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 총선을 앞두고 ‘미니 대선’으로 일컬어질 만큼 격전지로 꼽히고 있는 부산을 찾았다. 부산은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지만 ‘바닥 민심’에선 이들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었다. 사진은 부산 자갈치 시장 전경. |
<일요신문>에서는 이번 호부터 총 4주에 걸쳐 4대 지역 민심 탐방에 나선다. 첫 번째 목적지는 ‘미니 대선’으로 일컬어질 만큼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부산이다. 부산은 전통적으로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강세 지역이지만 토착 지지층이 두터운 광주 대구와는 다르게 유동층이 많아 지지율도 50~60%에 그친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평균 지지율은 54%에 그쳤지만 18석 중 단 1곳(사하구을 조경태 의원)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승리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야권은 지지율 5% 차이를 넘지 못하고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야권은 ‘문재인-문성근-김정길’ 트리오를 내세워 거센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새누리당 역시 ‘문성길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부산을 주요 전략공천 지역으로 분류, 정면대결을 펼칠 전망이다. ‘문성길’ 지역구를 중심으로 부산의 ‘민란’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지난 1월 26일, 영상 1도의 날씨만큼이나 부산 민심은 얼어있었다. 아직 총선이 본 궤도에 진입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정치권에 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피로감이었다. 기자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바닥 민심’을 확인하기 위해 자갈치시장을 찾았다. 활선어부에서 근무하는 한 상인은 “아직 누가 나오는지도 모른다”며 “여기 사람들은 정치니 총선이니 별로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상인은 “바꿔봐야 얼마나 바뀌겠느냐. 총선이 시작되면 시장이 시끌벅적하겠지만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며 강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여론에 민감한 20~30대 부산 청년들 역시 변화를 절실히 갈망하지는 않아 보였다. 국제시장에서 구제숍을 운영하는 한 남성은 “이 골목에 20~30대 친구들이 많은데 대다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 ‘무당파’라고 밝힌 동의대 학생은 “주변을 보면 새누리당 찍는다고 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과 무엇이 다른지도 의문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총선에 관해서 그는 “진보 세력까지 모두 합친다면 꽤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심의 교차로’에 있는 택시기사들은 야권 쪽으로 불고 있는 미풍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있었다.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택시기사 정연철 씨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열성 지지자이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임을 전했다. 정 씨는 “택시 기사들끼리 정치 이야기는 금기다. 하지만 손님들은 대체로 새누리당, 특히 이명박 정권에 관한 욕을 많이 하더라. 40~50대까지 등을 돌리고 있는 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또 다른 택시기사인 김성근 씨는 “부산 주민들의 새누리당 지지가 확실히 예전 같지 않다. 우리 지역에서도 민주통합당 후보가 많이 나와야 한다. 한 쪽에서 너무 해먹으니까 지역이 발전하지 않고 인천에도 뒤처지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새누리당이 계속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중진 의원들이 다 양보해야 맞다”고 덧붙였다.
부산역으로 가는 길에 만난 황의욱 씨는 “부산 토박이지만 개인적으로 부산에도 여야 의원이 반반씩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황 씨는 “‘새누리당 공천=국회의원 당선’이었던 공식이 깨져야 한다”며 “현재 부산진구에 사는데 이곳에 출마하는 김영춘-김정길 두 민주통합당 의원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새누리당에 관해서는 “눈길이 가는 인물이 없다. 믿어달라고만 하는 것 같다”며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 슬금슬금 신공항 문제를 들고 나오려는 것 같은데 정말 잘못된 방향이다”라고 비판했다.
▲ 부산 사상구에 출마한 문재인 예비후보. 매일 1시간씩 지역민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맨 위). 북·강서구을에 출마한 문성근 예비후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배를 마신 곳이기도 하다(중간). 부산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진구을에 출마한 김정길 예비후보. |
김정길 전 장관이 출마한 부산진구을은 서울의 종로구와 같이 부산에선 ‘정치 1번지’다. 김 전 장관은 그동안 표밭을 갈아온 지역구인 영도를 뒤로하고 이곳에 출마했다.
