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의 4·11 총선 히든카드였던 낙동강 벨트가 하염없이 무너지고 있다. 선거 초반 ‘문성길’(문재인-문성근-김정길) 라인이 이슈를 주도하면서 낙동강 전선을 이끌 기세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문성길’이라는 말 대신에 ‘손수조’가 부산경남 선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민주통합당의 낙동강벨트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주통합당이 선거 초반 너무 일찍 통합바람을 일으키는 바람에 통합효과가 반감하고, 개혁공천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확산되면서 민심이 이탈하고 있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수도권은 야권 단일화를 통한 연대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부산경남(PK)은 누더기공천의 후폭풍을 쓰나미처럼 맞고 있다. 더구나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인 문재인 후보가 PK의 선거판을 주도하며 그 분위기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하는데, 존재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지역선거에 매몰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최근 민주통합당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4·11 총선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민주통합당이 부산울산경남지역의 당선 가능지역을 FGI(Focus Group Interview:표적집단 심층면접법으로 불리는 이 조사는 무작위로 추출한 대상자들을 그룹으로 모아서 토론 등을 거쳐 여론을 묻는 방법) 조사를 한 결과 부산사상 문재인 후보, 김해을 김경수 후보를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에게 밀린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유일한 민주통합당 현역 의원인 부산 사하 조경태 후보조차 새누리당 후보에게 진다는 충격적인 결과다.
이 조사가 적중하게 되면 민주통합당은 부산지역 18개 지역에서 1석, 경남지역 16석 중 1석 등 모두 2석에 그치고, 통합진보당 강세지역인 울산에서 1석을 보탠다고 하더라도 부산울산경남에서 총 3석을 건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현재 경남 사천을 비롯한 진보개혁 국회의원이 4명인 것을 감안하면 지난 18대 총선 때보다 당선자가 오히려 1명이 더 적은,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으로서는 대참패에 해당하는 결과다. 각종 선거여론조사 데이터를 두루 접하는 정부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 또한 “이번 부울경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은 잘하면 3석 정도 얻을 것이다. 역대 선거 데이터를 보면 영남의 바닥민심이 야당으로 옮겨가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정서가 웬만한 야당의 바람에 휘둘릴 정도로 허약한 게 아니다. 야당에게 이번 총선은 지난 18대보다 더 어려운 선거가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 8일 오후 선거유세 일정을 모두 접고 급거 상경, 이해 찬 전 총리와 문성근 전 최고위원 등과 긴급 회동을 한 것도 이런 위기론과 무관하지 않다. ‘누더기공천’으로 규정되는 민주통합당의 실책으로 수도권은 물론 낙동강 벨트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는 사실에 혁신과 통합 측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특히 낙동강 벨트의 와해는 문재인 후보의 대선 가도에도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후보는 이해찬 전 총리 등과의 회동 뒤 한명숙 대표를 따로 만나 공천과 관련한 당 일각의 우려를 전달했지만 별다른 ‘타개책’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박스 기사 참조).
한때 ‘문성길’ 라인이 선거 초반 분위기를 이끌면서 낙동강 전선이 민주통합당의 4·11 총선 승리를 견인할 것이라는 장밋빛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선거 한 달여를 앞둔 지금, 그런 긍정적 전망은 국민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역시 개혁공천 실패다. 문재인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부산경남의 야권 후보들 잘못이 아니라 중앙당의 누더기공천으로 총선 주도권을 상실하고 있다”며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사람으로 일일이 문제점을 따질 수도 없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낙동강 전선의 이상기류에도 불구하고 당 지도부는 오로지 야권 연대에만 기대를 걸고 있다. 통합진보당과 극적인 연대 협상 타결이 그동안의 공천 헛발질을 상쇄해 줄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중앙당의 선거 전략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치 않다. 혁신과 통합 출신의 민주통합당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수도권이야 야권 연대를 통한 연대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연대효과가 거의 없는 부산경남은 누더기공천 후폭풍을 쓰나미처럼 맞고 있다”며 “대권 후보군을 키워야 하는 당의 입장으로서는 낙동강 벨트의 실패가 대선 전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류는 지난해 재보궐 선거 때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재보궐 때 박원순 서울시장이 야권단일 후보로 당선됐지만 부산 동구청장 선거는 30%대의 득표율로 민주당 후보가 낙선한 바 있다. 당시 ‘안철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부산에도 혹시 하는’ 일말의 기대가 널리 퍼져 있었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그 바람을 ‘믿고’ 지역구에 상주하기까지 했지만 결국 한나라당의 벽을 넘지 못했다. MBN정치아카데미 전계완 대표는 이에 대해 “워낙 보수성향이 강한 부산경남지역의 특성 때문에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이번에는 낙동강 벨트의 젊은 층과 중도층이 적극적으로 투표장에 나와 줘야 해볼 수 있는 총선이다. 