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치훈 삼성카드 사장(왼쪽)과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뉴시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지난 2010년 12월 삼성SDI를 이끌던 최치훈 사장이 삼성카드로 부임하면서부터 정태영 사장과의 치열한 경쟁은 예고됐다. 두 사람은 꽤나 공통점이 많다. 오랜 외국 생활을 했지만 금융에 대한 경험이 없어 처음에는 우려의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경영스타일을 보이며 두 사람은 매번 ‘파격·혁신’을 시도했고 그만큼의 성과도 거두며 각자의 입지를 넓혀왔다.
서로 닮은 탓인지 곳곳에서 부딪치기도 했다. 팽팽한 기 싸움에 먼저 칼날을 겨눈 쪽은 정 사장이었다. 최 사장은 취임 전부터 현대카드의 최상위고객(VVIP) 전용 ‘블랙카드’의 회원이었다. 2005년 출시된 블랙카드는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만 발급 받을 수 있는 등 귀족 마케팅의 일환으로 탄생한 특별한 카드다. 업계 최초로 시도한 뒤 시장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VVIP 열풍’을 일으켰던 만큼 정 사장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이 때문인지 정 사장은 최 사장이 삼성카드에 취임하자 “경쟁사 CEO(최고영영자)에게 VVIP카드 전략을 노출시킬 수 없다”며 블랙카드를 돌려 달라 요청했다. 이에 최 사장은 “마치 현대백화점이 자사 최고 VIP 고객에게 당신이 신세계백화점 사장이 됐으니 ‘우리 디스플레이를 안 보여주겠다’며 VIP카드를 뺏는 꼴”이라면서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카드를 되돌려 줬다.
정 사장이 다소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은 2009년 삼성카드가 출시한 ‘라움(RAUME)카드’ 때문이다. 라움카드는 블랙카드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것으로 현대카드는 “콘셉트부터 세부적인 내용까지 두 카드가 비슷하다”며 이 역시 표절이라고 보고 있다.
먼저 불만을 터뜨린 쪽은 최 사장이었다. 제로카드는 지난해 11월 14일 출시됐는데 삼성카드에서는 이를 두고 불만이 많았다. 8월 이미 기존의 모든 카드를 0~7번 카드로 바꾸는 카드 라인업 리모델링 계획을 발표하자 현대카드가 ‘물타기’를 했다는 것. 결과적으로는 삼성의 숫자카드가 현대 제로카드보다 사흘 앞선 11월 11일 출시되면서 소동은 마무리됐지만 최근엔 현대카드가 표절 의혹을 내비치면서 또다시 논란이 시작됐다.
지난 3월 26일 현대카드는 “숫자카드 시리즈인 ‘삼성카드4’의 무조건 0.7% 할인 혜택은 제로카드를 모방한 것이다. 표절 행위를 중단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내용을 담은 내용증명을 보냈다”며 선전포고를 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카드 시장에서는 기본 콘셉트가 중요하다. 제로카드 핵심 콘셉트는 ‘무조건’이다. 말 그대로 조건이 없다는 것인데 이는 각종 혜택을 줄이거나 까다로운 기준을 내세우는 최근 카드시장 트렌드와는 역행하는 것이라 주목받았다. 이런 콘셉트를 따라했다는 것은 명백히 표절”이라면서 “무분별하게 베끼는 실태에 일침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정 사장도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아는 일류기업들의 특징은 1) 현재가 아닌 다음 로드맵(Road Map)을 갖고 있다 2) 비판이나 반대를 할 때는 항상 대안을 제시한다 3) 숫자보다는 진취적 다이내믹스를 더 중요시한다 4) 정말 열심히 일한다”며 최 사장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삼성카드는 “신용카드가 한두 개도 아니지 않느냐. 유사한 카드가 나올 수도 있지만 표절은 아니므로 현대카드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최 사장이 워낙 준법정신을 강조하시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고 항변했다. 이처럼 법정 싸움 직전까지 갔던 ‘숫자전쟁’은 금융감독원의 적극적인 중재로 일단락 됐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잠깐의 휴전일 뿐 누구 하나가 물러서지 않는 이상 사사건건 대립하는 두 사람이기에 언제 어디서 부딪칠지 모르겠다”며 “다만 업계 전체의 이미지를 추락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