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중심엔 함신익 지휘자 자질 공방이…
KBS교향악단의 내분은 이번 정기연주회 취소사태 이전에도 산재해 있었던 문제였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상임지휘자 함신익 씨가 자리 잡고 있다. 도대체 악단 내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일요신문> 취재결과 사안의 심각성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원래 교향악은 수많은 악기들로 이루어진 관현악단의 정교한 협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모든 것은 민감한 귀를 가진 지휘자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조화미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향악단에서 지휘자와 단원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불협화음이 날 수밖에 없고 청중을 감동시키는 명연주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지난 3월 7일,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KBS교향악단이 666회 정기연주회를 불과 하루 앞두고 전격 취소했기 때문이다. 연습과정 중 발생한 내부갈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KBS 측은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일부 단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단원이 연습과정 중 사측이 섭외한 객원 연주자에게 욕설과 폭언을 가했으며 향후 적절한 사과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부 객원연주자는 단원들의 압박을 못 이겨 병원에 실려 갔다고 주장했다. KBS 담당부서는 이와 관련해 내부 전산망을 통해 당시 있었던 일부 단원의 욕설이 담긴 음성파일을 올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와 만난 모 단원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단원 L 씨는 “처음부터 사측과 지휘자 함신익 씨는 정기연주회를 열 생각이 없었다. 아예 티켓박스가 닫혀있어 항의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단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일부 객원 연주자에게 욕설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연주자가 의도적으로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서 우리를 자극했다. 사측이 올린 음성파일은 앞뒤 정황을 자른 채 악의적으로 올린 것이다. 또한 우리 때문에 한 객원 연주자가 실신해 병원에 실려 갔다고 하는데 그는 우리와 무관하게 급체해 병원에 간 것이다. 이와 관련된 정황과 증거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연주회를 앞두고 연습을 강행했지만 지휘자 함 씨는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연습을 거부했다. 내부 트러블 때문에 연습을 안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책임은 사측과 지휘자에게 있다”라고 강조했다. 외부적으로 알려진 책임 소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지휘자 함 씨와 단원들 사이의 불화는 사실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0년 7월,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함 씨는 취임 초기부터 ‘낙하산’ 논란이 지속됐다. 취임 이전부터 대다수 단원들은 함 씨의 자질과 도덕성을 이유로 영입을 적극 반대했었다.
이와 관련 L 씨는 “함 씨는 기량 미달인데다 전에 있었던 대전시교향악단에서도 인사 개입 및 단원들에 대한 폭언, 학력 및 경력 위조 등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다. 확인해봐야겠지만 미국 유명 음대인 이스트만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다는 그의 학력부터 LA필하모니 경력까지 의혹투성이다. 우리가 적절한 지휘자 후보 50인 명단도 제출했지만 사측은 굳이 함 씨를 앉히려고 했다. 결국 사측은 외부 인사를 동원해 사내 규정에도 없는 ‘상임지휘자선정위’를 만들어 함 씨를 영입했다. 여러 가지 정황에 따르면 함 씨는 ‘윗선’과 연결된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사측의 입장을 고려해 ‘2년 후 다른 상임지휘자를 구해주겠다’는 김인규 사장의 조건을 수락하면서 함 씨를 받아들였다”라고 설명했다.
악단 내 갈등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함 씨와 단원들 사이에서 가장 큰 갈등 요인이 된 것은 ‘오디션’ 문제였다. 함 씨와 사측은 단원들에 대해 정기 오디션을 통해 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단원들은 함 씨와 사측의 불순한 의도가 담겨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함 씨와 사측은 단원들에 대한 오디션을 실시했지만 대다수 단원들이 이에 응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L 씨는 “세계 어디에도 단원들을 평가한다고 오디션을 보는 경우는 없다. 불순한 의도가 있다. 평가는 연습과정과 연주회에서 통상적으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함 씨는 객관적인 평가를 한다며 오디션 현장에 자신과 친분이 있는 외국인 지휘자 2명을 초빙했다. 알고 보니 아마추어급 수준 미달의 지휘자였다. 국내 최고 관현악단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또한 함 씨가 연습 과정이나 연주회에서 우리를 평가할 수 없다면 그의 실력이 미달된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후 공식문서를 통해 오디션은 객관성이 담보됐으며 사전에 합의한 만큼 이를 집단 거부한 단원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함 씨가 취임한 이후 단행된 일부 단원들의 징계건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사측은 일부 단원들에 대해 겸직위반 등을 이유로 직위해제 등 중징계를 내렸으며 지난해 10월에는 정기연주회를 앞두고 연습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8명을 중징계했다.
이에 대해 L 씨는 “물론 일부 겸직 위반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하지만 일부 단원의 직위해제와 같은 중징계는 지나치다. 또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연습 거부는 사실이 아니다. 함 씨가 먼저 자리를 떴다. 나 역시 지난해 사측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았는데 여러모로 불합리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L 씨는 함 씨의 객원 연주자 섭외와 관련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객원 연주자 기획은 전적으로 함 씨의 권한이다. 함 씨의 사인이 떨어지면 사측 운영부서가 실행한다. 그런데 함 씨는 실력보다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섭외한다. 예를 들어 2010년 미국 UN공연 당시 실력 없는 하프연주자를 섭외해 국제적으로 망신당한 적도 있다. 문제가 심각하다. 함 씨의 퇴진을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주장했다.
단원들은 지난 2월 7일 비대위를 구성해 기자회견을 통해 함 씨와 사측의 문제점을 공론화했다. 양측의 갈등이 정점에 다다르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최근 정기연주회 파행은 예견된 셈이었다.
사측은 여전히 정기연주회 파행에 책임이 있는 일부 단원들에 대한 징계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교향악단의 불협화음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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