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용자들 사이에서 폐지 여론 확산…전문가들 “당장 폐지보다 변화 필요”
지난 10월 4일 넥슨게임즈의 게임 ‘블루 아카이브’ 총괄 PD는 공지를 통해 “지난 9월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게임의 리소스를 수정하거나 연령 등급을 올리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블루 아카이브는 청소년도 이용 가능한 게임으로 앱스토어에서는 12세 이용가, 플레이스토어에서는 15세 이용가다. 게임위의 연령 등급 상향 권고로 넥슨게임즈는 청소년이용불가로 등급을 조정해야 한다. 블루 아카이브 총괄 PD는 “게임의 등급을 올려 게임 이용자들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즐기는 데 지장이 없게 조치하고, 수정된 리소스가 담긴 틴(청소년) 버전의 어플리케이션(앱)을 하나 더 새로 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행 게임진흥법상 국내에서는 등급 분류를 받아야 게임 유통이 가능하다. 모든 게임에 대해 게임위에서 심의를 거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청소년이용불가 게임과 아케이드 게임을 제외한 게임에 대해서는 구글, 애플 등 플랫폼 사업자들이 자체적으로 등급을 정하는 자체등급분류 제도를 통해 게임 연령 등급이 결정된다. 이 제도를 통해 유통된 게임은 게임위의 사후 관리를 통해 규제된다. 블루 아카이브도 자체등급분류 제도로 15세 이용가 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게임위의 사후 심의를 거쳐 청소년이용불가로 등급 재분류가 된 사례다.
게임위는 선정성을 이유로 블루 아카이브를 청소년이용불가로 상향했다. 게임위 관계자는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자체의 노출 정도나 빈도, 이용자 조작에 따라 생기는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판단했다”며 “게임이 업데이트되면서 내용을 수정하면 기존 등급보다 상향될 수도 있고,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등급 심의 과정을 담은 회의록은 위원회 의결을 거쳐야만 공개할 수 있다”고 전했다.
블루 아카이브 이용자들은 게임위의 등급 재분류에 반발했다. 게임의 어떤 부분이 구체적으로 연령 등급 상향의 이유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블루 아카이브 게임 이용자인 직장인 조현빈 씨(28)는 “게임 등급 분류와 적절한 재분류는 필요하지만 현재 게임위의 등급 분류가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며 “재분류하기 이전에 게임 이용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심사 기준이나 심사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씨는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결정되면서 게임과 게임 이용자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생겨날까 봐 걱정이다”라며 “논란이 있는데도 심사 기준과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모습 등을 보고 게임위를 신뢰하는 게임 이용자는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블루 아카이브가 출시됐을 때부터 이용했다는 A 씨는 “바다이야기와 유사한 ‘바다신2’도 전체이용가를 받았는데 블루 아카이브가 청소년이용불가로 등급 재분류가 된 것은 상당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게임 등급 분류는 중요하지만 현재 게임위는 자질이 부족하다. 폐지해서 새로 개편해야 한다”고 전했다. 도박성과 중독성이 강해 문제가 됐던 바다이야기와 디자인 등이 유사하다는 평이 있는 ‘바다신2’는 최근 게임위로부터 전체이용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블루 아카이브를 했다는 B 씨는 “가능하면 등급을 낮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게임을 해오던 나와 같은 미성년자들은 게임 연령 등급이 갑자기 올라가면 게임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전했다. 블루 아카이브 이외에도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 X.D. 글로벌의 ‘소녀전선’ 등의 게임이 게임위로부터 등급 재분류 권고를 받았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위의 등급 심사에 대한 불만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며 “전반적으로 게임 이용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나 절차, 이런 부분이 더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게임위 관련 논란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자체등급분류 게임물 통합 사후관리 시스템 구축 사업’에 대한 비위 의혹도 제기됐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게임위는 2017년 등급분류 시스템 구축을 위해 한 하청업체에 개발을 맡겼지만 해당 시스템은 일부 기능이 지금까지도 미완성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완성 시스템을 납품받았고,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데도 게임위는 하청업체에 어떤 배상도 받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이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38억 8000만 원에 달한다. 이상헌 의원은 게임위의 사업과 관련해 비위 의혹을 제기했고, 감사원의 국민감사를 청구하기 위한 국민연대서명에 나섰다. 지난 10월 29일 진행된 연대서명은 300명의 서명을 받는 것이 목표였지만 총 5489명의 게임 이용자들이 참여했다. 이상헌 의원실의 이도경 보좌관은 “연대서명 후에 감사원에 접수한 상태”라며 “많은 게임 이용자들이 서명에 참여해주시고, 감사 조건에도 부합할 것으로 예상돼 감사 시작되기까지 큰 어려움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등급분류 시스템 관련 비위 의혹에 대해 게임위 관계자는 “게임 통합관리 시스템이 5개의 서브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3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SRS라고 하는 자체등급 사업자 업무 포털은 내년 초에 오픈 예정”이라며 “시스템 예산과 관련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를 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게임위 폐지 여론까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게임 관련 전문가들은 당장 게임위를 폐지하는 것보다 심의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게임위가 여러 논란으로 잘못하긴 했지만 폐지되면 자율규제에 맡겨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그게 불가능하다”며 “등급 분류뿐 아니라 확률형 게임 조작 사건만 봐도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 교수는 “게임과 관련된 전문가들로 게임위 위원들이 구성돼야 하고, 등급 심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조직 구성원의 변화와 직원들이 부패에 연루되지 않도록 하는 내부 규율 강화, 심의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을 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게임위를 폐지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새로운 혁신을 위한 기관을 만든다는 전제 하에 발전적 해체를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대안 없이 무조건 폐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게임위는 문체부 산하에 있는 기관인데 게임위에서 많은 논란이 일어나는 동안 문체부에서 지도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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