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인협회 지회장까지 맡고 있는 기획사 대표가 가수 지망생과 무명 가수들의 나체사진을 찍어 협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
케이블TV 성인가요 방송 프로그램의 MC로 활동하던 박 아무개 씨(여·40)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40대의 늦은 나이에도 가수라는 꿈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던 박 씨는 그렇게 가요프로그램 MC를 보며 늘 무대 주변에 머물러 왔다. 그러던 중 마침내 2010년 1월, 박 씨는 지인을 통해 안 씨를 만나게 됐다. 방송제작자 겸 연예기획사 대표인 안 씨는 사단법인 연예인협회 A 지역 지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성인가요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심지어 안 씨는 정식 트로트 앨범을 낸 가수이기도 했다.
방송제작자로 나름 여러 성인가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한 안 씨는 박 씨에게 “전국노래자랑이나 내가 제작하는 방송에 출연시켜 주겠다”며 솔깃한 제안을 했다. 안 씨는 또 “음반을 제작해 주겠다”며 박 씨를 현혹했다. 실제로 한 달 뒤 안 씨는 박 씨에게 음반제작과 관련해 작곡가를 소개시켜주겠다며 자리를 마련했다. 이때까지 박 씨에게 안 씨는 금방이라도 꿈을 이뤄줄 은인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박 씨의 환심을 사기 위한 안 씨의 치밀한 계략에 불과했다.
2010년 3월 안 씨는 음반제작과 관련해 얘기를 나누자며 박 씨를 경기도 시흥시 월곶 포구로 데려갔다. 포구 인근 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안 씨는 차 안에서 준비한 커피를 박 씨에게 건넸다. 그런데 커피를 마신 박 씨가 잠시 뒤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안 씨가 내민 커피에는 ‘S 수면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계획한 안 씨는 쓰러진 박 씨를 인근 모텔로 데려간 뒤, 휴대폰으로 박 씨의 나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박 씨가 깨어나자 안 씨는 나체사진을 보여주며 “앞으로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남편에게 전송하겠다”며 협박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박 씨는 안 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안 씨가 사진을 빌미로 계속해서 성관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두렵고 억울했지만 가수로 데뷔시켜주겠다는 안 씨의 말을 믿었다. 또 이미 안 씨에게 많은 돈을 준 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음반제작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박 씨는 점점 불안해졌다.
▲ 안 씨가 주부 박 씨에게 보낸 협박 문자메시지. |
지난 2010년 6월 중순경에도 박 씨는 안 씨에게 “약속한 음반 제작을 왜 안 해주냐”고 따졌다가 안 씨의 주거지에서 3일 동안 감금된 채 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는 자신 외에도 피해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신고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조사 결과 안 씨는 박 씨 외에도 지회소속의 무명 여가수 윤 아무개 씨와 김 아무개 씨도 성폭행하고 이들로부터 1억여 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 씨는 이들에게도 박 씨와 마찬가지로 커피와 술에 수면제를 타 정신을 잃게 만든 뒤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 성분감정 결과 ‘S 수면제’는 복용 시 30분 내에 정신을 잃는 강력한 최면 진정제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안 씨의 혐의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조사 결과 안 씨는 박 씨로부터 2011년 6월까지 음반 제작비, 방송 출연 알선료, 노래강사 자격증 발급비, 협회 이사 자리 제공, 협회 관계자 유흥비 명목 등으로 총 2억여 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실제로 음반제작 및 방송 출연은 이뤄지지 않았다.
안 씨는 또 2011년 5월 공연·행사 대행업체 대표 차 아무개 씨(52)에게 “내가 연예인협회 지회장인데 공연이나 이벤트 행사에 당신네 기기를 많이 넣어주겠다. 또 지회 예술 공연 단장 자리를 주겠다”고 속여 알선비 명목으로 144만 원을 가로챘다. 지회소속 가수들로부터는 뮤직비디오 제작비, 접대비, 소개비 등의 명목으로 644만 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안 씨는 일종의 협회 회원증 성격의 ‘노래강사 자격 인증서’를 가수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30만~200만 원에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도 현재 안 씨는 사기행각을 벌여 1억 50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신인가수 B 씨로부터 안산지청에 고소까지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조사 결과 지금까지 피해자는 21명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지역 지회소속 가수가 50여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추가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황이다. 관할 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은 “협회나 방송관계자에 대한 성 상납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