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3월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미래기획위원회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 번째는 당시 위원직을 맡았던 안철수 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지난해 11월 초 청와대 정무 파트는 ‘안철수 보고서’를 작성했다. 여기엔 안 철수 원장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누르고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로 떠오른 현상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이 대통령이 향후 어떠한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 등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보고서 작성에 관여했던 청와대의 한 정무 관계자는 “지지율의 거품이 빠지더라도 안 원장의 대권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결론을 내렸다. 더군다나 안 원장은 야권이라기보다는 제3 세력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여지도 크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를 받은 이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앞서의 관계자는 “VIP가 여러 채널을 통해 안 원장 관련 얘기를 듣지 않았겠느냐”면서 “우리(정무라인) 뿐 아니라 대부분이 안 원장과 ‘핫라인’을 구축할 필요성을 언급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여권 핵심부 인사들이 안 원장을 만났던 것도 청와대 보고서가 올라갔던 11월 초 무렵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차기 후보를 찾기 위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 청와대는 안 원장뿐 아니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김문수 경기지사 등도 꾸준히 후보군에 올려놓고 체크를 했다. 친이계 중 눈에 띄는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안철수 카드’는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선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 박근혜 위원장과의 ‘결별’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박 위원장이 총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 때문이었다. 또한 “박 위원장으론 대선 승리가 힘들다”는 정세 분석도 안 원장과의 ‘스킨십’에 나선 이유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시부터 안 원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6년엔 안철수연구소를 직접 방문해 안 원장과 벤처기업의 애로사항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눈 바 있다. 그 후 이 대통령은 사석에서 여러 차례 “안철수 같은 사람이 열 명만 더 있으면 대한민국은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안 원장도 이명박 정부와 ‘인연’이 있다. 안 원장은 현 정권 미래기획위원회(신성장동력분과),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신성장동력평가위원회 등의 위원을 맡았다. 지금도 미래기획위원회 홈페이지엔 안 원장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이 때문에 여권 핵심부는 안 원장과 어느 정도 말이 ‘통할’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안 원장 측은 “위원회 활동은 다 끝난 상태”라며 선을 그었다.
청와대에서 안 원장과의 ‘접선’에 나섰던 인물은 이 대통령 측근으로 꼽히는 P 전 수석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MB 대선캠프 출신의 한 여권 전직 관료는 P 전 수석과 안 원장 사이에 있었던 ‘비화’를 털어놨다.
“(2011년) 11월 말경이었다. P 전 수석이 안 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 사업가를 통해 김효재 정무수석과 안 원장의 ‘독대’를 추진했다. 이 대통령 재가가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 삼청동 한정식 집에서 식사 약속이 잡혔다가 막판에 취소됐다. 알고 보니 그 사업가가 안 원장과 조율도 하지 않고 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나중에 보고를 받은 안 원장이 만남을 거절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밖에도 P 전 수석은 안 원장 ‘멘토’로 불렸던 법륜스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도 만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획통’으로 알려진 P 전 수석은 안 원장의 대권 전략에 대해 ‘심도 있는’ 견해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안 원장이 대선주자로 급부상하자 사정기관들이 ‘안철수 X파일’에 대해 광범위하게 확인에 나섰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 경찰 등 주요 사정기관의 정보담당 관계자들은 안 원장의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안 원장 ‘회유’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안 원장으로선 이 대통령과 함께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치 신인’ 안 원장이 철저한 검증에 대해 겁을 먹을 순 있다. 청와대가 이 부분을 노리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 역시 “크게 보면 ‘투 트랙’으로 안 원장에게 접근했던 것은 맞다. 안 원장을 끌어들이려는 것과는 별개로 ‘아킬레스 건’을 찾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둘 다 안 원장을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일환”이라고 귀띔했다.
안 원장 측은 청와대의 이러한 움직임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안 원장 지인은 “상식이 있다면 생각해봐라. 안 원장이 이 대통령을 만나 이득 볼 게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안 원장이 이명박 정부 위원회에 참여한 것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재능을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실천하기 위한 차원일 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P 전 수석은 물론이고, 안 원장과 친분이 있는 다른 여권 인사들도 이 대통령 뜻을 전달했다. 몇몇 주변 인사들이 안 원장에게 이 대통령과 만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던 것으로 안다. 지난해 10·26 지방선거에서 ‘상식이 비상식을 이기는 길’이라며 박원순 후보를 응원했는데, 이 대통령을 바라보는 안 원장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있는 말”이라고 보탰다. 특히 안 원장은 현 정부가 자신의 재산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체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원장을 향한 청와대의 구애는 계속됐다. 지난해 12월 중순경 여의도엔 안 원장이 조만간 청와대를 방문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이명박-안철수’ 단독회동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안 원장 측 모두 “사실과 다르다”며 부인했다. 그러나 그 뉘앙스는 다소 달랐다. 청와대가 “안 원장과의 회동을 검토한 바 없다”고 한 반면, 안 원장 측은 “(청와대 요청에) 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안 원장이 청와대에 들어가 이 대통령과 만나는 장면은 그리 좋은 그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측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청와대가 이 대통령과 안 원장의 회동을 추진했다가 안 원장으로부터 보기 좋게 ‘물을 먹은’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공식적인 라인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시도’는 있었다”고 털어놨다.
정치권 일각에선 ‘청와대가 안 원장과 빌 게이츠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안 원장은 지난 1월 11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만난 바 있다. 이 과정에 청와대가 막후에서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안 원장이 미국을 가기 위해 탔던 비행기에 이 대통령 측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동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러한 소문은 더욱 무게를 얻고 있다. 당시 곽 위원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 가전쇼(CES)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곽 위원장과 안 원장 측은 “우연의 일치”라며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한 현지 언론인은 “안 원장이 미국을 방문한다고 해 우리도 관심을 갖고 취재를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떠들썩하게 보도된 것과는 조금은 다른 부분이 있다”면서 “안 원장과의 일정을 사전에 정부 측 인사가 잡아줬다는 말이 빌 게이츠 측으로부터 나오고 있어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설 연휴를 전후로 ‘안철수 신드롬’이 시들해질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의 ‘안철수 프로젝트’도 주춤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안 원장한테 할 만큼 했다. 더 이상 자존심 굽힐 필요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두문불출하던 안 원장이 재단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정치 참여 뜻을 ‘다시’ 밝힌 이후 기류는 또 다시 달라지고 있다. 앞으로 안 원장이 자서전을 출간하고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서면 언제든 ‘안풍’이 되살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 역시 “안 원장의 파괴력은 이미 입증됐다. 우리는 언제나 문을 열어 놓고 있다”면서 “여러 번 차인 기억 때문에 안 원장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라는 게 언제든 적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안 원장을 향한 청와대의 ‘짝사랑’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