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현재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선거 전략의 핵심은 한미 FTA 정면 돌파와 이명박 정권 심판론이다. 상대의 약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총선구도를 유리하게 가져가자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런 ‘고리타분한’ 전략에 대해 각 당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게 터져 나오고 있다. 양당 모두 미래를 외치면서도 총선 이슈는 과거의 평가에 매달리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FTA와 정권심판을 놓고 OX게임을 하자는 것 자체가 그동안 정치권이 주장해온 쇄신도, 국민이 기대하는 변화의 모습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최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의 한미 FTA 폐기 수준의 발언은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바짝 자극했다. 원칙과 신뢰의 아이콘인 박 위원장이 그냥 넘어갈 리 없다. 그는 말 바꾸기를 일삼는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전면전을 선포했다. FTA 평가를 총선 최대 이슈로 삼겠다는 의도다.
지난 16일 여의도연구소의 ARS여론조사(전국 3521명 조사. 95% 신뢰수준 ±1.65%p)를 보면 일단 박 위원장의 발언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박 위원장의 민주통합당 FTA 주장 비판에 응답자 56.9%가 공감하고, 34.9%만이 공감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박 위원장이 FTA 논쟁을 확대할수록 새누리당으로선 득이 많다는 계산이다.
이런 기류는 FTA의 주역인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출마를 강행하는 쪽으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김 본부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본인의 총선 출마의지를 숨기지 않았고, FTA에 대한 국민 평가를 받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전략공천을 통해 노무현 정권 당시 FTA 관련 장관이었던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과 서울 강남을에서 정면승부를 펼치도록 하자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정 고문은 김 본부장이 아니라 박근혜 위원장이 직접 나와 체급 높은 승부를 하자고 판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정 고문의 발언과 달리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의 공세에 정면대응보다 FTA 우회 공세 쪽으로 선회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전면 폐기 주장에서 재재협상 결렬시 폐기라는 것으로 공세 강도를 낮추고 있는 것.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취임 1개월 기자회견에서 재재협상이라는 단어로 한미 FTA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추가했다. FTA 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유리할 것이 많지 않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한명숙 대표는 대신 정권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역대 최악의 부패정권, 식물정부, 내각 총사퇴 등의 격한 단어를 번갈아가며 이명박 정부를 몰아붙였다. 또한 박근혜 위원장이 이명박 정부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MB 뒤에 숨어 더 이상 모른 척, 아닌 척 하지 말고 책임을 분명히 하라고 정면 공격했다.
민주통합당 한 핵심 관계자는 “국민여론이 냉소에서 분노로 치닫고 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반성조차하지 않는 모습을 야당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박 위원장 역시 말 바꾸기 운운하며 야당을 공격할 자격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민주통합당은 정권 심판론을 강조하면서 박 위원장이 이명박 정권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양당이 총선 1라운드에서 내놓은 한미 FTA, 정권심판 카드는 어느 정당에게도 완승을 안겨줄 수 없는, 결점이 많은 전략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새누리당의 경우 한미 FTA만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것보다 박 위원장의 선언대로 과거단절, 미래설계라는 슬로건에 맞게 공천과정의 민주성 확보, 과감한 인재영입 등 본연의 정치개혁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예비후보는 “변화에 대한 해답이 나오기도 전에 FTA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총선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것은 국민들이 바라는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유선진당의 한 최고위원은 “FTA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한 적이 있었고, 정치권은 이를 합리적으로 풀어가면서 대안을 찾는 조정 능력이 절실한 시점”이라며 “총선 국면에 FTA를 들고 나와 국민들에게 양자택일 식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은 정치냐”라고 비판했다. 향후 새누리당이 자유선진당과 총선연대를 추진할 경우 FTA 문제가 양당 협력의 최대 장애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올인까지 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래서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광범위하게 깔려 있는 국민들의 반MB 정서를 정당 쇄신, 인적 교체, 정책 차별화 등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FTA 카드로 총선을 주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친박계 다선 중진의원과 친이계 의원의 공천 문제 등 인적 쇄신 작업이 마무리되기 전에 FTA 이슈를 들고 치고 나갈 경우 물갈이론이 물 건너가게 되고 그것은 곧 민심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정치평론가 서상민 박사는 “FTA 선명성 논쟁으로만 선거를 치르면 일정한 이익이 보장될 수 있겠지만 정치란 것이 이런 것 하나만으로 국민 마음을 잡을 수는 없다”며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겠다는 박 위원장의 대국민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역시 정권심판론에 기대 선거를 치를 경우 민심을 얻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 민주통합당은 비전과 대안을 갖춘 정당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다. 정권심판 이외에도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국민들이 적고, 오직 선언만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여론도 많다.
