니아 화물창 등 차세대 에너지원 처리 시스템 △연비향상 시스템 △온실가스 저감 시스템 등을 신사업 추진 분야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실제 8월 회사는 선박용 친환경 기자재의 설계 및 조달을 담당하는 SD 사업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차세대 핵심 신사업으로 꼽은 고체 산화물 연료전지(SOFC) 사업을 한국조선해양이 아닌 HD현대가 주도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주주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지난 9월 HD현대가 고체 산화물 연료전지 개발 전담 조직인 연료전지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린 사실이 알려졌다. 앞서 2020년 자율주행 선박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하는 아비커스는 HD현대 100% 자회사로 편입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한국조선해양의 사업형 지주회사 역할에 대한 의문이 커질수록 주가 하방 압력이 거세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선 HD현대에서 신사업을 키운 후, 현금을 많이 보유한 한국조선해양이 비싸게 사는 방식을 고려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2019년 한국조선해양 출범 이후 3년간 M&A(인수합병)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주주들의 불만이 나오는 배경 중 하나다. 올해 상반기까지 별도 기준 한국조선해양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 7756억 원 정도다. 보유한 현금으로 인수합병에 나서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면 사업형 지주회사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다. 지난해 한국조선해양 별도 기준 매출은 1958억 원에 불과하다.
#자진 상장폐지? 혹은 현대삼호중공업 상장?
소액주주연대는 간담회에서 한국조선해양 혹은 현대중공업의 상장폐지를 요구할 계획이다. 이헌이 한국조선해양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현대중공업을 자진 상장폐지시켜 원래처럼 한국조선해양에 흡수시키거나, 한국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과 합병하며 한국조선해양을 상장폐지하는 방향을 요구할 방침이다. 주가가 올라야 훼손된 주주가치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겠으나, 일단은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한국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 주식을 웃돈을 주고 공개 매수해 현대중공업을 자진 상장폐지하는 방법이 거론된다. 자진 상장폐지를 위해서는 최대주주가 발행주식 총수의 95%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 주식의 78.02%를 보유 중이다. 주식을 확보한 이후에는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다.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을 합칠 시 한국조선해양 주가는 세 배 정도 오를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도 있다.
이외에 소액주주연대는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주주가치 제고 방안으로 특별 배당 실시 등을 요구할 방침이다. 한국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 주식의 51%(최대주주 요건)만 남기고 나머지 27%를 매도해 특별 배당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한국조선해양 주주에게 무상으로 현대중공업 주식을 배당하는 방법도 언급된다. 한국조선해양 이익잉여금은 올해 상반기 말 기준 16조 4682억 원이다.
아울러 현대삼호중공업 상장을 두고도 사측과 소액주주 간의 의견이 엇갈린다. 현대삼호중공업 지분 80.54%를 보유 중인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삼호중공업을 상장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동종업계 자회사 상장 추진을 바라보는 소액주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앞서 2017년 사모펀드 IMM PE는 현대삼호중공업에 4000억 원 규모의 프리 IPO 투자를 단행하며, 2022년 말까지 상장하지 않으면 원금에 연 9.5%의 이자를 가산해 보상하는 조항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별다른 페널티 없이 이 기한은 2024년까지로 연장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모펀드 엑시트를 고려하면서도 한국조선해양 주주 가치 훼손을 막을 방법이 없지는 않다.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삼호중공업이 합병하면, IMM PE가 한국조선해양 주식을 갖게 되면서 현대삼호중공업을 우회 상장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다만 한국조선해양 지분 35.08%를 보유한 HD현대가 주가 희석을 우려해 이 방법을 거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합병으로 IMM PE가 갖게 되는 주식 규모만큼 한국조선해양이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방법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만 최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물적분할 대책이 근본적으로 ‘모자기업 동시상장’을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점에서, 현대삼호중공업 상장 자체가 쉽지 않으리란 의견도 제기된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본업이 케미컬인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부문 물적분할은 그나마 명분이라도 있으나, 조선사가 조선 업종을 물적분할하고 R&D 회사로 전환하겠다는 것부터가 ‘껍데기 회사’를 만들어버리는 거라 상식적이지 않다”며 “자회사를 계속 상장시키면 모회사(HD현대) 및 중간 지주회사(한국조선해양)의 디스카운트가 심화하고, 결국 추후 오너 일가가 상속하거나 지분을 늘려 지배력을 강화하기 유리하다. 한국조선해양 주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고 본다. 정기선 사장 퇴진 운동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아직 소액주주로부터 현대중공업에 대한 자진 상폐 요구를 공식적으로 접수 받은 바는 없다. 향후 조선 계열사의 실적이 본격적인 개선이 기대되므로 한국조선해양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이익 발생 시 적극적인 배당을 실시하고자 한다”며 “신설된 SD 사업부에서는 장기적으로 탄소 중립을 위한 에너지 운송, 처리 솔루션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삼호중공업 상장 계획은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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