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 |
<일요신문>이 최초로 제기했던 일명 ‘13억 돈상자 미스터리’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본지는 2010년 10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허드슨클럽 키맨 경연희 씨 미국 카지노서 100억대 탕진 전말’과 ‘노정연-경연희 미국 아파트 이면계약 비밀’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잇따라 보도한 바 있다. 경주현 전 삼성종합화학 회장의 딸 경연희 씨의 외화밀반출 및 상습도박 의혹을 추적하는 것에서 시작된 취재는 단순히 재계 유명인사 딸의 100억 원대 상습도박 의혹을 넘어 ‘노무현 비자금’ 사건으로 확전됐다. 취재과정에서 제보자는 ‘경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로부터 거금을 전달받았다’는 폭로에 그치지 않고 그 증거로 박스돈 사진까지 공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도가 나간 후에도 뭇 언론들과 수사기관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제보자는 “모든 것을 다 걸고 제보하는데 수사 안하는 이유가 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최근 <월간조선> 2월호는 애초 본지가 제기한 의혹을 바탕으로 ‘13억 돈상자 미스터리’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급기야 1월 26일 시민단체인 ‘국민행동본부’가 검찰에 100만 달러 밀반입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의뢰서를 제출하자 검찰은 이 사건을 대검 중앙수사 1과에 배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문만 무성한 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겨진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외화유출 및 비자금 의혹 사건이 재점화되고 있는 내막을 들여다봤다.
<일요신문> 취재는 미국 코네티컷 주에 소재한 팍스우드 카지노(FOXWOODS CASINO)의 VIP담당 딜러였던 댄 리 씨와의 수십 차례에 걸친 국제통화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뤄졌다. 또 ‘돈상자 운반’을 담당했던 댄의 동생을 직접 만나 추가 취재를 진행했다. 시작은 경연희 씨의 외화밀반출 및 상습해외도박 의혹이었다.
댄은 “경 씨가 팍스우드 카지노에 상습 체류하며 도박을 일삼았는데 최소 130억 원 이상을 탕진했다”며 카지노 전산자료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 사건은 어찌보면 재계 유명인사의 딸이 상습도박을 일삼았고, 거액을 탕진했다는 것으로 그칠 수 있었다. 하지만 경 씨와 ‘언니 동생’으로 가까이 지내던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예사롭지 않게 흘러갔다. 경 씨에게 정연 씨로부터 거액이 유입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 제보자가 폰카메라로 찍었다고 주장하는 돈상자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가 지난 2007년 계약했던 것으로 알려진 미국 뉴저지 고급 아파트 단지인 허드슨클럽. 연합뉴스 |
당시 기자는 댄의 동생 제임스를 만나 돈 상자가 전달된 상황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고 휴대폰으로 찍어뒀다는 돈상자 사진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서 댄은 경 씨가 정연 씨 측으로부터 받은 13억 원을 일명 ‘환치기했다’며 당시 환치기에 개입한 사람들의 실명과 구체적인 설명까지 덧붙였다.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009년 정연 씨가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 뉴저지 소재 ‘허드슨 클럽 400호’의 매입자로 드러난 경 씨는 노 전 대통령 일가의 해외 자금유출 의혹을 풀 수 있는 키맨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정연 씨의 수상한 집 계약은 차명계좌 의혹을 증폭시키며 정치권의 핵뇌관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하자 ‘노정연-왕림-경연희’로 이어진 이상한 거래에 대한 의혹은 해소되지 못한 채 미스터리로 남겨졌다. 