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30일 <옥수역 귀신>을 그린 만화가 호랑 씨가 웹툰 24편 유해매체지정에 대해 항의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유해물로 선정된 작품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작품과 문화부 선정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된 작품도 포함돼 있어 선정기준에 대한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만화평론가이자 한국만화가협회 집행위원인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를 만나 웹툰 심의 논란에 대해 짚어봤다.
#청소년 폭력이 웹툰 때문?
웹툰 심의는 지난 1월 9일 방심위에서 웹툰 폭력성에 대한 중점 모니터링에 착수하면서 가시화됐다. 이후 방심위는 2월경에 포털사이트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 24개 작품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고 각 사이트에 사전 통지했다. 심의 소식은 지난 2월 만화가협회에도 통보되기 시작했고 만화계의 반발을 사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방심위의 심의가 논란을 빚은 것은 모 언론사의 보도에서 기인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1월 7일 1면 기사에 ‘열혈 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제목과 함께 웹툰의 한 장면을 게재했다. 이틀 뒤 방심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포털사이트에 게재되고 있는 웹툰에 대해 모니터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청소년 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던 시기와 맞물려 일부 언론에서 청소년 문제를 만화 탓으로 돌리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지난 1월 7일 <조선일보>의 보도를 통해 방심위의 심의가 촉발됐다는 것이 만화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폭력성에 대한 규제 필요성
‘일부 폭력성 웹툰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 교수는 “물론 일부 웹툰들은 성인들에게만 허용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그렇다고 총 쏘는 만화를 본 청소년들이 모두 밖에 나가서 총을 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엉뚱한 데서 찾고 있는 것이다. 만화가 없었다면 청소년 폭력이 없어지는 것인가. 만화가 없었을 당시에 폭력은 없었는가. 폭력성에 대한 문제는 자율규제를 통해 조정해 나갈 수 있다. 이번처럼 마녀사냥 식의 심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작품 선정 기준 논란
작품 선정을 둘러싼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24개 작품 중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작품과 문화부 선정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된 작품 등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정연식 작가의 <더 파이브>는 지난해 말 ‘2011컨텐츠어워드 만화부문’에서 문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또 꼬마비, 노마비 작가의 <살인자ㅇ난감>은 지난해 문화부 선정 ‘오늘의 우리만화’에 뽑혔다. 여기에 이종규·이윤균 작가의 웹툰 <전설의 주먹>은 강우석 감독의 차기작으로 확정돼 영화화를 준비 중이다. 이밖에도 지난해 여름 이틀 연속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았던 <옥수역 귀신>도 유해물로 지정됐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심의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라에서 주는 상을 받은 작품도 규제가 되면 나라가 잘못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박 교수는 포털사이트의 웹툰만을 대상으로 삼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웹툰은 스포츠신문 사이트에도 있고 일간지, 인터넷 신문에도 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 웹툰만을 규제 대상으로 삼은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오히려 포털사이트는 자체적으로 19금을 선정하는 등 보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방심위가 얼마나 급작스럽게 심의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소년보호법과 유해매체
‘방심위로부터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 교수는 “해당 웹툰 작품은 19금 표시가 붙게 되고 포털사이트 로그인을 통해 성인인증을 한 뒤 웹툰을 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박 교수는 이번 심의 논란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화계 입장에서 보면 이번 일을 계기로 만화 유통을 어떻게 할 것인지, 또한 표현의 자유와 규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자율적 심의 분위기 조성
웹툰 심의가 논란이 일자 만화업계 주변에서는 ‘자율 규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방심위의 웹툰 심의 논란이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고 진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에서 관심을 갖고 심의 규제 재검토를 지시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3월 29일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화계 인사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방심위와 협의를 계속해서 만화계 자정 방식을 유도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자율 규제로 가는 게 맞다. 미국의 경우 각 만화사가 자체적으로 등급을 매겨 유통을 하고 있다. 연령별 등급안을 만들고 18세 이상 성인물은 로그인을 통해 보게 하고 있다. 등급이 적합하지 않다거나 문제 제기가 들어오면 재논의를 통해 조정을 해 가면 자율적으로 심의가 이뤄질 수 있다. 방심위도 만화계가 자율심의를 통해 자체 규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