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정진석·주호영 지도부에 힘 실어주는 모양새…전대 늦춰질 경우 당내 갈등 불거질 수도
#창업에서 수성 모드로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꽤 오랫동안 침묵하던 장제원 의원이 지난 11월 10일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11월 8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실 김은혜·강승규 수석이 ‘웃기고 있네’ 필담을 주고받아 논란이 되자, 운영위원장인 주호영 원내대표가 이들을 퇴장 조치한 것을 두고 “의원들 사이에서 부글부글하다”며 주 원내대표를 저격했다.
장제원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필담 가지고 (두 수석을) 두 번을 세워서 사과시켰다. 벌을 두 번 준 것이다. 대통령의 수석 참모지 않나”라며 “그래놓고 퇴장을 시킨다는 게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원내지도부를 한 번 더 준 건 오로지 정기국회를 잘 돌파하고, 야당의 정치공세를 막고, 자존심을 지키면서 성과를 내자, 그래서 경륜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겠나”라며 “지금 드러난 걸 보면 좀 걱정된다”고 질타했다.
이어 장 의원은 문재인 정부 때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국회 회의장에서 했던 언행을 소환하며 주 원내대표의 ‘저자세’를 마구 때렸다. 앞서 문재인 정부였던 2019년 운영위 회의에서 강 수석은 당시 야당(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 도중 벌떡 일어나 종이를 흔들면서 삿대질을 했다.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아들의 군복무 휴가 미복귀 의혹 논란과 관련한 질의를 두고 “소설을 쓰시네”라고 했다.
장 의원은 “(이들이) 사과를 했나. 퇴장을 했나”라며 “이인영 (당시 운영)위원장이 그때 어떻게 했나. 그런 것에 대해서 볼 때 나는 걱정스럽다. 두 번을 일으켜 세워서 사과시키고 퇴장시키는 게 맞나”라고 거듭 쏘아붙였다.
장 의원의 발언이 나오기 직전 진행된 의원총회에서도 이용 의원이 장 의원과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이 의원은 윤 대통령 대선후보 시절 수행팀장을 맡아 ‘친윤’ 핵심으로 불린다.
이용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입장문을 꺼내 읽으면서 “여당이 윤석열 정부 뒷받침도 못 하고, 장관도 지켜주지 못하냐”고 발언했다고 복수의 참석 의원들이 전했다. 이 의원은 “운영위에서 강승규·김은혜 수석을 왜 퇴장시키나. 문재인 정부 때 강기정 정무수석은 운영위에서 더하지 않았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윤핵관이 깃대를 잡고 나와 친윤과 비윤의 일전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이내 종전선언이 나왔다. 장 의원이 직접 수습에 나섰다. 장 의원은 11월 14일 국회에서 주 원내대표가 주재한 3선 이상 당 중진 의원 모임에 참여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내 강한 기류를 레버리지(지렛대) 삼아 (야당을 상대로) 협상을 더 강하게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차원”이라며 자신의 발언이 만들어 낸 불길을 직접 껐다.
장 의원은 “민주당의 행태가 국정발목 잡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데, 당내에서 강한 기류가 표출되지 않으면 원내대표가 어떻게 협상을 하겠나”라며 “당내 강한 기류에 대해 제가 언급한 것이지 이를 갈등을 야기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발언이 당내 분열로 해석됐다고 기자들이 또다시 묻자 장 의원은 “당내 분열은 유승민 전 의원의 애정 없는 비난이 당내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라며 “(제 발언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갈등을 야기했다고 하는데 이해하지 못 하겠다”고 덧붙였다.