그런데 이렇게 야당이 누더기공천으로 헛발질을 해대니 가뜩이나 어려운 이 지역에 더욱 찬물을 끼얹은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경남지역 민주통합당 한 후보 또한 이에 대해 “요사이 민주통합당의 행마를 보면 과연 총선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라며 “당 통합 직후 이제는 해볼 수 있다던 자원봉사자들의 자신감이 중앙당의 잇단 헛발질로 역시 민주통합당으로선 아직 안 된다는 자괴감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 상황이 이렇게 급변하자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행보도 바빠지고 있다. 그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초 부산, 울산, 경남에서 15석 정도를 기대했지만 현재 상황으로 10석도 어려울 것”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지만 여러 가지 주변 여건이 총선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지사의 한 측근은 “김 지사가 혁신과 통합 상임고문 자격으로 이번 누더기 공천에 대해 ‘중대발표’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문재인 대체재’로 부상하고 있는 김 지사로서도 낙동강 벨트가 무너질 경우 문 후보와 함께 대선정국에서 떠내려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로서도 어떻게든 낙동강 전선을 지켜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문성근 최고위원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부산 북강서을에서 지역구 선거에 한창인 그도 최근 민주통합당 공천 사태를 보고 ‘최고위원직 사퇴’까지 고려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런 공천을 보려고 지난 수년간 야권통합을 위해 그렇게 헌신했다는 말이냐. 참담하다”는 얘기를 사석에서 했다는 것이다. 측근들의 적극적인 만류와 한명숙 대표의 설득으로 사퇴카드는 접었지만 문재인 후보와 함께 낙동강벨트를 사수해야 하는 문 최고위원으로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은 것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2위를 하며 존재감을 널리 알렸던 문 최고위원으로서는 현재의 답답한 선거 정국에 매몰되기보다 판을 깨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향후 입지를 위해 더 낫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부산경남 현지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초반 선거 전략을 잘못 짰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차기 확실한 대권주자로서 총선 판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는 데 반해, 문재인 후보는 지역선거에 매몰돼 PK에서조차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부산경남에서는 손수조밖에 안 보인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문 후보가 ‘문재인 대망론’으로 PK 선거판을 주도하며 그 추동력으로 전국적인 바람을 일으켜야 대선을 앞둔 4·11 총선에서 승산이 있는데 ‘동네선거’에 묻혀 대권주자로서의 존재감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PK에서는 ‘문재인-김두관 낙동강벨트 연대설’이 나오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이번 총선은 수도권 승부와 상관없이 낙동강 벨트가 실패하면 문재인-김두관 라인이 대선 후보군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문 후보 주변에서는 ‘(김 지사와의) 적극적인 연대와 정면 돌파 승부수를 동시에 띄우자’고 주장하는 그룹도 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문재인-김두관이 이명박 정권 심판론에 안주하지 말고 대선으로 표현되는 미래권력 창출의 주인공으로서 유권자들에게 평가를 받자는 것이 두 사람 연대론의 핵심이다.
문재인-김두관의 투톱이 무너져 가는 낙동강 전선을 다시 살릴 수 있다면 총선 승리 견인은 물론 차기 대선에도 파란불이 켜진다는 점에서 이들의 파이팅이 주목된다.
고진동 언론인
입장 다른 ‘친노남매’ ‘얼굴만 붉혔네’
하지만 이날 만남에서 양측은 일종의 ‘신경전’도 벌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민주통합당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이에 대해 “문성근 최고위원이 혁통 대표단과의 회동에서 비상대책위 출범, 비리나 전과에 연루된 후보자 전원 낙천, 그리고 경선 없이 단수 공천된 지역 전체에 대한 경선 실시 등을 주장하며 강경론을 이끌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고 한 대표도 ‘어려운 상황임을 이해해 달라’며 상황 무마에 나섰다. ‘최선을 다해 통합 정신을 살리고 있다’는 한 대표의 설명에 문재인 고문도 원론적인 얘기만 하고 나왔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만남 뒤 문 고문은 “충분히 설명 드렸다”며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당 주변에서는 “한 대표가 아직 상황 인식을 잘못하고 있다는 문재인의 섭섭함이 4줄짜리 논평으로 처리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 대표 또한 문 고문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 대표가 만남 말미에 문 고문에게 ‘당 대표의 입장을 너무 몰라준다’며 불만과 섭섭함을 토로했다는 것. 한 대표는 임종석 총장의 불출마는 받아들이면서도 사무총장직 사퇴서는 반려, ‘혁통’ 측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했다.
한편 민주통합당 주변에서는 “한 대표가 대표직 사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대표직을 던져서라도 상황을 정리해나가겠다는 게 한 대표의 의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 대표가 실제로 대표직 사퇴를 ‘이행’할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자신의 타개의지가 분명하다는 것만을 밝히는, 선언적 의미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