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회사 ‘티알엔’ 등 내부거래 이어 고배당 논란…급조한 ‘원케이블솔루션’ 공정위가 예의 주시
1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9월 검찰의 이호진 전 회장 불기소 결정에 대한 항고를 포기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태광그룹 19개 계열사들은 2014~2016년 ‘티시스’ 소유의 골프장인 휘슬링락CC가 공급하는 김치 512톤(t)을 95억 5000만 원에 사들였다. 티시스는 정보기술(IT) 업체로 태광그룹 오너 일가가 대부분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태광 계열사들은 비슷한 시기 이호진 전 회장의 부인 신유나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와인 유통업체 ‘메르뱅’에서 와인 46억 원어치도 구매했다. 공정위는 이호진 전 회장과 김기유 전 그룹 경영기획실장이 티시스와 메르뱅으로부터 김치·와인을 부당 구매하도록 지시·관여했다며 2019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김기유 전 실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지만 이호진 전 회장에게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호진 전 회장이 김치·와인 강매를 지시 또는 관여한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10월 만기출소를 앞두고 이호진 전 회장의 발목을 잡던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오너 일가가 소유한 계열사를 통해 내부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논란은 여전하다. 여기에 이호진 전 회장이 경영권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배당 수익을 높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중심에는 태광그룹 미디어 부문 계열사 ‘티알엔’이 있다. 최근 티알엔을 중심으로 계열사 간 거래가 늘고 있다. 티알엔은 이호진 전 회장(51.83%)과 자녀 이현준 씨(39.36%) 등으로 구성된 가족회사로 태광그룹 내 지주사 역할을 한다. 현재 대한화섬(33.52%)과 티캐스트(100.00%), 태광산업(11.22%), 흥국생명보험(2.91%), 흥국증권(31.25%) 등 태광그룹 계열사의 주요 주주다.
금융감독원(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티알엔 내부거래는 △2018년 279억 원 △2019년 375억 원 △2020년 477억 원 등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 기간 이호진 전 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배당금 43억 원을 수령, 개인적인 수익을 거둬들였다.
일감 몰아주기 행태가 도마에 올랐던 티시스도 마찬가지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티시스 전체 매출 8925억 원 중 6160억 원이 태광그룹 계열사들과 거래에서 나왔다. 그룹 계열사의 지원을 통해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티시스의 지분 39.16%를 보유하고 있는 이현준 씨는 2018~2020년 이곳에서 32억 7000만 원 정도의 배당금을 받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분에 따라 배당금을 지급하기에 거액의 배당금을 받았다고 무조건 비판할 수 없다”면서도 “수많은 계열사 중 지분이 많은 기업에 배당성향을 높여 문제가 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
배당성향은 배당금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것인데 배당성향이 높으면 기업이 번 돈을 주주들에게 많이 돌려준다는 얘기다. 이호진 전 회장과 이현준 씨의 합친 지분 91.19%를 보유한 티알엔은 2018~2020년 0.94~14.41%의 배당성향을 보였다. 이호진 전 회장이 지분 68.75%를 보유한 흥국증권은 같은 시기 배당성향 45.44%~57.13%를 기록했다. 반면 이호진 전 회장과 이현준 씨의 지분을 합해 지난해 말 기준 29.48%로 앞의 계열사보다 지분이 적은 태광산업의 2018~2020년 배당성향은 0.96%~1.23%였다.
태광그룹의 내부거래가 국회 차원의 문제로 번지자 그룹 측이 위장 계열사를 설립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태광그룹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공투본)는 최근 태광그룹 계열사인 ‘원케이블솔루션’과 관련해 공정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조사를 요청했다. 공투본에 따르면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사건이 논란을 빚자 태광그룹은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이호진 전 회장의 개인 소유 계열사들에 대해 인적분할·합병을 진행했다. 이때 통신배선 공사업 업체인 원케이블솔루션이 급조됐다.
이형철 공투본 대표는 “태광그룹이 지배구조 개선을 발표한 시점에 설립됐고 관련 임원들이 이호진 전 회장 측근들로 이뤄져 있다”면서 “103억 원이 주주 및 임원진의 차입금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매출 대비 비정상적 현금 흐름”이라고 말했다.
원케이블솔루션 임원 전원은 티브로드 간부 출신들이다. 티브로드는 태광그룹의 미디어 부문 사업을 책임져왔던 계열사로 지난해 4월 SK브로드밴드와 합병했다. '일요신문i'가 입수한 공정위 진정서를 보면 원케이블솔루션의 대표이사 홍 아무개 씨와 박 아무개 씨를 비롯해 주주 이 아무개 씨, 임원 허 아무개 씨와 김 아무개 씨 모두 티브로드 출신이다.
이 가운데 원케이블솔루션의 대부분 거래는 티브로드에서 이뤄지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원케이블솔루션과 티브로드의 거래 비중은 99.7%다. 원케이블솔루션이 티브로드와 전속거래를 통해 매출을 높인다고 해도 대기업에 99.7%의 영업권으로 400억 원 이상 규모의 매출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게 공투본 측 주장이다. 이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내용 파악 후 대응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2년 2월 횡령·배임 혐의로 이호진 전 회장이 구속 기소된 뒤 오너 부재 여파로 태광그룹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그 사이 이호진 전 회장의 ‘황제보석’ 논란과 검찰의 특혜 의혹에 그룹 이미지도 한없이 추락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대기업 총수의 은밀한 범죄행위 등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한계를 낳게 된 것”이라고 지탄했다.
태광그룹은 10월 이호진 전 회장의 만기출소를 앞두고 ‘ESG(친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개선) 경영’을 선보이며 그룹 이미지 개선에 나서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일각에선 이호진 전 회장이 ESG 경영을 진행하며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태광그룹 관계자는 “(이호진 전 회장이) 간 수술 등으로 인해 현재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복귀 시점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설명했다.
태광그룹의 내부 쇄신이 먼저라는 주장도 있다. 친환경 사회공헌을 펼치는 등 외부적인 노력에도 기업 오너 일가의 사익편취 논란을 덮기엔 사안이 중대하다는 것이다. 태광그룹은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으로부터 지배구조 등급 최하위 등급인 D등급을 받아 ESG 경영에 발맞추기엔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진단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 시대”라며 “총수 일가가 이윤을 남기는 데 목적을 둔다면 국민들의 지탄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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