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1일 포항스틸러스와의 홈 개막전에서 김은선(가운데)이 경기 시작과 동시에 골을 넣자 동료들이 축하해 주고 있다. 사진제공=광주FC |
#돈은 없어도 열정이 있다
표현 그대로다. 정말 돈이 없다. 가난하다. 이런저런 부연 설명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어지간한 부자구단들은 더 이상 광주를 신생팀으로 보지 않는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여러 언론들은 K리그 판도를 놓고 광주가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내리라 예상했다. 축구 전문가들도 “작년에는 신생팀이라 전력이 파악되지 않았던 탓에 전력 노출을 최소화하며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상대 분석이 끝난 올해는 다를 것이다. 광주가 강세를 떨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모든 예견이 어긋났다. 광주는 단순히 깜짝 쇼가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그리고 ‘계산된’ 행보로 순항하고 있다.
광주 홈에서 열린 K리그 3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승부는 최대 이슈였다. 실로 엄청났다. 경기 전날만 해도, “최소 무승부 이상만 거두면 확실한 성공”이라고 했지만 광주는 아예 승점 3점을 땄다. 그것도 종료 직전에 동점골과 역전골을 거푸 터뜨리며 축구 팬들을 열광시켰다. 후반 40여 분까지만 해도 제주에 2-1로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광주 관계자들은 “지금부터가 광주 축구의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다”며 기대의 끈을 놓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확했다. 브라질 용병 주앙 파울로가 극적인 페널티킥 동점 골로 균형을 이루더니 대기심이 추가시간을 알리는 휴대용 전광판을 올리자마자 슈바가 역전 골을 넣었다.
광주 축구가 희망이 있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항상 자금에 쪼들리는 형편이다보니 작년 시즌을 마치고 연봉 계약이 쉽지 않았다. 첫 해 11위라는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에 후유증이 상당히 컸다는 후문이다. 베스트 일레븐, 그리고 일부 벤치 선수들을 향해 러브콜이 쇄도했다. “대략 15명 이상의 선수들이 한두 군데 이상 이적 제의를 받았다”는 광주 최만희 감독의 말마따나 선수들을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기왕이면 더 좋은 구단에서 뛰고 싶은 게 축구 선수라면 인지상정. 하지만 광주에는 다른 구단들이 갖지 못한 정이 있었다. 신인왕에 올랐던 이승기도 수도권 구단을 포함해 대략 4개 팀들의 연락을 받았지만 떠나지 않았다. 아니, 아예 떠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날 키운 건 광주다. 때론 좋은 팀으로 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우리만의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연봉이 확연히 오른 것도 아니다.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여전히 재정 형편은 달라지지 않았다.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무대에 입단하면 첫 해 연봉은 무조건 5000만 원을 넘길 수 없다. 2년차 최고 연봉 상승률 폭이 전년 대비 100%가 아닌 탓에 고작해야 1억 원 남짓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선수들이 광주 잔류를 택했다. 최 감독은 이런 제자들의 모습이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더 잘해줘야 하는데, 우린 그러지 못한다. 정에 호소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아무리 냉정하다는 프로에서도 정은 통했다. 한 게임 한 게임 승수를 쌓아갈 때마다 지출해야 하는 수당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어렵지만 강등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는 다른 구단들에 비하면 약과다. 광주 프런트도 요즘 신이 난다. “빚을 내서라도 우리 선수들은 꼭 책임진다. 월급을 제때 주지 않아 마음고생을 시키지도 않겠다. 수당도 타 팀들에 비하면 쥐꼬리에 불과하지만 역시 확실히 챙겨주겠다.”
#인간미 넘치는 광주
▲ 최만희 감독. |
선수들 대개가 모진 시련을 겪었던 터였다. 갈 데가 없어 광주를 노크할 수밖에 없었던, 하마터면 그냥 다른 팀 2군에서 머물 뻔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김동섭이나 박기동 등 일부는 일본 J리그 무대에서 별 볼일 없이 유턴한 케이스다.
아들을 좋은 축구 선수로 키우려면 학부모들도 만만치 않은 돈을 들여야 한다고 하는 요즘이지만 광주 선수들은 상당수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축구부원들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이 없었더라면 선수 생활도 지속하지 못할 뻔한 선수들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고 해도 광주는 모든 걸 만족시켜줄 수 있는 팀은 아니었다.
심지어 용병들도 그랬다. 주앙 파울로는 모국 브라질에서 형편없이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을 정도. 물론 광주에서는 고액 연봉자이지만 주앙 파울로는 밥도 제대로 사지 않는 팀 내에서 대표적인 짠돌이로 통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다. 그가 광주에서 받는 봉급 상당 부분을 털어 브라질 고향땅에 학교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동료들은 “그냥 ‘어지간히 돈을 아끼는 놈인가 보다’란 생각을 했는데, 고국의 불우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노력한다는 걸 보며 많은 걸 느꼈다”고 입을 모은다.
이렇듯 선수들의 인간미는 넉넉한 재정의 부자구단에서 뛰는 또래들과는 크게 다르다. 자신과 사진 한 장을 찍고 싶어, 사인 한 장을 받고 싶어 기다리는 팬들을 외면하고 훌쩍 샤워장으로 떠나거나 훈련장을 나서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오히려 먼저 직접 나선다. 간접적인 구단 마케팅 활동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활용해 팬들을 끌어올 줄 안다. 울산 현대 키다리 공격수 김신욱과 아마추어 시절부터 줄곧 친분을 과시해온 수비수 유종현은 “경기장에서 같이 응원해 주세요. ‘같이’의 ‘가치’를 느껴주세요”라는 글을 남겨 화제가 됐다.
되는 집안은 다르다고 한다. 광주가 K리그의 대표적인 ‘되는 집안’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러나 광주는 성적도, 선수들의 생활 태도도 확실히 달라 보인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