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0년 공직윤리지원관실 압수수색 모습. 당시 검찰의 수사가 ‘형식적’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민간인 불법사찰은 지난 2010년 6월 김종익 KB한마음 전 대표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불법 사찰을 당했다고 폭로한 사건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7명을 직권남용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기소하면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검찰은 최종석 전 행정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 ‘윗선’으로 지목된 이른바 ‘영포라인’의 연루 의혹은 밝혀내지 못해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수사 과정에서 이들의 개입 여부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들을 일부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를 ‘고의로’ 누락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 청와대 개입 논란
검찰이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2010년 7월 5일이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7월 9일 검찰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했다. 장 전 주무관이 최종석 전 행정관(현 주미 대사관 근무)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압수수색 이틀 전인 7월 7일이다. 장 전 주무관은 “7일 오전 최 전 행정관 전화를 받은 뒤 오후에 컴퓨터 하드디스크 4개를 수원의 한 업체로 가져가 디가우징(자력을 이용해 컴퓨터 자료를 복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했다”고 말했다. 장 전 주무관은 “최 전 행정관이 같은 날 오후 2시 이영호 전 비서관이 쓰던 것이라며 ‘대포폰’을 건넸다. (디가우징) 작업이 끝난 뒤 고용노사비서관실로 반납했다”고 덧붙였다.
야권에선 이러한 증거인멸 지시가 최 전 행정관의 독단적인 판단 하에서 이뤄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고용노사비서관실을 장악하고 있던 ‘영포라인’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것이다. 장 전 주무관, 김충곤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1팀장,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 등은 모두 포항 출신이다. 민주통합당 MB정권비리 및 불법비자금진상조사특별위원회(특위)는 국회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이영호 전 비서관은 증거인멸을 실제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최종석 전 행정관을 통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지휘하고 보고를 받는 위치에 있었다. 또 이 전 비서관은 박영준 전 차관을 ‘형’이라고 부르며 서울 시내 호텔에서 최종석 전 행정관 등과 여러 차례 회동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공직윤리관실(김충곤)→고용노사비서관실(최종석·이영호)→박영준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증거인멸 과정에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검찰 부실 수사
장 전 주무관은 검찰 수사에도 의문을 나타냈다. 우선 압수수색이 ‘형식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장 전 주무관은 “직원들이 비공식적으로 업무를 어디에 보고하는지 나눠놓은 업무 분장표에는 ‘EB’(이영호 전 고용노동비서관을 지칭)도 있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증거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져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검찰이 압수한 박스에 서류 대신 구겨진 신문지가 채워져 있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도 “당시 압수수색이 다소 느슨하게 진행됐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수사 착수 이후 4일 만에 압수수색을 하는 것 자체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게 검찰 내부의 평”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장 전 주무관은 “대포폰 통화 내역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중 수사 검사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더니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수사를 부실하게 했다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자 야권은 이번 장 전 주무관 폭로 이후 불거지고 있는 검찰 재수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검찰이 아닌 제3의 조사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각각 서울중앙지검장과 민정수석으로 수사 지휘선상에 있던 노환균 법무연수원장과 권재진 법무부장관이 건재한 상황에서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야권은 “검찰이 청와대 등의 요청으로 (증거인멸 과정을) 묵인했다”는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권재진 장관과 노환균 연수원장의 개입 여부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청와대가 이번 사건에 개입했다는 의혹과도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민주통합당 중진 의원은 “검찰은 믿지 못한다. 총선이 끝나면 국정조사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제 와서 왜?
그렇다면 1, 2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앞둔 장 전 주무관이 왜 하필 이 시점에 화약고를 터뜨렸을까. 이에 대해 정치권과 법조계 주변에선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우선 장 전 주무관이 최종석 전 행정관으로부터 받기로 한 ‘대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장 전 주무관은 검찰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증거인멸을 지시한 최 전 비서관으로부터 현대자동차, 은행협회 등의 취업을 약속받았다고 한다.
최 전 비서관은 장 전 주무관에게 “평생을 책임지겠다”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 전 행정관은 주미 대사관으로 발령을 받아 나간 이후 장 전 주무관과의 연락을 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 전 주무관으로선 ‘팽’당했다고 느꼈을 법도 하다. 이에 대해 장 전 주무관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여권 일각에선 이번 장 전 주무관 배후로 야권을 의심하기도 한다.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여권을 공격할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장 전 주무관을 접촉, 폭로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통합당 특위는 장 전 주무관의 다섯 시간 가량 분량의 녹취록을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 중진 의원은 “한 사람(장 전 주무관)의 용기에 의해 거대한 벽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절대 정략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