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급’ 8시간 영장 심사 “증거 인멸과 도망 우려” 구속…이재명 12월 초 소환 가능성 ‘연결고리’ 입증 관건
검찰 역시 3시간 가까이 이어진 PPT에서 정 실장의 구속 필요성을 설명했다. 검찰은 이미 혐의의 상당 부분이 소명됐으며 정 실장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처럼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오래 걸린 것은 이례적이다. 10월에 먼저 구속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경우 2시간 30분,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경우 4시간이 걸렸다. 8시간이 넘는 사건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8시간 42분)과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8시간 30분) 정도다. 그리고 법원은 영장실질심사 종료 5시간여 만인 19일 새벽 3시께 구속영장 발부를 결정했다.
#"모조건 혐의 부인이 되레 독 돼"
정진상 실장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대장동 일당인 남욱 변호사 등으로부터 총 1억 4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5년 2월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과 함께 대장동 사업 수익 가운데 428억 원을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로부터 받기로 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정 실장에게는 뇌물 혐의도 적용했다. 2013년부터 2017년 사이, 성남시와 성남도시개발공사 내부 비밀을 남욱 변호사 등에게 알려줘 남욱 변호사의 회사가 위례신도시 사업자로 선정되게 했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오고간 돈들을 뇌물 성격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 밖에도 호반건설이 시행·시공사가 되도록 해 이들이 개발 수익 210억 원을 얻게 한 혐의와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검찰 수사를 앞두고 휴대전화를 버리라고 한 혐의(증거인멸)도 받고 있다.
김세용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 발부 사유에 대해 “증거인멸과 도망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짧은 문장이지만, 법원의 설명에는 검찰이 실질심사에서 입증한 정 실장의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구속영장 실질심사 업무를 담당했던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언론이 주목하는 사건의 경우 영장 발부 사유를 적을 때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쓰는 건 검찰 수사 미진을 지적하는 것이고, ‘혐의가 소명됐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적는 것은 검찰의 혐의 구성이 해명보다 더 실체가 있어 보인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검찰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 등 대장동 일당의 진술을 토대로 확보한 증거들을 법원에 제시했다고 한다. 또, 이들 진술을 뒷받침하는 녹취록을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법조계에서는 정 실장이 압수수색 직전 증거를 폐기하려 한 점, 과거 유 전 본부장에게 휴대전화를 바꾸라고 한 점 등도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진상 실장은 검찰 압수수색 전 국회 본청 대표 비서실에서 사용하던 컴퓨터 운영체제가 재설치됐는데, 이를 놓고 정 실장과 민주당 측은 “9월 중순부터 새롭게 자리를 배치받아 10월 중순경 PC 윈도우 세팅이 있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또, 검찰의 소환에 곧바로 응하지 않았던 점 등도 영장 발부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검찰 안팎에서는 높은 확률로 구속영장 발부를 예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관계자는 “민주당에서는 정치 수사라고 하지만, 우리는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진술과 이를 보완하는 객관적인 자료들도 함께 확인하며 수사를 하고 있다”며 “무리하게 수사하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럴 때 ‘무조건 혐의 부인’을 하는 것은 영장 발부 가능성을 높이는 꼴밖에 안 된다”며 “정치적인 판단이 있겠지만, 혐의를 놓고 다투는 것을 보고 영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었다”고 설명했다.
#12월 9일 이전 이재명 소환, 구속은 '글쎄'
위례 신도시·대장동 개발 비리의 연결 고리인 김용 부원장과 정진상 실장이 모두 구속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르면 12월 초 검찰 소환조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최대 20일까지 정진상 실장의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어 12월 9일 전에는 정 실장을 기소해야 한다. 그때까지 검찰은 정 실장을 상대로 범죄 사실과 이 대표 관여 여부와 정도를 확인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정 실장과 김 부원장이 각각 성남시와 성남시의회에서 각종 영향력을 행사해 대장동 일당에게 특혜를 몰아줬고, 그 대가로 이 대표의 선거 자금 등을 지원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실장과 김 부원장은 이 대표가 “측근이라고 하려면 정진상이나 김용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을 정도로 가까운 이들이다. 검찰은 이들을 ‘정치적 공동체’라고 보고 있다. 정진상 실장의 압수수색 영장에 ‘정치적 공동체’라고 아예 적시했을 정도인데, 이들을 한 몸으로 보고 있는 만큼 주요 의사 결정이나 세부 진행 사항도 함께 공유했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정치적 공동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향후 이들이 혐의를 부인할 때를 대비해 다른 증거들을 제시하며 이를 토대로 ‘돈을 받은 사실을 이재명 대표가 몰랐을 리 없다. 서로 함께하는 사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이재명 대표의 소환은 기정사실화된 상황. 하지만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구속된 측근들이 혐의를 부인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은 본인들이 지고 갈 테니 이재명 대표는 지키겠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돈을 이재명 대표가 직접 받은 것도 아니고, 그 돈을 받아오라고 이재명 대표가 지시한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무조건 김용 부원장이나 정진상 실장의 진술을 얻어내야만 하는 게 지금 검찰의 상황”이라고 풀이했다. 김 부원장과 정 실장과 달리, 이 대표 관련 수사는 다툼의 여지가 더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굵직한 수사 경험이 많은 특수통 출신 변호사 역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 두 명을 확보했는데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말을 듣는 것인데,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수사팀은 어떤 증거들을 하나씩 보여주며 이들의 입을 열게 할지, 삼자대면을 시도할지 등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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