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중심가로 통하는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 대전 시민들은 ‘충청권은 자유선진당’이란 공식이 많이 약해졌다며 각 당에 대한 비판을 골고루 늘어놨다. 그만큼 심중에 ‘누가’ 있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누구를 찍었는지 가족에게조차 비밀로 한다”는 충청 민심은 큰 선거 때마다 출구조사와 실제 득표율의 차이가 커 전문가들조차 쉽사리 예측하지 못한다. 현재 세 정당이 비등한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층의 움직임마저 종잡을 수 없어 예비후보들은 치열한 수싸움에 돌입했다. 세 정당 사이에서 고민 중인 대전 시민들의 속마음을 1박 2일간 들여다봤다.
지난 2월 21일, 대전중앙시장은 저녁거리를 준비하려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시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부분 자유선진당에 대한 불만과 함께 이번 정권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시장에서 면포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자유선진당이 지난 4년 동안 대전 시민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느냐”며 “이번에 대전 사람들은 야당인 민주통합당을 많이 찍을 것”이라고 전했다.
▲ 대전 중앙시장을 찾은 시민들은 현 정권에 대한 불신감과 함께 자유선진당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시장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뉴스를 보면 자유선진당 관련 소식은 지방 방송으로 넘어왔을 때만 접할 수 있다. 사실상 군소정당의 하나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그는 “민주통합당에 대한 호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새누리당의 저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 정당 어느 쪽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화를 듣고 있던 강재일 씨는 “대전 중구는 빠르게 도심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충남도청을 비롯해 많은 관공서들이 이전함에 따라 땅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구민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이내믹한 변화가 필요한데 자유선진당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덧붙였다.
▲ 대전 대덕구에 출사표를 던진 각 당 예비후보들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자유선진당은 18대 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를 이루지 못하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게 시민들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충청도는 자유선진당’이라며 충청권 승리를 낙관하고 있는 중앙당과 달리 지역당 내부에서는 힘든 싸움이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자유선진당 현역 의원의 한 보좌관은 “대전에서 자유선진당 지지가 약해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 잘해야 2~3석 정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는 “민주통합당은 당 차원의 지지율은 가장 높지만 대전에 출마한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지도와 경쟁력이 다소 약하다”고 전했다.
자유선진당의 한 예비후보 역시 “아침 7시부터 지역 주민들을 만나 인사하며 하루 1000표 정도 확보한다고 해도 중앙당 관련 기사 하나로 2000~3000표씩 떨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당을 믿기보다 인물 자체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자유선진당의 위기감은 민주통합당으로 당적을 바꿔 출마한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구)이나 아예 무소속 출마로 가닥을 잡은 김창수 의원(대전 대덕구) 때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피플 김장중 상무는 “현재 충청권에서 자유선진당 지지율 약세 현상은 ‘호남=민주통합당, 영남=새누리당, 충청=자유선진당’이라는 과거 지역구도가 약화되는 흐름 속에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본다”고 평했다. 김 상무는 “다만 낮은 정당지지율에도 후보지지율이 높았던 지난 총선과 달리 이번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예비후보들에 대한 지지율이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어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현재 흐름대로라면 대전에서 1석을 얻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텃밭인 충청권마저 흔들리자 자유선진당에서는 구원투수들도 속속 등판했다. 지난 2월 17일 김종필 새누리당 명예고문은 탈당을 선언하고 자유선진당을 돕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고 이회창 의원 역시 자유선진당 명예선대위원장직을 맡아 이번 총선을 진두지휘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못했다.
