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의원(왼쪽)과 최시중 전 위원장. 최 전 위원장 수사는 난항에 빠진 반면 이 의원 수사는 속도를 내고 있다. 바깥 사진은 박근혜 비대위원장. 연합뉴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두 대군 중 한 명을 내줘야 한다면 당연히 이상득.”
얼마 전 한 친박 의원이 ‘영일대군’ 이상득 의원과 ‘방통대군’ 최시중 전 위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내뱉은 말이다. 그는 “이 의원과 최 전 위원장이 친이계이긴 하지만 당 쇄신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박근혜 위원장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둘을 모두 안고 갈 순 없다는 것엔 의견이 모아진 상태”라면서 “솔직히 지금 이 의원과 관련해 오르내리고 있는 의혹들은 개인비리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최 전 위원장은 조금 다르다. (최 전 위원장이) 친박 의원들에게도 돈봉투를 줬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미치는 여파를 따져봤을 때 굳이 한 명을 포기해야 한다면 이 의원이 될 것이란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이명박 정부와 선을 그으려는 친박 분위기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 최 전 위원장도 핵심이긴 하지만 대통령 형님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이 의원만은 못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동안 친박과 이 의원과의 관계를 떠올려본다면 다소 의외다. 이 의원은 친이계 중에서도 그나마 박 위원장과 ‘말이 잘 통하는’ 정치인으로 꼽혀왔다. 이 대통령과 박 위원장이 갈등을 빚고 있을 때 막후에서 ‘조정자’ 역할을 했던 사람도 이 의원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었다. 평소 박 위원장은 이 의원에 대해 “합리적인 분이다. 천막당사 시절 당을 이끌 때 사무총장이었는데 어려움을 함께 겪어서인지 정이 간다”고 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의원과 함께 친이의 한 축을 이루는 이재오 계에 대해서 “절대 함께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는 상반된다. 박 위원장과 이 의원은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전 대표를 1위로 당선시키는 데 힘을 모으기도 했다.
반면, 최 전 위원장에 대한 친박진영의 평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최 전 위원장이 추진했던 언론법과 종편 선정 등을 놓고서 친박 내부에선 여러 차례 ‘날선’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공교롭게도 검찰 수사 역시 이 의원에게로 맞춰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서초동 주변에선 이 의원이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란 추측이 주를 이뤘다. 박배수 보좌관이 이국철 SLS 회장으로부터 수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후 이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사실상 수사는 마무리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도 대두됐었다. 야권은 “이국철 SLS 회장의 폭로 몸통은 이 의원”이라며 여러 차례 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 수뇌부는 대통령 형님이자 6선 의원에 대한 수사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여권 핵심부가 이 의원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적극적인 ‘방어막’을 취했다는 점도 검찰에 ‘압박’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설 연휴를 전후로 검찰 스탠스가 달라졌다. 이 의원실 직원들 명의로 개설된 계좌에 드나든 돈의 출처, 고승덕 의원 폭로로 촉발된 박희태 전 대표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김학인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한예진) 이사장의 정·관계 로비 등에 이 의원이 연루돼 있는지 광범위한 확인에 들어갔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 입장이 바뀌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국철 회장 건과는 별개로 이 의원 조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의원 역시 검찰의 이러한 움직임에 “무조건 발뺌할 단계는 지났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 의원이 검찰에 제출한 소명서에서 “여직원 이름으로 된 계좌에 있던 7억 원은 내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이 의원은 소명서에서 “20여 년 전부터 부동산 매각대금과 집안 행사 과정에서 받은 축의금 등 현금이 꽤 많이 생겼다. 이 돈들을 자택 안방에 있는 비밀공간에 보관해 왔다. 사무실 운영경비가 필요할 때마다 이 현금을 여비서에게 줘서 경비로 쓰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 의원이 ‘자진납세’를 한 배경은 의혹 확산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현행법상 차명계좌 보유만으로는 사법처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이 의원 해명에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오히려 의혹을 더욱 키운 결과를 낳았다. 이 의원이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다는 돈의 불법성 여부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우선은 그 7억 원이 진짜 이 의원 개인 금고에서 나왔는지를 체크하고 있다”면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선 소환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한 검찰은 구속된 김학인 한예진 이사장이 2008년 총선 공천을 부탁하며 이 의원에게 수억 원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이 부분도 확인 중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은 “김 이사장과는 일면식도 없다”며 일축했다.
이와는 반대로 최 위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난항에 빠진 상태다. 핵심 피의자인 정용욱 방통위 전 정책보좌역이 해외에 머물며 귀국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보좌역은 김 이사장을 비롯해 방통위 유관 업체들로부터 금품 수수 및 접대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 전 보좌역은 1월 말 국내로 들어올 것이 유력시됐으나 자신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돈 봉투를 뿌렸다는 새로운 의혹이 터지면서 그 시기를 늦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과 정 전 보좌역이 돈 봉투를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 고발이 접수되긴 했지만 수사 착수 여부는 신중히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대검 중수부 고위 인사는 “수사가 잘 되겠느냐. 얼마 전 민주당 돈 봉투 사건에서도 ‘물’을 먹었는데…. 최 전 위원장이나 이름이 거론되는 의원들 모두 부인하고 있다. 몇 년 전에 현금이 오간 것인데 이제 와서 밝혀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득 의원 수사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것과는 확연히 ‘온도차’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선 검찰의 이러한 모습이 박근혜 위원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 퍼지고 있다. 율사 출신의 민주통합당 중진 의원은 “임기 말 검찰이 유력 차기주자들과 ‘핫라인’을 구축한다는 것은 정설이다. 우리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도 그랬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 방향이 달라졌다면 이는 여권의 유력 대권 후보인 박 위원장 측과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거나 아니면 검찰 스스로 눈치를 본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 역시 “검찰은 조직 특성상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아마 지금쯤이면 이 대통령 ‘말발’은 잘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보탰다.
그렇다면 친박에선 왜 이 의원이 아닌 최 전 위원장 ‘보호’에 나선 것일까. 이에 대해 영남지역 한 친박 의원은 “우리라고 최 전 위원장에게 호감이 있겠느냐. 그런데 최 전 위원장 측이 우리 쪽에도 돈 봉투를 줬다는 소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의혹이 확산되면 친박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의원은 개인비리 쪽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타격을 받을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와대는 이 의원을 타깃으로 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 섭섭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박 위원장을 향해서는 더욱 그렇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검찰이 박 위원장을 의식해 이 의원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내용을 우리도 접했다. (검찰의) 지나친 정치적 행보”라고 꼬집으면서 “박 위원장 역시 벌써부터 대통령이 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선 안 될 것이다. 아직 대선까지 가야 할 길은 멀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