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아래 함양 마천면 창원마을엔 산비탈을 개간해 층층이 둑을 쌓고 물을 가둬 만든 다랑논이 있다. 평생을 척박한 다랑논을 일구고 농사짓고 살아온 김봉귀 (84), 임옥남 (85) 할머니. 농사지어 조금씩 돈이 모이면 한 다랑이씩 사서 늘려왔다는 노부부의 다랑논은 모두 아홉 다랑이다.
여기에 기대어 자식 여섯을 굶기지 않고 키워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정성으로 가꿔온 다랑논은 깊은 주름 사이사이로 다른 생명들도 키워냈다.
"짐승이 배고파서 먹는 걸 어쩌겠어? 지그들도 새끼 낳고 키워야 하니께. 농사는 자연과 갈라먹는 거여."
경사 20도 산비탈의 다랑논은 사람이 만든 작은 습지다. 개구리가 낳은 알에 소금쟁이 떼가 모여들고 그새 자란 올챙이는 지렁이 체액을 빨아먹고 그런 올챙이를 잠자리 유충이 공격한다.
논이라는 공간에서 생명들이 먹이사슬을 이루며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사는 것이다. 벼가 좀 자라면 고라니, 멧돼지들이 내려와 뜯어먹기가 예사다. 그렇게 논을 망쳐놔도 할아버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농사는 자연과 나눠먹는 거라 여기면 성낼 일 없이 마음 편하다.
"농사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거여. 하늘이 주는 만큼 먹는 게 그게 바로 농부지."
7살 때부터 지게 지고 농사일을 시작한 김봉귀 할아버지. 80년 넘게 농사를 지어왔는데 한 해 한 해 자연이 내어주는 것이 다르고 커가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매번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이 농사란다.
올해는 시작부터 시련이 많았다. 날이 가물어 물이 부족해서 위쪽 다랑논에는 모를 심지 못했다. 비가 안 와서 논을 묵혀둔 건 또 처음이다. 또 강력한 태풍이 들이닥쳐 다 키운 고춧대가 쓰러져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랴. 다 하늘의 뜻이고 자연의 이치인 것을. 그저 거둬들일 것이 있다는 것에 할아버지는 감사해한다.
올해는 다랑논의 수확량이 영 예전만 못하다. 그래도 자식들에게 내 손으로 직접 지은 건강한 밥을 먹일 수 있으니 그것이면 족하다. 김봉귀 할아버지는 수확이 끝난 논에 남겨진 이삭을 줍지 않는다.
다랑논 위쪽 산자락에 사는 야생동물들의 요긴한 겨울 식량이 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제발 힘든 농사일 그만하라지만 할아버지는 이 가을 벌써 다랑논에서 내년 농사할 날을 기약한다. 농부로 사는 게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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