은행동에서 만난 한국야쿠르트의 한 배달원은 “김종필 총재는 너무 옛날 사람이다. 시골 분들에게나 먹히지 요즘 사람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다”고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대전역에서 만난 김종식 씨 역시 “대전 사람들에게 JP는 ‘불임정당인 자민련 총재’라는 이미지가 아직까지 남아 있어 별로 이득이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회창 의원에 관해서도 “인지도는 높지만 진정한 충청도 사람이라는 인식이 별로 없어 힘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자유선진당은 거물급 정치인의 힘을 빌릴 것이 아니라 당 스스로 얼마나 큰 쇄신을 이뤄내는지에 따라 결과가 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유성구에서 만난 전성수 씨는 “두 사람의 세가 많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큰 선거에서 표심을 흔들 정도는 된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민심이 자유선진당에 부정적으로 변하면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쪽 분위기는 고무적이다. 복수의 시장 상인들은 “대전에서 민주통합당이 3~4석, 새누리당도 1석 정도는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통합당 한 예비후보의 선거사무실에서 만난 김병석 씨는 “공천 후폭풍만 없다면 대전·충청권에서 압승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씨는 “대전 시민들은 서민 경제를 망가뜨린 이번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선진당이 여당인 새누리당과 연대를 꾀한다면 더 큰 화를 자초할 수도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예비후보 선거사무실의 한 자원봉사자는 이번 대전 지역 총선을 “3할 3푼 3리의 대결”로 표현했다. 그는 “현재 민주통합당의 경우 35%대 지지율로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고 새누리당도 고정 지지율이 30%에 근접한다. 자유선진당은 10%대지만 지역 네트워크가 탄탄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현재로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이번 총선은 나머지 25%의 부동층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표를 줄지 정하지 못한 것은 20대 젊은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였다. 2월 22일 카이스트 학생회관에서 ‘이명박 대통령 취임 4주년 회견’을 지켜보던 한 학생은 “친인척 비리와 내곡동 사저 문제 등은 사과만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며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자신이 속한 당(새누리당)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표현했다.
민주통합당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민주통합당의 경우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바꾸고 결국 막지 못한 것을 빨리 사과하고 가야 한다”고 밝혔지만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반값등록금 공약과 세종시 문제를 두고 어떻게 말을 바꿔왔는지 역시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며 두 진영 모두를 비판했다.
여론조사전문 통신사 <민심 뉴스>의 한 기자는 “대전·충청권 시민들은 특별한 당색이 없기 때문에 여야를 자유롭게 비판한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약점으로 꼽힌다”고 평가했다. 유성온천역에서 만난 정여동 씨 역시 “충청권은 큰 선거 때마다 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강해 좋은 공약을 가지고 선거 운동을 하려고 해도 별로 소용이 없다”고 평가했다.
대전=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 세종시 정부청사 공사 전경. |
“안철수 같은 사람 왔으면”
대전 시내로부터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가 시작되는 곳이다. 오는 2030년까지 인구 40만 명을 목표로 건설 중인 세종시는 이미 지난해 12월 첫 입주가 마무리됐고 오는 9월부터는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중앙 부처 공무원들의 이주도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대전에서 세종시 첫마을 아파트로 이사한 한 가정주부는 “처음에는 이 허허벌판에 어떻게 정착하나 싶었는데 하나둘 모양이 잡혀가는 것을 보니 기대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 때 어떤 정치인이 세종시로 왔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안철수 교수 같은 분이 세종시장으로 와서 터를 닦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세종시는 정치권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현재 세종시 인구는 약 9만 5000명으로 단독 지역구가 되기 위한 최소 인구수 10만 명에 미달이지만 이번 총선에서 예외적으로 선거구로 지정키로 여야가 합의했다. 더욱이 이번 총선에서는 세종시 국회의원, 세종시장, 세종시 교육감이 러닝메이트로 묶일 가능성이 커 여야 모두 물러서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유력한 세종시 국회의원으로는 공주·연기군을 지역구로 하는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가, 세종시장으로는 유한식 현 연기군수가 거론되고 있지만 낙관은 이르다. 민주통합당에서는 이해찬 전 총리가 직접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고 새누리당 역시 ‘세종시 원안사수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직접 선거를 진두지휘할 가능성도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배 아무개 씨는 “연기군만 해도 유권자들의 나이가 많아 투표율도 저조하고 여전히 금권선거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곳이다. 하지만 세종시로 편입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배 씨는 “일부 공무원들은 막상 거물급 인물이 유입되는 것을 썩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중앙에서 사람이 내려오면 분위기 쇄신을 위해 자리가 바뀔 수 있어 벌써부터 불이익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난 2010년 50만 명에서 40만 명으로 조정한 목표 인구수마저 달성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2030년까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예산 확보가 절실하다. 아직 시간이 많고 갈 길도 멀지만 중요한 시기에 거물급 인물이 진두지휘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