특히 정권 심판론이 일시적으로 먹힐 수 있겠지만 총선을 50일 이상 앞둔 마당에 심판 콘셉트로 일관되게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민주통합당 내부의 공천과정,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악재가 한두 개 나오게 되면 “민주통합당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으로 민심은 돌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디 오피니언 안부근 소장은 “내일 당장 총선을 치르면 정권 심판론으로 민주통합당이 압승을 거두겠지만 아직 50일 이상의 시간이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새누리당이 반MB 정서를 넘어서는 쇄신을 이룬다면 오히려 민주통합당이 이슈 주도에 실패하고 중도층 표심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낡음과 새로움의 대결에서 민주통합당이 과거 심판세력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선거 전문가들은 민주통합당의 정권심판을 대체로 ‘안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MBN 정치아카데미 전계완 대표는 “안철수 현상에는 기성 인물과 정치체제 전반을 변혁하는, 정치구조의 본질을 바꾸라는 국민들의 바람이 담겨있다”며 “민주통합당이 정권심판을 넘어 비정규직, 청년실업, 반값등록금 등과 같은 핵심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국민들을 설득해가야 집권세력으로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특히 “새누리당은 박근혜 위원장의 말대로 ‘과거와 단절한 미래정당’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서야 하고, 민주통합당은 현 정부에 대한 ‘분노의 투표’를 유발할 것이 아니라 ‘즐겁고 희망 있는 선거’를 할 수 있도록 각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특히 FTA 문제, 정권심판론이 일정기간 이슈로 남겠지만 양당 모두 어떤 인물을 내세우느냐에 따라 총선 결과가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총선에서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는 새 인물론이 점차 힘을 얻는 이유다. 경험과 연륜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안정보다 혁신적인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더 좋은 전략이 없다는 설명이다.
각 당이 인재 영입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새누리당은 80여 명의 ‘총선 히든 카드’를 보유하고 있고, 민주통합당은 한명숙 대표가 직접 나서서 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일부 경쟁력 있는 후보는 당선 지역 공천을 요구해 기존 예비후보와 마찰을 빚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이슈가 있다고 하더라도 각 당이 적극 대응하면 유·불리를 쉽게 예단할 수 없다”며 “결국 이번 총선은 누가 개혁공천에 성공하느냐가 의석수에 그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현역 불공천 지역구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지만 이를 채울 수 있는 인물은 마땅치 않다”며 “영남지역의 경우 인물난이 더욱 심해 인적 쇄신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이에 대해 “지금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는 새 인물을 요구하고 있다. 인적 쇄신을 더 과감하고 폭넓게 추진하는 정당이 총선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진동 언론인
시스템 따로 점수 따로?
“정치도 모르면서 무슨 공천심사를 한다는 것인지 사람만 괴롭히고 참 답답하다. 차라리 불출마하라고 하든지”(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
“당내 486세대, 이화여대 출신과 연결되지 않으면 경선대상에도 들어갈 수 없다”(민주통합당 수도권 예비후보).
여야 모두 공천시스템 혁신을 강조하며 본격 심사에 들어갔지만 벌써 공정한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말이 무성하다. 심사 기준이 일괄 적용이 아니라 예외 규정까지 두고 있어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살리고 싶으면 살리는’ 만능이라는 것. 공천 심사항목 중 새누리당의 교체지수, 의정평가 등이 객관성 확보가 어렵고, 민주통합당의 의정활동, 다면평가 등도 주관성 개입 여지가 높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완전 국민경선 또는 유사한 방식은 애초에 어려웠다고 본다”며 “지역구 경선 준비 후보들이 여의도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 시스템 공천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결국 4·11 총선은 인물 선거가 될 것이지만, 그 인물은 여야가 그렇게 강조하던 시스템이 아니라 ‘큰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것이 현재 국회의원 공천제도의 한계이고, 예비후보들의 속 타는 현실이다.
현재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공천 작업이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가 아닌 A 의원이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그리고 그 작업 결과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그대로 직보되고 있다는 것이 소문의 핵심이다. 공천 작업의 핵심 역할을 하는 한 위원마저 최근 주변에 “공천 기준이 추상적이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구체적 지침도 안 내려오고…”라고 답답한 심경을 전한 것을 보면 ‘비선라인’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소문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민주통합당도 한명숙 대표가 공천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다만 새누리당이 박근혜 위원장 ‘뜻’대로 움직이는 것과는 달리, 한 대표의 경우 최종결정은 자신이 직접 하되 계파별 안배를 적절히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한 계파의 수장격 인사는 최근 한명숙 대표에게 ‘20명의 공천 보장을 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말도 떠돌고 있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