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부산의 부모님이 애리조나 저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할 때 처음 미국에 와보시고 만 10년 만의 미국행이셨어요. 그동안 여러 차례 부모님을 초대하려 했지만 처음에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미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여유가 있어도 부모님께서 시간을 내지 못하시더라고요. 그러다 이번에 두 분이 함께 오시게 된 거였죠.
부모님한테 애리조나는 기억하기 싫은 도시였을 겁니다. 제가 미국 진출 첫 해에 주로 훈련했던 곳이 애리조나였는데 당시 날씨가 40℃를 넘는 찜통더위였거든요. 부모님이 그 델 듯한 운동장에서 밥을 먹고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며 많이 마음 아파하셨어요. 미국에서 야구를 하게 돼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셨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이 보신 현실은 아들의 미국 생활이 결코 만만치 않을 거란 장면들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어느덧 세월의 흐름과 함께 아들이 루키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를 치르고 있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시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아버지 입장에선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고 뛰는 아들을 TV가 아닌 관중석에서 직접 보시며 작은 감동을 하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직 갈 길이 먼 아들인데도 말이죠.
지난주 제가 타격폼을 수정 중인데, 적응이 되지 않고, 계속 불편해지면 다시 원래의 타격폼으로 돌아갈 거라고 얘기했었죠? 현재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번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첫 홈런을 날린 장면 기억나시나요? 그 전의 게임에서 바뀐 타격폼으로 타석에 나섰다가 공도 놓치고 번번이 리듬이 끊기는 걸 느끼면서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갔던 거죠. 그 첫 경기가 홈런이 나온 원정경기였어요.
타격폼을 바꾸려 했던 건 기복이 없는 성적을 내고 싶은 마음에서였어요. 그래서 1월 초부터 준비했고, 착실하게 단계를 밟으며 수정을 해나갔다고 믿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까 기대만큼 바뀐 타격폼이 제 몸에 배어 있지 않았던 겁니다.
시범경기 때는 컨디션을 맞추고 공을 많이 보면서 방망이를 대봐야 하는데, 너무 폼에 초점을 맞추니까 모든 게 엉망인 것 같아서 ‘내가 너무 성급하게 폼을 바꾸려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았고 자연스러운 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해답도 얻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지금은 훨씬 공에 집중할 수 있고 마음이 더 편해졌어요. 시즌 전에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던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일본 기자들이 자주 찾아와선 다르빗슈 유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오네요. 3월 14일 텍사스 레인저스 경기 때 다르빗슈 유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어떤 기분이냐? 다르빗슈를 상대해 보고 싶으냐? 일본 투수를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상대하는 기분이 어떠하냐? 등 다양한 내용들을 쏟아냅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대답한 얘기가 있어요. 난 메이저리그 투수를 상대하는 것이지 일본 투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물론 다르빗슈라는 투수를 상대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가 되고 설렘도 있고, WBC대회 때 두 차례나 당한 삼진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95마일의 공을 칠 준비가 안 돼 있을 뿐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여전히 다르빗슈는 메이저리그 투수들 중 한 명일 뿐이고, 다르빗슈한테도 저의 존재는 수많은 타자들 중 한 명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로 맞붙게 된다면 최선을 다해서 이기려 들겠죠. 그래서 흥미진진한 게임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