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12조 원 투자에 7000명 채용 현실성 논란…태광산업 “사면 복권과 별개” 선 긋기
지난 19일 태광그룹은 2023~2032년 10년간 제조·금융·서비스 부문에 약 12조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청년 일자리 제공을 위해 전 계열사에 걸쳐 약 7000명 규모의 인원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 태광그룹에 따르면 태광산업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8조 원을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태광산업이 이끄는 제조 부문에서는 석유 화학‧섬유에 총 10조 원을 투자하고, 흥국생명·흥국증권·흥국자산운용 등 금융 계열사의 신규사업 및 계열사 통합 DB관리 센터 신규 구축 등에 약 2조 원을 투자한다.
태광그룹의 대규모 투자·채용 계획에 대해 시민단체 등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재무상태로는 12조 원 투자에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태광산업의 지난 3분기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6251억 원이다. 지난 2분기와 3분기에는 각각 79억 원, 481억 원의 적자를 봤다. 투자계획대로라면 연간 1조 원 이상 투자해야 하는데 현재 회사의 재무상태로는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형철 경제민주화시민연대 대표는 “태광산업의 현금성 자산이 6251억 원 정도인데 12조 원이나 되는 투자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 계획이나 관련 컨퍼런스 개최 계획도 없이 그냥 투자하겠다고만 해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형철 대표는 7000명 규모 인력 신규 채용에 대해서도 비현실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 흥국화재, 티시스 등에서는 구조조정을 하면서 7000명을 고용하겠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도 “그룹 전체 직원이 7000명이 안 되는데 10년 동안 7000명 신규 채용은 말이 안 된다”며 “공시에는 허위공시가 될 수 있으니 채용 규모는 공시 못하고 보도자료에만 넣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광그룹의 전 계열사 직원 수는 약 7000명 정도다. 10년 동안 현재 전체 직원 수만큼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공시에는 태광산업의 석유화학부문과 섬유부문에 각각 6조 원, 4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만 있을 뿐 신규 인원 채용과 관련된 내용은 없다. 태광그룹의 공시에 대해 경제민주화시민연대는 금융감독원에 태광산업이 허위공시를 했다는 내용의 진정서 제출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태광그룹의 과거 투자 계획 발표와 그 결과에 비춰 이번에도 그저 계획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경제민주화시민연대는 “작년에 발표한 728억 원 규모의 AN 합작법인 투자를 발표하고, 지난 11월에는 부산지역 계열사를 통한 엑스포 유치 지원 등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한 세부계획이나 실행 여부에 대해 알려진 바 없다”고 밝혔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앞서 발표했던 투자계획과 지원은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다만 AN합작법인 투자는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투자 집행 시기나 인원 확충, 설비 확대 등의 부분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태광산업 지분 5.8%를 보유하고 있는 트러스톤자산운용(트러스톤)은 태광그룹의 투자계획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트러스톤은 “태광그룹은 작년 5월과 올해 5월에도 이미 비슷한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지만 실질적인 투자는 제한적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트러스톤은 “태광그룹이 이번에 발표한 투자계획이 심사숙고해 수립한 실질적인 계획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며 “10조 원대라는 중대한 발표에도 재원조달 계획이나 시행시점, 투자방식, 기대효과 등에 대한 설명이 없는 점도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고 밝혔다.
트러스톤은 태광그룹이 내년 1월 19일까지 투자자 대상 설명회를 개최하고, 오는 12월 29일까지 공시 등을 통해 설명회 개최 여부를 결정해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 트러스톤 관계자는 “투자자 대상 설명회나 설명회 개최 여부 결정에 대해 요청한 상태고, 아직 이에 대한 답변은 받지 못했다”며 “태광산업이 투자자 대상 설명회를 개최하지 않는다면 사측 대응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논의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곳곳에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태광그룹의 투자계획이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의 특별사면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호진 전 회장은 업무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징역형을 받고 지난해 10월 만기 출소했지만 특정경제범죄법상 5년간 취업제한 규정을 적용받아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는 공동성명을 통해 “태광그룹은 연말 특별사면을 일주일 앞두고 12조 원의 투자를 대대적으로 발표했다”며 “이 발표는 공시내용조차 부실해 총수의 사면복권을 위한 공수표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고 전했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투자계획은 이호진 전 회장의 사면 복권과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투자계획에 대해 계열사마다 실무자들이 세부적으로 논의도 계속 해왔고, 그에 따른 비용이나 자금 조달 계획들도 내부적으로 충분히 숙고한 후 발표했다”며 “동종업계나 경쟁업체들도 있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다 외부에 노출할 수 없어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자금 조달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금융시장 환경에 따라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차입도 하거나 사측이 가진 것을 담보로 하는 등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방안은 다양하다”며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실무자들이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해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7000명 신규인력 채용과 관련해서는 “대내외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인력이 줄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앞으로 기존에 잘 하지 않았던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공장 캐파(생산능력)를 늘리면 당연히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며 “또 그 사이에 내부 직원들의 조직 개편이나 이탈 등의 상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신규 인력 채용 계획을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 대상 설명회 개최 계획에 대해서는 “안건이 안건이니만큼 내부적으로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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