송광철 조직본부장은 “현재까지 박빙열세로 보고 총선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 시민들은 과거 시장 선거 때 김 예비후보가 45%까지 득표한 것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덧붙였다. 자원봉사자 김형길 씨는 “아직 후보 선정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산 민심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SNS 등을 통한 ‘넷심’은 민주통합당 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얼마나 끌어오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는 “솔직히 여야 모두가 복지를 우선순위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년 부동층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부산 사상구에 출마한 문재인 이사장은 매일 오후 1시간 동안 간담회 및 ‘트친소’(트윗친구소개) 시간을 가진다. 아무런 연고 없이 출마한 상태에서 직접 지역주민과 만나겠다는 전략이다. 한 자원봉사자는 “현재까지는 문 예비후보에 관한 지역주민들의 관심이 높은 편이다. SBS <힐링캠프> 출연이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자원봉사자 박 아무개 씨는 “저쪽에서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민심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사상구는 3선 의원이었던 권철현 전 주일대사와 김대식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강력한 새누리당 공천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최연소 예비후보 손수조 씨(27) 역시 부산 사상구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문 이사장이 이번 총선에서 손쉽게 이길 것이라는 말이 많지만 그 반론도 만만찮다. 김대식 새누리당 예비후보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60대 남성은 “며칠 전 친구들과의 모임에 갔는데 문 예비후보에 관해 부정적 의견이 꽤 있더라. 그는 대권주자로 가는 중간 단계로 총선에 출마한 것이기 때문에 지역주민으로서 불쾌하다는 것이다. 특히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뒤 곧바로 사상구 출마를 선언한 발빠른 행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새누리당에 관해서 그는 “쇄신을 게을리 한다면 부산에서만 3~4석 정도 잃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하며 “부산 시민들이 원하는 쇄신은 이름만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의 뜨뜻미지근한 ‘쇄신’을 꼬집기도 했다.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출마한 북·강서구을은 가장 치열한 전장으로 꼽히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마했다 패한 이곳에 문 예비후보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에 관해 노무현재단 한 관계자는 “현재 민심은 51:49로 예상된다”며 “이곳은 도심에 비해 시골이고 야권 열세 지역이지만 민심이 신선한 인물을 원하고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고 낙관했다.
‘야권의 친노 띄우기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정작 민주통합당에서 ‘친노’는 2명밖에 없지 않느냐”며 “문 예비후보는 자신이 ‘노무현 그림자’임을 숨기지 않고 가야 한다. 이번 총선은 부산 주민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시간이 될 것”같다고 밝혔지만 “‘노통’에 관한 민심이 표심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세 지역구가 부산 민심을 흔들고 있는 것에 관해 정작 새누리당은 시큰둥하게 관망하는 중이다. 새누리당 공천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부산지역 한 예비후보는 “국회의원 선거는 바람을 타는 것보다 어느 진영이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고 또 그만큼의 조직력을 갖췄는지의 싸움”이라며 새누리당에 관한 부산 민심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 동의대 정치외교학과 전용주 교수는 부산 민심과 관련해 “세대별로 온도 차가 있는 것 같다. 중장년층은 아직 여권 성향이 강하고 가르치는 학생들 얘기도 새누리당 반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직 민주통합당에 대한 호감으로는 바뀌지 않고 부동층으로 남아 있다. 문재인 이사장 정도만 당선 되고 문성근 씨는 부정적으로 본다. 젊은 사람 투표율이 60% 넘어가면 1~2석 정도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문성길 바람’은 곳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폭풍’으로 변하기에는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은 듯 보였다. “진짜 모르겠다”는 어느 자원봉사자의 한마디가 귓가를 맴돌았다.
부산=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쇄신소장파들 공동벨트 구축
‘문성길 바람’은 부산 선거의 최대 변수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 부산에 전략공천을 집중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쇄신소장파 출신 예비후보들이 회오리바람 ‘문성길’을 잠재울 대항마그룹을 자임하며 물밑연대를 강화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경기도 대변인을 지낸 경윤호(사하을), 17대 의원을 지낸 이성권, 기획재정부 홍보전문관을 지낸 성희엽 예비후보 등은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소장파 출신들이다. 이들은 현재 진행 중인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쇄신 활동이 미흡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국민과 유권자 중심의 정치개혁 공약을 공동 개발해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경윤호 예비후보는 ‘문성길 바람’에 대해 “일단 현실적으로 거세다고 본다. 하지만 그 바람은 반 새누리당 정서에서 나온 것이지, 자신들의 정치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부산에 내려왔다면 지역 유권자들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구체적 정책들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것보다는 총선을 겨냥한 선동정치로 흐를 가능성이 커 보여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성권 예비후보도 이에 대해 “총선은 전국적 바람도 있지만 각 지역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문성길’ 측에서 기대하는 결과를 내긴 힘들 것으로 본다. 더구나 후보들의 신선함도 떨어져 막상 선거전이 시작되면 그들이 가진 한계를 부산 시민들도 인식하게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반 이명박 정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문성길 바람’이 일정한 세를 형성할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의식하고 있는 부산의 쇄신소장파 예비후보그룹은 향후 ‘문성길 바람’을 잠재울 전략을 공동 개발해 대응해나갈 방침이다.
앞서의 경윤호 예비후보는 “정치권의 근본적인 쇄신을 원하는 예비후보자 모임을 전국적 단위로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시간이 얼마 없긴 하지만 SNS 등을 통해 정치개혁에 대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들을 공동 개발할 것이다. 부산에서 문성길 바람이 불 조짐이 있긴 하지만 선거전이 치열해지면 지역민심도 균형감각을 찾을 것으로 본다. 그때 우리의 정치개혁에 대한 진정성도 평가를 받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실무정치를 오랫동안 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전문적 역량을 발휘해 문성길 바람을 막는 데 앞장서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소장파 예비후보들의 정치쇄신 바람이 ‘문성길 폭풍’을 막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