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여자 컬링이 세계선수권에서 깜짝 돌풍을 일으켰다. 스킵을 맡고 있는 김지선에 대한 찬사도 이어지고 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빙판 위의 체스’로 불리는 컬링은 신체 조건보다 두뇌 싸움과 손재주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2002년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9전 전패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2009년 3승8패(10위), 2011년엔 2승9패(11위)의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1년 만에 8강도 아닌 4강에 진출하는 엄청난 성과를 이룬 것. 캐나다 레스브리지의 ‘2012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깜짝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태극 여전사들 중 주장 김지선(25)과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먼저 컬링이란 생소한 종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스코틀랜드에서 유래된 컬링은 각각 4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빙판에서 둥글고 납작한 돌(스톤)을 미끄러뜨려 표적(하우스) 안에 넣어 득점을 겨루는 경기다. 경기를 보면 한 선수(투구자)가 스톤을 던지고, 그 스톤이 20~30m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다른 2명의 선수가 스톤이 지나가는 길을 브룸이라고 하는 빗자루 모양의 솔을 이용해 닦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톤의 진로와 속도를 조절함으로써 목표 지점에 최대한 가깝게 멈추게 하기 위한 행동인데, 이를 스위핑이라 하고 2명의 선수를 스위퍼라고 부른다. 또한 팀의 주장은 투구자의 맞은편에서 스톤의 위치를 지정하고 진로를 선택하는 전략을 세우게 되는데, 이 선수를 스킵이라고 한다.
▲ 한국은 지난 23일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7 대 3 승리를 거둬 4강 플레이오프 티켓을 확보했다. |
“오늘(3월 23일)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이기기만 하면 PO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다가 결국 패했고, 이어진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7 대 3 대승을 거두는 바람에 PO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정말 감격스런 상황이었고, 마치 우승을 차지한 것처럼 눈물이 절로 나왔다. 이번 대회에서 8강에만 들어도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2014소치올림픽 진출 티켓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아직 대회가 끝나지 않았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3, 4위전을 임할 생각이다.”
결국 3, 4위전에서 캐나다를 이긴 대표팀은 아쉽게도 준결승전에서 스위스에 6-9로 졌다.
한국은 지난 17일 체코와의 첫 경기에서만 3-6으로 패했고, ‘컬링 종주국’ 스코틀랜드를 7-2로, 미국을 8-3으로, 이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스웨덴을 9-8로 꺾는 이변을 일으킨 뒤 이탈리아도 6-5로 제압했다. 덴마크와의 경기에서는 9-8, 1점차로 따돌리고 승수를 추가한 뒤 중국마저 7-5로 물리치는 등 순항을 이어갔다. 한국의 파죽지세에 세계선수권대회는 ‘이변’과 ‘충격’이라는 단어를 구사하며 태극 여전사들을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주장 김지선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세계 강호 캐나다 대표팀을 이끄는 일레인 잭슨 감독은 지역신문 <캘거리해럴드>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김지선 같은 선수를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김지선은 경기를 즐기러 나온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에 대해 김지선은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이런 얘기를 덧붙인다.
“빙상장 환경이 절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훈련을 하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다행히 연맹의 지원 덕분에 외국에서 전지훈련을 할 수 있었고, 외국 선수들을 상대하며 자신감과 경험을 쌓아갔다. 컬링은 다른 종목과 달리 선수가 아닌 팀으로 대표팀에 선발된다. 즉 지금의 대표팀은 경기도체육회 소속 선수들이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선수들간의 호흡 때문이다. 워낙 예민한 종목이라 선수들 사이에 팀워크가 좋지 않으면 성적을 낼 수가 없다. 지금의 선수들과 3년 동안 매일 5시간씩 훈련을 하다 보니 이런 성적을 안게 되었다. 노력한 보람을 얻었다는 점에서 더 큰 만족과 행복감을 느낀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했던 김지선은 컬링 선수로 활동하면서 가장 속상했던 순간을, ‘컬링’이란 종목 자체를 사람들이 알지 못할 때라고 말한다.
“도대체 컬링이 뭐하는 운동이냐? 스포츠 맞느냐?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설명을 하다가 <무한도전>에서 ‘인간 컬링’으로 방송했던 종목이라고 하면 그제야 조금 아는 사람이 생긴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다.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게 된다면 보도가 될 것이고, 그 기사를 본 사람들이 ‘컬링’이란 종목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한 환경에서 잘 버텼고, 이겨냈고, 성적을 냈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선수권대회 4강 진출을 이뤄낸 게 아닌가 싶다.”
경기도체육회 소속 선수이다보니 연봉을 받고 생활하지만, 그 액수는 여느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아주 미미하다. 그러나 김지선은 현재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돈을 생각했더라면 컬링을 못했을 것이다. 컬링은 해본 사람만이 아는 매력이 있다. 그것에 푹 빠져서 내 청춘을 여기에 다 바쳤다. 그러나 컬링은 나이를 먹어도 할 수 있는 종목이다. 즉 은퇴 시기가 따로 없다. 그 점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체력과 머리만 있으면 꾸준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결혼하게 된다면 그 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갈 생각이다.”
실제로 현재 대표팀에는 결혼 후 아기까지 있는 이현정이 선수로 뛰고 있다.
한편 경기도체육회 컬링팀을 이끌고 있는 경기도체육회 정영섭 전무이사는 “스킵은 팀의 승운을 좌지우지하는 아주 중요한 포지션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지선은 그 자리에 대한 부담을 많이 안고 있었는데, 올해부터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이곳 현지에선 김지선을 세계 최고의 스킵이라고 부르고 있다. 1년 만에 실로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라고 설명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