세게 치고나왔던 장 의원이 며칠 만에 태도 변화를 보인 것을 두고 당내에서는 당내 힘의 변화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윤핵관을 응시하던 당 운영이 지도부 중심으로 이전됐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주호영 원내대표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윤심이 작용했다. 그러니 주 원내대표는 윤심과 교통하는 입장으로 새로운 핵심 관계자다. 그런 상황에서 윤핵관이 주 원내대표를 때렸다. 그리고는 이내 수습에 나섰다. 장 의원이 힘의 변화를 뒤늦게 읽어내고 후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런 연장선으로 지난 10월 25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과 장 의원 사이에 있었던 ‘어깨 팡팡’ 장면도 다시 소환되고 있다.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찾았던 윤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장내를 돌던 중 장 의원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선 뒤 장 의원 어깨를 두 차례 두드리고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로 몇 마디 얘기를 나눴다. 이때 6~7초간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쉼 없이 터지는 등 화제가 됐다.
“장 의원은 윤 대통령의 정치 입문, 경선, 안철수 의원과의 대선후보 단일화 등에서 큰 역할을 했고 인수위 비서실장까지 했다.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런데 2선 후퇴를 선택한 이후 실제로도 대통령실과 교감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서는 ‘어깨 팡팡’을 핵관의 표시로 해석했지만 실제로는 다르다고 본다. 대통령실과 접촉이 없었던 만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는 표식으로 윤 대통령이 어깨를 두드려준 것 아니겠나.”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의 해석이다.
#국정 자신감, 여권에 투영
창업 공신 ‘윤핵관’이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자신감과 연계돼 있는 걸로 보인다. 대통령실과 갈등의 골이 깊었던 이준석 전 대표가 물러난 뒤,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의 소통이 원활해져 구태여 측근 그룹을 메신저로 활용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진행된 다자 외교무대에서 미국·중국·일본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과의 양자 회담까지 해낸 터라 향후 핵심 관계자 그룹의 직접적 조력 없이 윤 대통령의 홀로서기 시도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4박 6일간의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11월 16일 귀국한 뒤 국정보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이행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국민에게 직접 소개하는 회의로 전체나 일부를 생중계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출근길 기자들과의 문답을 더 강화한다는 계획도 귀국 직후 나왔다.
여론의 맹렬한 질타 속에 향후 ‘대형폭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신뢰를 계속 보여주고 있는 점을 보면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 전반에서 자신감을 회복했음을 보여준다. 조언을 받아오던 코칭스태프는 확 줄이고 운동장에서 직접 뛰어줄 우수한 선수를 지켜나가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는데 공항에 마중 나온 이상민 장관과 악수한 뒤 “고생 많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흠이 생겼지만 “이만한 선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전당대회는 원팀 공고화 경로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여권 전체의 원팀·원보이스 기류가 강해지면서 다가오는 여당 전당대회는 이 같은 분위기를 구체적 경로로 진입시켜 공고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로 진입 작업이 시도된다면 전대 시기는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진석 비상대책위가 대대적인 당 내부조직 개편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11월 14일 이성호 당무감사위원장을 임명하고 당무감사 준비에 착수했다. 당무감사는 두 달 동안의 고지 기간을 거쳐야 하는 데다 감사 기간도 한 달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협위원장 교체 시기까지 고려하면 내년 4~5월은 돼야 당무감사가 마무리될 것이고, 전대 개최 시기도 그 이후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현재 대다수 당권주자들은 “전당대회를 빨리 하자”는 입장이지만 정 위원장 생각은 다르다. 당의 미래를 위해 당협 정비부터 서둘러 해야 하고, 최대한 공정하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11월 17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나는 당권주자로 안 뛴다”고 공언하면서 여러 시비를 적극적으로 차단했다.
당 내부 정비 작업이 본격화하면 비대위 임기도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비대위 임기는 내년 3월 13일까지인데, 당헌·당규상 비대위 임기는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시절에도 임기를 한 차례 연장한 전례가 있어 당무감사가 끝날 시점까지는 비대위 임기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전대 연기 조짐이 나오자 당권주자들은 대놓고 성토는 못하지만 인상을 찌푸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의 화합과 새로운 전진을 위한 축제가 되어야 할 전대를 전후해 당의 분열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갈등이 증폭된다면 대통령실과 각을 세우는 후보가 여럿 나올 수도 있고 여권의 원팀·원보이스 경로를 강화하려는 시도 역시 또 다른 암초를 만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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