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룸살롱 황제’ 이 아무개 씨가 자신이 건넨 뇌물 리스트를 가지고 경찰들을 협박한 것으로 알려져 사실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경찰에 따르면 복역 중인 이 씨는 자신과 유착관계에 있던 전·현직 경찰관 25~30명을 리스트로 작성해 최근 내연녀 장 아무개 씨(35)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는 이 씨에게 전달받은 리스트에 나열된 경찰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이 씨한테 받은 돈(뇌물)을 돌려주지 않으면 리스트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져 사실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 씨가 수감 중임에도 불구하고 리스트를 작성해 경찰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금’에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탈세 혐의에 따른 재산 압류로 재정이 악화됐고, 무엇보다도 구속 과정에서 그간 뇌물을 건넸던 경찰들이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았던 것을 두고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현재 경찰은 장 씨의 ‘리스트 협박’이 있기 전에 이 씨를 사전에 면회한 경찰간부가 있었던 것을 확인하고 과거 이 씨와의 불법적인 금전거래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12월 초 강남경찰서 소속 A 경위가 옥중에 있는 이 씨를 면회했던 사실을 확인해 어제(3월 12일) 조사를 벌였다”며 “이 씨와 금전거래 등 유착의혹을 확인 중”이라고 13일 밝혔다. 이와 관련해서 A 경위는 장 씨의 요청으로 이 씨를 면회했을 뿐이고, 추징금을 내기 위해 3억 원을 빌려달라는 이 씨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씨가 현직 경찰관에게 당당히 3억 원을 빌려달라고 요구한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 관계자는 “현재 경찰은 과거 이 씨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가 징계를 받은 경찰관 60여 명 중에 이번 뇌물 리스트에 포함된 사람이 꽤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스트의 실체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고 내용 또한 어느 정도 신빙성을 담보하고 있을 것이란 게 경찰 내부의 판단이다.
실제로 이 씨가 작성한 리스트에는 고위급을 포함한 전·현직 경찰관 30여 명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뇌물 액수도 1인당 3000만~1억 원 이상에 달한다는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경찰 내부 관계자는 “경찰청은 이 씨의 ‘옥중 수금’과 관련해 뒤숭숭한 분위기”라며 “4월 출소 예정인 이 씨가 리스트를 검찰에 넘기겠다고 공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금품 수수가 사실로 드러나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라며 우려감을 표했다.
최근 수사권조정 문제 등으로 경찰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검찰도 이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3월 14일에 이뤄진 검찰 조사에서 이 씨는 검찰 측 질문에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 검찰 관계자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찰 뇌물 리스트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있을 것”이라고 짧게 답할 뿐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강남 룸살롱 황제로 통했던 이 씨는 2008~2009년 강남 일대 경찰관들에게 1000만 원을 투자하면 한 달에 이자 100만 원을 돌려주는 수법으로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씨는 한때 하루 매출이 4억~5억 원에 달할 만큼 유흥업계의 전설이었으며 당시 친분이 있던 경찰관들에게 술값, 명절 떡값 등 명목으로 수 억 원을 뇌물로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서울경찰청과 강남경찰서 감찰 담당자들이 최근 이 씨 접견을 통해 현직 경찰관 3~4명이 이 씨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2010년 수사 당시 이 씨를 세금포탈 혐의로 입건하는 과정에서 경찰과의 유착관계는 밝혀내지 못해 ‘부실 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2010년 8월 조현오 경찰청장 역시 이 씨가 10여 년간 유흥업소를 운영하면서 한 차례도 입건되지 않은 배경에 경찰의 비호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철저한 감찰을 지시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수사는 종결됐다.
이에 자치경찰연구소 문성호 소장은 3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찰, 검찰, 법원 등지에 이 씨에 대한 비호세력이 포진해 있다. 이에 관한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당시 이 씨의 대포폰 2개에서 8만 4000건의 통화를 한 내역이 밝혀졌다. 하지만 경찰은 현직경찰 63명만이 연루된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여기에 처벌받은 사람은 경위 이하 하위직 경찰이 대부분이었다. 이 씨와 통화한 나머지 24명에 대해선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남 룸살롱 황제 사건에 경찰 수뇌부 연루와 은폐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어 문 소장은 “공개 안 된 24명 중에는 경찰 최고위급 인사도 포함돼 있다는 제보가 있다. 만약 그 때문에 공개를 안 하는 것이라면 상당히 부적절한 처사”라며 “지난해 말 이 씨가 병보석으로 잠시 풀려났을 때 리스트와 관련해 지인에게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이 씨의 발언은 녹취 파일로 보관돼 있는 상태이고 조만간 적절한 시기에 공개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이 씨는 계속되는 감찰에도 불구하고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장 씨가 갖고 있다는 리스트도 행방이 묘연하다. 따라서 문 소장이 언급한 녹취 파일이 공개될 경우 이 사건을 둘러싼 진실게임은 새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