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밀항 첩보 입수 신병확보 요청 불구 법원서 영장 기각…영장판사와 변호인 인연 놓고 뒷말도
검찰 역시 관련 정황을 포착하고 도주 15일 전부터 법원에 다시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법원은 “도주 의사가 없다”는 김봉현 전 회장의 입장만 반영해 불구속 상태를 유지했다. 검찰 내부에서 “할 조치는 다 했는데 법원이 이렇게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1년 넘게 불구속 재판
김봉현 전 회장은 원래 구속기소 됐지만, 지난해 7월 보증금 3억 원에 전자팔찌와 주거지 제한을 조건으로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 후 1년 넘게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그리고 결심 공판을 1시간 30분 앞둔 지난 11일 오후 1시 30분 즈음, 경기 하남시 팔당대교 인근에서 위치 추적 전자팔찌를 끊고 도주했다. 회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리고 정치권과 검찰에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1심 재판이 거의 다 마무리된 상태였는데, 재판 결과가 불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도주를 선택한 것이다.
김봉현 전 회장을 잘 아는 자본시장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재판이 마무리를 향해 가면 갈수록 ‘상황이 좋지 않다. 도망쳐야겠다’고 얘기를 해서 설마 했었다”며 “공범들이 중형을 선고받자 불리한 판단이 나올 것을 우려해 해외 도주를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김 전 회장이 도주하기 하루 전인 11월 10일,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20년 확정됐다.
또 다른 자본시장 관계자 역시 “김 전 회장이 재판 선고가 나오기 전 도주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며 “검찰이 잇따라 신병을 확보하려 한 부분들이 오히려 김 전 회장의 도주 및 밀항을 더 자극하지 않았겠느냐”고 설명했다.
#검찰 내부 ‘부글부글’…“법원이 책임질거냐”
서울남부지검은 불만이 상당하다. 이미 수차례에 걸쳐, 관련 정황을 포착하고 김 전 회장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고 서울남부지법에 잇따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이미 김 전 회장은 2019년 12월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5개월 동안 도피 생활을 한 바 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충남 태안반도 쪽에서 중국으로 불법 입국을 시도했다. 1심 선고를 앞두고 검찰이 적극적으로 법원에 김 전 회장의 신병확보 필요성을 강조한 이유다. 앞서 검찰은 10월 26일 김 전 회장이 법정구속을 대비해 중국 밀항을 하려 한다는 첩보를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법원에 보석 취소를 청구했다. 하지만 서울남부지법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보다 앞선 9월 20일과 10월 12일에도 별건인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해 김 전 회장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서울남부지법은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권기만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판사는 10월 12일 영장을 기각하며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도주 계획 확인 및 수사를 위한 영장 청구도 기각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도주 계획을 짜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포폰 2대를 특정해 통신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영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검찰은 도주 하루 전인 11월 10일에도 법원에 신병확보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봉현 전 회장의 초호화 변호인단이 모두 사임하자, 이를 이상 징후로 보고 보석을 하루빨리 취소해 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전관 변호인단이 모두 사임한 것은 선고를 앞두고 ‘재판 포기’와 같기 때문에 도주할 가능성을 주목한 셈이다.
이렇게 법원이 계속 김 전 회장의 신병을 풀어준 사이, 김 전 회장은 도주를 결정했다. 이를 접한 법원은 도주 직후인 오후 2시 50분 검찰의 보석 취소 청구를 뒤늦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미 김 전 회장은 전자팔찌를 끊고 검찰의 추적을 피해 도주한 뒤였다.
김 전 회장의 초호화 변호인단도 주목을 받고 있다. 잇따라 영장을 기각한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판사는 김 전 회장의 변호인 가운데 한 명인 판사 출신 변호사와 학연·근무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 검사는 “판사들은 객관적인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검찰의 말을 꼭 100% 믿어서도 안 되지만, 중죄를 지은 이들의 도주 가능성에 대해서는 좀 더 수사기관 중심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판사들이 문서만 보고 판단하는 사이, 경찰이나 검찰이 이들을 잡기 위해 수사력을 낭비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밀항 가능성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서울남부지검은 김 전 회장 신병 확보에 나섰다. 10월 12일 김 전 회장의 도주를 도운 조카 A 씨의 집에서 압수한 휴대전화와 차량 블랙박스에 대한 포렌식에 들어갔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도주하기 직전 함께 있었던 사람이 A 씨였다는 점에서, 그가 김 전 회장의 도주 계획을 알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A 씨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김 전 회장 휴대전화 유심을 바꿔 끼우고,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기록하는 SD카드도 빼놓았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준비된 도주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변호사는 “친족은 범인도피죄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김 전 회장이 처벌받지 않을 사람을 특정해 필요한 것들을 부탁했을 수 있다”며 “중국 등에 밀항하는 루트가 코로나19 사태로 많이 막혔다고 하지만, 치밀하게 준비하면 동남아 등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검찰은 이미 김 전 회장이 다른 국가로 밀항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도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검찰과 경찰은 전자팔찌를 끊고 달아난 김 전 회장을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해양경찰도 전국 항·포구 선박 단속, 함정·파출소 경계 및 외사 활동 강화에 나섰다.
현재는 중국이 아닌 동남아로의 밀항 가능성이 더 거론되고 있다. 앞선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동남아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는 것을 놓고 ‘동남아가 더 편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동남아에서는 위조여권을 구해 선박 등으로 출입국이 자유롭기 때문에 김 전 회장이 중국이 아닌 베트남, 태국 등으로 밀항 시도를 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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