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위원장과 김정은 부위원장이 지난해 군부대를 시찰하는 모습. 이날 김영철 총정찰국장(오른쪽)이 동행했다. 연합뉴스 |
북한 당국은 지난 2월 15일, 김정일 탄생일(2월 16일)을 앞두고 핵심인사들에게 ‘김정일 훈장’을 수여했다. 이번에 수여된 ‘김정일 훈장’은 지난 2월 3일 새롭게 지정된 훈장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0회 탄생일을 즈음해 강성대국 건설과 국방력 강화에 수훈을 세운 인사들에게 ‘김정일 훈장’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이 훈장 수여 명단은 전 세계 이목을 끌었다. 현재 북한을 움직이는 인물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명단이기 때문이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 총리 등 원로급 인사들과 리춘희 아나운서 등 현재의 권력구도와 무관한 인물들도 대다수 포함됐지만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리영호 군 총참모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 소위 말하는 ‘살아있는 권력’들이 함께 자리했다. 향후 북한의 권력구도를 판가름할 당·정·군 인사들의 면면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김정은 체제’가 궤도에 오른 지 벌써 한 분기에 다다른 지금, 북한의 권력구도는 어떻게 재편되고 있을까. 우선 현 정권 최고 실세로 떠오른 장 부위원장과 리 총참모장은 예상대로 후계자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고 있다.
이미 알려진 이들 외에 현재 권력구도 내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영철 총정찰국장이다. 그는 지난 2월 15일, 상장에서 대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상장으로 진급한지 불과 3년 만의 일이다. 그는 ‘천안함 폭침’과 ‘디도스 테러’ ‘황장엽 암살조 파견’ 등 그동안 굵직한 대남도발을 기획하고 수행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북한의 내부 정보를 다루는 대북 학술단체 <NK지식인연대>는 최근 권력구도와 관련한 흥미로운 내부 정보를 입수해 공개했다. 최근 북한최고지도부 내부에서 서서히 권력암투가 시작됐다는 취지의 보도 내용이었다. 이 단체가 그 암투의 핵심인물로 지목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 총정찰국장이다.
해당 단체에 정보를 제공한 북한 내부 소식통은 “김정일이 김영철을 중용한 이유는 자기 사망 후 일어날지 모르는 친위쿠데타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이는 호랑이를 키운 꼴이 됐다. 현재 간부들 사이에서 급변 시 김정은을 배신할 사람은 김영철이 가장 유력하다는 말이 나온다.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발표를 늦춘 것이 김영철을 의식했다는 소문도 있다”라고 전했다. 단체와 접촉한 또 다른 소식통 역시 “일부 주민들이 3대 세습에 대한 염증으로 내심 김영철 같은 사람이 나타나 정권을 뒤집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 내부에서 김 총정찰국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위원장은 생전에 사석에서 “회담에 관한 한 김영철만 있으면 문제없다”라고 말하며 애정을 보여 왔다. 김 부위원장 역시 김일성종합군사대학 재학 당시 그를 사실상의 군사적 멘토로 여겼다. 어린 김 부위원장의 군사적 개인교사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북한판 ‘왕의 남자’나 다름없다.
김 총정찰국장은 이미 지난 2010년 군 구조조정 당시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정면으로 맞서 권력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결국 고급정보와 외화를 다루는 ‘총정찰국장’의 자리를 최대한 활용해 기존 세력인 원로인사들을 권력구도에서 탈락시켰다. 군 내부에서도 최근 그에 대한 지지도가 급상승하고 있으며 심지어 ‘장성택 인맥’과 필적한 ‘김영철 사단’이라는 대안 세력이 성장할 수 있다는 예견도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김 총정찰국장이 권력구도의 가시권에 들어왔다면 물 밑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인물들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리두성 중장(한국의 소장에 해당)이다. 그의 계급은 한국으로 치면 고작 사단장급에 불과하지만 최근 김 부위원장이 공개 활동 시 그를 가까이 두고 있다. 올해에만 벌써 8차례나 김 부위원장의 지근에서 목격됐다. 일각에서는 그가 김정은 서기실의 ‘작전 담당 군사보좌관’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정성장 위원은 리 중장을 핵심 실세로 부상할 수 있는 인물로 지목했다.
김 부위원장의 혈육 중에서는 여동생 김여정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김 위원장의 영결식에서 목격된 바 있는 김여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용될 소지가 높다고 예견됐다. 김 부위원장과 마찬가지로 고영희를 생모로 둔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김 위원장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권력경쟁 구도에 있는 다른 형제와 달리 오빠 김 부위원장과도 사이가 좋다.
그런 김여정이 최근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정순’이라는 가명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정보가 중국 소식통들에 의해 나오고 있다. 그는 최근 당과 군 정보를 수집해 김 부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기자와 만난 한 대북전문가는 “고모인 김경희 경공업부장도 오빠인 김정일 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이와 비슷하게 김여정도 김 부위원장을 보좌하며 권력구도 중심에 서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처럼 몇몇 ‘키플레이어’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권력구도를 둘러싼 뚜렷한 세 싸움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몇 가지 단서는 포착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교체설이 나돌았던 군내 강경파 세력가 김격식 4군단장이 최근 아예 종적을 감췄다. 최근 조선중앙방송에 따르면 4군단장의 자리는 변인선이라는 인물이 새롭게 임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군단장은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의 장본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를 두고 그가 권력구도에서 아예 밀려난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