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15일 뉴욕 닉스의 제레미 린이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경기에서 드라이브인을 성공시키고 있다. AP/연합뉴스 |
린의 돌풍은 현재 뉴욕뿐 아니라 전 미국, 아시아권을 강타하고 있다. 스포츠전문 채널 ESPN은 하루에 10분 이상의 린 관련 뉴스를 보도한다. 경기가 있는 날에는 집중분석하고 있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정말 멋진 스토리다”며 린을 높이 평가했다. 뉴욕 닉스에서의 계약이 보장되지 않아 거처를 잡지 못해 형의 뉴욕 아파트와 동료 랜드리 필드의 소파에서 잠을 잤던 린 스토리는 2012년판 신데렐라 스토리로 충분하다.
대만도 린의 열풍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뉴욕 닉스의 경기가 생방송으로 대만 안방에 중계되고 있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동안 미국 스포츠에서 아시안 출신이 린처럼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인기를 누린 선수는 없었다. 린의 이름 린(Lin)+광기(Insanity)가 붙은 ‘린새니티(Linsanity)’ 린과 신데렐라(Cinderella)의 합성어 ‘린데렐라(Linderella)라는 조어까지 만들어졌다.
2월 4일까지만 해도 미국 스포츠계와 NBA는 린을 단순히 공부 잘한 하버드 출신의 거쳐 가는 플레이어로 크게 주목하지도 않았다. 2월 5일 이후 등번호 17번 제레미 린의 NBA 유니폼은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마이애미 히트),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를 제치고 판매 1위에 올라 있다. 뉴욕 닉스와 MSG방송사를 보유하고 있는 MSG Inc.의 주가는 7% 이상 올랐다. 린의 폭발적인 인기는 방송사와 공급사의 분쟁까지 해결했다. 뉴욕 닉스의 중계권을 갖고 있는 MSG와 송출사 타임워너 케이블은 요금 인상으로 송출을 중단해 뉴욕 팬들은 닉스의 경기를 볼 수 없었던 상황. 린의 등장으로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 타결됐다.
그렇다면 린은 시즌 개막도 아닌 20경기가 지난 뒤 왜 갑자기 나타났을까. 세계 최고 무대인 NBA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검증 안 된 선수가 팀을 7연승으로 이끌고 6경기 연속 20득점 이상을 올린다는 게 불가능하다. 스카우트들이 아시안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즉 ‘아시안이 농구를 해봐야 얼마나 하겠나’라는 선입관이 뿌리박혀 있어 린의 잠재된 능력을 무시했던 것이다.
린은 지난 20일 디펜딩 챔피언 댈러스 매버릭스-뉴욕 닉스의 전국중계 때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여기저기서 쫓겨나고, 개발리그(NBA 산하의 Development League)에 오르내리고 너무 힘들었다. 이번에 또 팀에서 잘리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큰 걱정이었다. 해외리그에서 뛰어냐 되나. 정 안되면 1년을 쉴 생각도 했다. 기회만 온다면 내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회를 잡는 게 참으로 힘들었다. 그동안 서글퍼서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며 팬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린의 부모는 7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 온 대만인. 부친은 공학박사 학위자의 엘리트다. 모친도 엔지니어. 미국에서 태어난 린은 어렸을 때 비디오게임을 하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로 그의 모친은 타이거 맘(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키는 호랑이 엄마)이었다. 린은 스탠퍼드대학이 소재한 팔로알토 고등학교 출신이다. 주장을 맡아 팀을 32승1패로 이끌며 캘리포니아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스탠퍼드와 본인이 갈망했던 농구명문 UCLA 진학을 원했다. 대학 스카우트 관계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아 직접 DVD를 제작해 이력서와 함께 보냈다. 그러나 한결같이 농구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결국 공부로 하버드대학을 진학했다. 아이비리그는 스포츠 장학금이 없다.
아이비리그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가 어렵다. 가장 최근에 NBA에 드래프트돼 활동했던 선수가 2003년 예일대학의 크리스 더들리, 1995년 펜실베이니아의 제롬 알렌이다. 이들도 프로무대에서 잠시 뛰었다. 하버드 출신의 NBA 마지막 선수는 1954년 에드 스미스였다. 하버드는 5명의 미국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NBA 선수는 이번 린을 포함해 고작 4명에 불과하다.
포인트가드로는 신장 191㎝체중 91㎏의 좋은 체격 조건을 갖춘 린은 하버드 졸업 때인 2010년 NBA드래프트에 지명되지 못했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프리에이전트 신분으로 합류했다. 프랜차이즈(오클랜드와 팔로알토는 가깝다) 출신인 데다가 하버드 토미 아마커 감독의 추천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고작 29경기에 출전해 평균 2.6득점 1.4어시스트에 그쳤다. 지난해 구단주들의 직장폐쇄가 끝나면서 골든스테이트는 린을 시즌 전에 방출했다. 이어 야오밍이 뛰었던 휴스턴 로키츠가 린을 받아들였으나 2주 만에 또 다시 버렸다.
그러자 뉴욕 닉스가 시즌 개막 이틀 후 12월 27일 린과 FA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은 연봉을 보장해주는 계약이 아니었다. 2월 8일이 데드라인이었다. 린의 2년차 최저 연봉 79만 달러를 보장해줄 것인지, 아니면 방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날이었다. 공격 위주의 업템포 농구를 구사하는 마이크 드안토니 감독은 데드라인을 앞두고 ‘도 아니면 모’ 심정으로 테스트를 했다. 4일 동안 3경기를 치러 선수들이 지친 데다가 성적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드안토니 감독은 뉴저지 네츠전에서 린을 기용해 36분을 뛰게 했다. 25득점 7개의 어시스트로 팀의 99-92 승리를 이끌었다. 린새니티의 탄생이었다.
드안토니 감독은 다음 경기인 7일 유타 재즈전에 주전 포인트가드로 기용했다. 이 경기에서 주전 스몰포워드 카멜로 앤서니는 사타구니 부상을 입었고, 포워드 아마리 스타더마이어는 형의 교통사고로 전열에서 이탈해 있었다. 린은 NBA에 입문해 가장 오랜 시간인 45분을 뛰며 28득점 8개 어시스트를 작성했다. 팀은 99-88로 승리했다. 뉴욕 언론은 린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드안토니 감독은 린을 주전으로 밀어붙였다.
린은 2012년 NBA뿐 아니라 미국 스포츠 최고의 화제 인물이다. <타임> 커버맨으로도 등장했다. 그의 성공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기량만으로도 린은 명석한 두뇌, 타고난 운동신경에 NBA에서 통하는 스피드를 갖추고 있어 톱클래스 포인트가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린은 아시안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미국 LA=문상열 스포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