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내 경질 목소리 높지만 대통령실 눈치보기…민주당 ‘여권 엄호 나쁠 것 없다’ 탄핵 채비하지만 역풍 우려도
12월 1일 국회 본회의 개의가 무산되면서 민주당이 발의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보고는 불발됐다. 해임건의안은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이 이뤄져야 한다.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본회의가 열리면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만났지만, 본회의 개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김진표 의장은 12월 8~9일 양일간 본회의를 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민주당은 11월 30일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발의, 12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안건을 보고할 예정이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 없는 본회의 일정은 안 된다”며 김진표 의장을 압박했다.
민주당은 “본회의 개의는 국회의장 결단에 따라 가능하다”고 했지만, 김 의장은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본회의를 개의하지 않았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12월 2일 본회의 무산에 대해 “명백한 월권이자 직권남용”이라며 같은 당 출신의 김진표 의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이 장관이 안전 및 재난 관련 정책 수립을 총괄하는 책임자임에도 법률이 부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해임건의안을 냈다.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에 기재된 사유는 다음과 같다. △이태원 참사 당일 피해 최소화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점 △경찰·소방에 대한 최종 책임자로서 참사 당일 재난 안전 관리 사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점 △참사를 축소하고 책임을 회피한 점 △경찰 지휘 감독권자로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가 일선 경찰 소방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 등이다.
민주당은 해임건의안 단독 처리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의석수로 밀어붙이면 국민의힘이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원내 과반 이상의 169석을 가진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셈이다.
당초 민주당에선 해임건의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일찌감치 이 장관의 탄핵소추를 적극 검토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선 해임건의안을 건너뛰고 바로 탄핵소추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지도부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해임건의 절차가 탄핵소추에 선행돼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윤 대통령의 거부를 탄핵소추 명분으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11월 30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해임 건의를 거쳐서 탄핵으로 가는 부분은 대통령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분명한 것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탄핵까지는 간다”고 강조했다.
국회의 국무위원 탄핵소추 요건은 해임건의안과 같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발의, 재적의원 과반 찬성’이다. 탄핵소추 역시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셈이다.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최장 180일인 헌법재판소 심판까지 탄핵 대상자 직무는 정지된다. 헌정사상 국무위원이 탄핵된 사례는 아직 없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대통령 최측근으로 실세인 이상민 장관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국정조사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느냐”며 “이 장관 관련된 자료 받는 것도 쉽지 않을 건데, 이 장관의 직무정지를 위해서라도 탄핵카드가 옳다”고 말했다.
여당 내부에서는 민주당의 이러한 강경 대응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법 리스크’가 연관이 있다고 의심하는 기류가 돈다. 대장동 수사가 이 대표를 옥죄고 있는 가운데, 이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상민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정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장관을 그냥 해임하겠다는 것은 무슨 경우냐”라며 “당대표 이슈를 덮기 위해, 국회를 계속 정쟁의 도가니로 몰아가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라고 했다.
사실 이 장관 거취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도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태원 참사 초기 연이은 설화로 민심에 불을 지른 이 장관 경질 없이 출구전략 마련이 힘들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실제 당에선 대통령실 정무라인 등을 통해 이 장관을 서둘러 경질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참모들도 이 장관에 대한 부정적 여론들을 보고서 형식으로 올렸다.
하지만 이 장관 뒤에는 ‘윤심’이 있었다. 이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서울대 법대 4년 후배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측근 인사다. 여권에선 ‘좌동훈 우상민’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다. 이 장관이 윤 대통령 핵심 참모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못지않은 실세라는 의미다. 여권의 한 원로 인사는 “윤 대통령에게 한동훈은 철저하게 아랫사람이다. 그런데 이상민은 좀 다르다. 편한 동생 같은 느낌으로 오히려 속 얘기를 한 장관보다 더 많이 한다는 말이 있다. 한동훈이 심복이라면 이상민은 복심”이라고 귀띔했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문에 이 장관과 동행하는 등 ‘이상민 경질론’을 불식시키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오히려 이 장관에 힘을 실어주기까지 했다. 11월 29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 장관을 경질하거나 명예롭게 사퇴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겠느냐”는 대통령실 관계자 말에 크게 역정을 내며 ‘무슨 민주당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는 취지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대통령실의 ‘이상민 엄호’ 분위기는 집권당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장관 거취에 부정적이던 기류는 수면 아래로 잠겼다. 친윤 인사들은 “이 장관 다음 타깃은 윤 대통령”이라는 논리를 거론한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윤심도 그렇고…. 이 장관이 (국정조사 대상에) 포함됐으니 안고 가자는 분위기”라고 당내 사정을 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여전히 이 장관을 안고 가면 향후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많다. 국민의힘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이상민 장관 한 명만 내주면 의외로 모든 게 풀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장관을 내주고 예산안을 얻는 시나리오가 검토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아낀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결단을 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지금 이 장관 경질 목소리를 꺼내기 힘든 상황이다. 당이 대통령실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가에선 이 장관을 바라보는 국민의힘의 곱지 않은 시선이 향후 여권 지형에 잠재적인 불씨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대통령실의 일방통행식 결정에 대한 불만이 언젠가 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의 중진 의원은 “정치적 문법으로 보면 이 장관 해임은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다. 많은 의원들이 이 쉬운 문제에 왜 대통령이 오답을 내고 있는지 납득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실에 대한 이런 반감은 결국 윤 대통령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이상민 지키기’가 계속될수록 나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 장관 탄핵 카드를 쥐고 전선을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11월 9일 발표(7~8일 이틀간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이상민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가 54.4%로 절반이 넘는 응답률을 기록했다.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 어려우므로 사퇴할 필요는 없다’는 답변은 39.6%였다(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처럼 이 장관을 둘러싼 공방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여야 모두 역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수민 평론가는 “윤 대통령이 알아서 이 장관을 경질시키는 게 최선이다. 결국은 윤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해임건의안을 구실로 국정조사를 보이콧하는 것은 손해가 될 수 있다”면서도 “장관 탄핵 소추안까지 가려면 민주당이 설득력과 명분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민주당이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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