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사외이사·경기부지사·킨텍스 사장 거치며 ‘이재명 양대 사법리스크’ 쟁점 중심에…친문·친명 ‘계파 접착’ 역할 분석도
대장동 의혹 키맨으로 꼽히는 남욱 변호사는 11월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심리로 열린 대장동 배임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남 변호사는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실소유주 김만배 씨가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측 변호인으로부터 “김만배 씨가 이재명 성남시장과 친분이 있어 민간개발업자들을 위해 로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을 받은 남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김만배 씨가 직접 이재명 성남시장과 친분이 있다고 듣지는 못했고, 이 시장과 친분이 있는 다른 유력 정치인들과 친분이 있어 그분들을 통해 이 시장 설득을 부탁드리려 김 씨에게 부탁했다.”
유 전 본부장 측 변호인은 “김 씨와 친분이 있고 이재명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이 누구라고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 변호사는 정치인 세 명의 실명을 거론했다. 이광재 전 의원과 김태년 의원 그리고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이름이 남 변호사 입에서 나왔다. 다만 남 변호사는 “김 씨가 실제 그런 활동(로비)을 했는지 확인하지는 않았다”며 여지를 남겼다.
김만배 씨와 이화영 전 부지사는 성균관대 동문으로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이 전 부지사 이름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전 부지사가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의원실 보좌관으로 활동하던 이 아무개 씨의 이름이 대장동 의혹 한복판에서 거론된 적이 있다. 이 씨는 이 전 부지사 성균관대 1년 후배로 2019년 3월 천화동인 1호 대표로 취임한 바 있다.
천화동인 1호는 화천대유 자회사로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지난 3년 동안 가장 많은 배당금인 1200억 원가량을 수령한 곳이다. 2019~2020년 사이 녹음된 것으로 추정되는 녹취록에서 화천대유 실소유주 김만배 씨는 “천화동인 1호는 내 것이 아닌 걸 다들 알지 않느냐”면서 “천화동인 1호 절반은 ‘그분’ 것”이라고 말했다. ‘그분’의 정체는 대장동 의혹 수사 향방을 결정할 핵심적인 수수께끼로 꼽힌다.
대장동 의혹의 가장 깊은 비밀을 간직한 천화동인 1호 경영진은 이화영 전 부지사 보좌관 출신이었다. 이 전 부지사와 이 씨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강원도 동해시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D 컨설팅 사내이사로 공동 등재된 이력이 있다. 이 전 부지사와 이 씨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뒤에도 밀접한 사이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씨가 천화동인 1호 대표이사로 취임할 당시 이 전 부지사는 이재명 대표가 지사로 있던 경기도에서 평화부지사 직을 맡고 있었다. 2020년 1월 13일까지 평화부지사로 재임했던 이 전 부지사는 제21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공천을 받지 못해 다시 야인 신분이 됐다. 그러던 2020년 9월 이 전 부지사는 정치권에서 ‘경기도 내 최고 요직’ 중 하나로 꼽히는 공기업 사장으로 취임했다. 바로 킨텍스였다. 이 전 부지사가 킨텍스로 취임할 당시엔 ‘이재명 코드인사가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킨텍스 사장 등 경력을 쌓기 전 이 전 부지사는 독특한 경력을 하나 더 갖고 있었다. 쌍방울 사외이사였다. 이 전 부지사는 2017년 3월 31일부터 2018년 6월 22일까지 쌍방울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그는 쌍방울 임원직을 내려놓은 지 18일 만인 2018년 7월 10일 경기도 평화부지사 임명장을 받았다.
평화부지사로 취임한 지 4달 만에 이 전 부지사는 방북 등 여러 일정을 소화했고, 경기도가 ‘2018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를 주최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경기도는 이 행사를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과 공동주최했다. 서울시 용산구 소재 쌍방울 본사 사옥에 사무실을 둔 아태협은 경기도와 함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중심에 서 있다.
검찰은 10월 6일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로부터 3억 원대 뇌물 등을 수수한 혐의로 여의도 소재 한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해당 사무실은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북아평화경제협회였다. 이 전 부지사는 킨텍스 사장으로 취임한 지 5개월 뒤인 2021년 2월 23일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직에서 사임했다.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사무실은 제21대 총선 이후를 기점으로 이 전 부지사가 거점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부지사가 쓰던 사무실 위층에는 이해찬 전 대표 사무실이 있고, 해당 사무실 역시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 이 전 부지사는 이 전 대표 국회의원실에서 보좌관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부지사는 이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 사이 핵심 연결고리로 지목받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출마 당시 이해찬 전 대표와 함께 외곽조직 ‘민주평화광장’을 조직해 세를 규합했다. 민주평화광장 주요 발기인 500인 명단엔 쌍방울 국제총괄 부회장 출신 이 아무개 씨와 안 아무개 아태협 회장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관련기사 [단독] 이재명 외곽조직엔 왜? 쌍방울 대북사업 ‘키맨’의 정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이재명 사법리스크’ 각종 쟁점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선 이 전 부지사 의원 재직 당시 보좌관이던 인물이 어떤 경로로 천화동인 1호 대표이사가 됐는지, 김만배 씨의 ‘이재명 설득 로비’ 대상이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관련해선 쌍방울 대북사업을 추진해주는 대가로 금전을 수수했는지, 경기도·아태협·쌍방울이 추진해 온 대북사업과 관련해 대북송금 관련 혐의가 있는지가 향후 수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 전 부지사는 9월 28일 구속돼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구속 이후 이 전 부지사는 킨텍스 사장직 사표를 냈다. 그러나 고양시 출자·출연기관 운영심의위원회가 이 전 부지사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해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11월 3일 킨텍스 주주단은 이 전 부지사에 대한 해임을 의결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 입장에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대장동 의혹과 쌍방울 의혹 전반에 걸쳐 ‘돈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밝혀낼 중요한 인물로 여겨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 수사망이 좁혀지는 상황에서 이 전 부지사 존재감이 더욱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전 부지사가 이재명·이해찬 사이 연결고리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에 대해 채 교수는 “이해찬 전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장기집권 헤게모니를 꾸준히 강조해왔다”면서 “당 내부 권력이 친문에서 친명으로 넘어가는 데에도 이 전 대표가 중요한 브리지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했다.
채 교수는 “친문계와 친명계 등 계파를 이어 붙여 당내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접착제 역할을 이 전 대표가 한 것인데, 이런 이 전 대표 행보가 현재 ‘이재명 사당화’ 등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면서 “이화영 전 부지사는 ‘계파 접착’ 과정에서 실질적 플레이어로 활동한 정치인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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