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아니어야 하고 ‘특정강력범죄’ 해당돼야…피해자 신상 노출 등 2차 피해 우려해 공개 안하기도
이은해와 조현수를 포함해도 7명으로 2021년 10명보다는 3명 줄었다. △2016년 5명 △2017년 3명 △2018년 3명 △2019년 5명 △2020년 8명 △2021년 10명으로 증가하던 추세가 감소로 돌아섰지만 그만큼 강력범죄가 줄어들었기 때문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피의자 인권도 중요하지만 신상정보 공개 피의자를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2022년 9월 2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살인, 인신매매, 강간과 추행 등 특정강력범죄는 모두 2만 8822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경찰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가 개최된 건수는 49건으로 전체 흉악범죄의 0.17%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49차례의 경찰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에서 공개가 결정된 경우는 28건에 불과하고 21건은 ‘비공개’가 결정됐다.
2010년 4월 15일 신설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정강력범죄법) 제8조의2는 ‘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를 다루고 있다. 1항에서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의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우선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으로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에만 신상정보를 공개한다. 또한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의 청소년에 해당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2항에선 ‘제1항에 따라 공개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피의자 인권 고려와 남용 금지 규정을 두고 사회적인 논란이 뜨겁다. 피의자의 머그샷(범인 식별을 위해 구금 과정에서 촬영하는 얼굴 사진) 공개도 화두가 되고 있는데 법무부와 행정안전부가 2항을 기반으로 ‘피의자 신상공개가 결정되더라도 현재 모습이 담긴 머그샷은 피의자가 거부할 경우 공개할 수 없고, 신분증 증명사진만을 공개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해 머그샷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사실 경찰이 신상정보 공개에 신중한 데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들이 자리 잡고 있다.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를 원하는 여론에 부합해 무조건 공개하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선 법적으로 불가능한 케이스가 있다. 2021년 7월 경남 양산에서 중학생 4명이 몽골 국적 여중생을 집단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해 학생의 신상 공개, 강력 처벌 등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23만 2868명의 동의 서명을 얻어 답변 조건을 충족시켰다.
청원 답변에 나선 고주희 당시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현행법상 ‘청소년이 아닐 것’을 신상 공개 요건으로 하고 있어 이번 사건은 해당되지 않음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특정강력범죄법 제8조의2 1항에는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2022년 7월 15일 발생한 인하대 여대생 살인사건도 피의자 신상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피의자 A 씨에게 이날 새벽 성폭행 당한 뒤 건물에서 추락했고 한 시간 넘게 방치됐다가 행인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 도중에 사망했다. 행인 신고로 119구급대가 도착했을 당시 피해자는 출혈이 심했지만 심정지 상태는 아니었다. 방치되지 않고 A 씨가 바로 피해자의 구호를 요청했다면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렇지만 A 씨는 피해자가 3층 복도 창문에서 1층으로 추락하자 피해자 옷을 다른 장소에 버린 뒤 자취방으로 달아났고 결국 이날 오후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A 씨의 피의자 진술을 바탕으로 살인의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준강간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여론은 강력하게 신상정보 공개를 요구했지만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조차 열리지 못했다. 당시 A 씨의 혐의인 준강간치사는 신상정보 공개 대상인 특정강력범죄법이 규정하는 특정강력범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A 씨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경찰은 준강간치사 혐의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이 구속기간까지 한 차례 연장하며 고강도 수사를 벌여 죄명을 강간 등 살인죄로 변경해 기소한 것.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A 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1심 선고 공판은 1월 19일로 예정돼 있다. 결국 검찰은 경찰과 달리 신상정보 공개 대상인 특정강력범죄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렇다면 당시 경찰이 혐의를 잘못 적용해 신상정보 공개가 안 된 것일까. 법에 따르면 ‘강간 등 살인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상정보 공개 대상이 아니다. 법원이 준강간치사와 강간 등 살인 가운데 어느 혐의를 유죄로 인정할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신상공개가 가능하지만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비공개 결정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2022년 5월에는 ‘귀신이 들렸다’며 열 살 조카의 머리를 욕조에 수차례 집어넣는 물고문을 해 숨지게 만든 30대 이모 B 씨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30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피의자의 남편은 2심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 받고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2021년 2월 8일 발생했고 피의자 신상공개를 원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경찰은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었지만 비공개 결정이 나왔다. 경찰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는 “범죄의 잔혹성과 사안의 중대성은 인정되지만 B 씨 부부의 신원이 공개될 경우 부부의 친자녀와 숨진 조카 오빠 등의 신원까지 노출돼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비공개 이유를 설명했다.
2022년 10월 25일 저녁에는 40대 가장이 경기 광명시 소하동 소재 자신의 아파트에서 부인과 13세 아들과 9세 아들 등 3명을 흉기와 둔기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소위 ‘광명 세모자 살인사건’이다.
피의자인 40대 가장 C 씨는 범행 전후 폐쇄회로(CC)TV를 피해 이동하고, 옷을 갈아입은 채 PC방에서 알리바이를 만들었고 검찰은 이를 계획 범행을 저지른 정황으로 보고 있다. C 씨는 검거 당시에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이 자택 주변에서 흉기와 피 묻은 옷 등을 발견하자 결국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광명경찰서는 10월 27일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가족 간 범죄라 피해자 권익 보호도 중요하다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가족인 터라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면 자연스럽게 피해자 신상도 공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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