이 와중에 정연 씨의 돈이 경 씨에게 유입됐다는 댄의 증언은 검찰수사 중단으로 인해 미스터리로 남겨진 의혹들에 다시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충격적인 것은 경 씨로부터 전해들었다는 댄의 증언이 당시 검찰 내부에서 나온 얘기 및 추리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댄이 언급한 시기나 세세한 정황도 당시 검찰수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었고, 상당 부분 검찰 추리를 신빙성 있게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죽은 자의 무덤은 파지 않는다’는 국내 정서로 인해 수사중단과 함께 묻혀졌던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미스터리가 폭발할 조짐이 여기저기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댄이 기자에게 ‘경 씨의 외화밀반출 및 도박혐의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 모든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정연 씨, 그리고 노무현 일가 문제도 나올 수밖에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검찰은 박연차 회장이 급히 마련해 정상문 총무비서관을 통해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한 100만 달러가 전용기를 통해 미국의 자녀들에게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이 역시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하지만 댄의 얘기는 당시 검찰의 추리와 일치한다. 댄은 “경 씨는 ‘권 여사가 일련번호가 나열된 새 돈 100만 달러를 국빈 특권으로 세관을 통과해서 전달했고 그 돈을 카지노 호텔방에서 구기고 섞는 식으로 돈세탁했다’고 수차례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조갑제 기자는 <월간조선> 기사를 통해 “박 회장이 급하게 마련한 100만 달러는 노 대통령이 출국하기 하루 전 청와대 정상문 비서관에게 전달되었다. 우리는 권 여사가 대통령 전용기에 100만 달러가 든 가방을 실어 미국에 도착, 직접 아들이나 딸에게 전달한 것으로 봤지만 확인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사가 종료되었다. 13억 송금건은 수사중단 뒤 들었다. 제보자가 만들어 하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는 ‘노무현 비자금’ 수사 핵심인물의 말을 싣기도 했다.
따라서 검찰수사의 핵심은 13억 원의 출처를 밝히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검찰 수사의 핵심인물은 경연희 씨다. 수사결과 그 돈이 정연 씨 측에서 나온 것이 확인될 경우 여러 가지 중대한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 특히 ‘노무현 비자금’ 수사에서 중요한 쟁점이었던 뉴저지 허드슨 클럽의 콘도 실소유주 문제와 송금 과정, 그리고 <일요신문>이 제기한 ‘노정연-경연희 간 이면계약서’의 진실도 베일을 벗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행동본부는 “‘13억 돈상자’ 사건은 2009년 ‘노무현 비자금’ 수사선상에도 오르지 않았던 새로운 혐의다. 13억 원이 정연 씨 돈이 맞다면 자금 출처에 대한 중대한 문제가 제기된다”며 “정치권이 ‘300만 원 돈봉투’ 사건으로 시끄러운데 검찰과 언론이 ‘13억 돈상자’ 사건을 덮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1월 26일 대검에 제출한 수사의뢰서를 통해 밀반출된 13억 원의 출처, 경 씨의 도박 자금원 및 송금과정, 100만 달러가 콘도매입 잔금인지 여부, 권 여사가 대통령 전용기에 100만 달러를 싣고가 국빈 특권을 이용해 정연 씨에게 전했다는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13억 밀반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댄 씨 형제의 진술이 있고 관련 증거들까지 확보된 이상 검찰 수사로 진위가 충분히 밝혀질 수 있을거라는 논리다.
조갑제 기자 역시 기사에서 “‘노무현 비자금’ 수사 당시 대상조차 되지 않았던 ‘13억 돈상자=100만 달러 환치기 혐의’에 대한 수사가 요구된다. 또 13억 돈상자가 전달된 당시는 노무현 일가에 대한 수사망이 좁혀오던 시기로 이런 시기에 정연 씨가 하루만에 현금 13억 원을 만들어 미국으로 송금할 수 있었다면 노무현 일가가 관리하던 비자금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도 추리가 가능하다”며 이번 수사의 중대함을 강조했다.
제보자 댄 씨는 2월 중순경 국내에 귀국해 수사에 협조할 뜻을 밝힌 상태다.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고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치권을 강타하는 또 다른 핵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노무현 비자금’ 미스터리 사건을 검찰이 어떻게 처리할지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