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을 지시한 ‘몸통’이라고 자처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지난 3일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사찰 대상 또한 전·현 정권 고위공직자를 비롯해 정·관·재계, 시민단체, 노동조합, 언론, 유명 연예인, 민간인 등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이 총망라돼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무차별적인 사찰 배경에 비선 실세 등 ‘윗선’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란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다. 실제로 문건 일부에는 ‘BH(청와대) 하명’이라는 문구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어 청와대 등 핵심 실세들의 개입 가능성을 부추기고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방대한 사찰 보고서 문건에 적시된 전·현 정권의 전 방위적 사찰 실태를 정리해봤다.
사찰 문건에 따르면 전·현 정권 모두 고위공직자를 비롯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겨냥한 무차별적 사찰을 진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총리실 조사심의관실(심의관실)이, 현 정권에서는 지원관실이 각각 사찰을 주도했다. 다만 심의관실에서는 개인 비리를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해 보고서를 작성한 반면 지원관실에서는 동향 파악과 정세 위주로 개인과 단체를 망라하고 정보를 취합해 보도자료 양식으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노무현 정권의 심의관실은 문건마다 ‘비위자료’라는 제목을 달고 조사대상자에 대한 간략한 프로필과 구체적인 비위 의혹을 서술했다. 일례로 2003년에 작성된 김영환 민주당 의원의 비위와 관련된 문건에는 “김영환은 15, 16대 재선 새천년민주당 소속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국회의원”이라고 설명한 뒤 “경기도 안산시 신길동 소재 ○○주유소 대표 장○○로부터 세무조사를 무마시켜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고 서술했다. 또한 “첩보는 ○○○이 ‘김영환 의원이 돈만 먹고 도와주지 않았다’라고 발설함으로써 알려진 내용”이라며 출처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이번 총선 때 안산 상록을에 출마한 김영환 민주통합당 의원은 4월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나에 대한 내용은 사실무근의 첩보에 불과하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흘려 선거에 개입한 청와대는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 지원관실이 작성한 보고서 문건에는 일부 장차관을 항목별로 별점을 매기고 ‘대통령 지시사항 이행실태’ 항목을 만들어 충성심 등에 대한 자체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맨 오른쪽은 공기관 감사 임원 등에 대한 보고서 양식. 조직적이고 상습적으로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2006년부터 2007년에 작성된 JU그룹 다단계 사기사건과 관련한 문건(박스 참조)은 20여 종이 넘는다. 이 보고서에는 JU 측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전·현직 경찰간부 명단과 금액, 직책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2007년에 만들어진 전국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공제조합 김 아무개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을 조사한 문건에는 김 회장이 비호했다는 특정인의 인사조치 공문이 첨부돼 있다. 이 공문에는 부당 지급했다는 급여 19개 목록의 전표번호와 액수, 작성부서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2004년에 작성된 허성식 전 민주당 인권특위 부위원장 관련 보고서에는 개인 주민등록번호와 집 주소, 휴대전화 번호까지 구체적으로 첨부됐다. 보고서에는 허 전 부위원장이 대우건설 남상국 전 사장의 연임을 지원하고, 이후 대우건설에서 토목공사를 발주받게 해주겠다고 한 정황이 담겨 있다. 2003년 보고서에는 인천시 윤덕선 농구협회장이 회사 납품과 관련해 비리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처럼 참여정부 시절 심의관실이 작성한 보고서 문건이 사실일 경우 노무현 정권 또한 불법사찰 논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현 정권 지원관실에서는 민간단체들의 내부정보와 정치인 개인 비리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8월 공직1팀이 작성한 ‘남○○(남경필 당시 한나라당 의원) 관련 내사건 보고’에는 사건 개요, 고소 내용, 대상자 비위사실, 향후 계획 및 조치 등이 일목요연하게 기록돼 있다. 다만 이 보고서에는 ○○신문의 취재 과정 등 일부 언론의 동향도 적시돼 있었는데 확인 결과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원관실의 사찰 보고서가 100% 팩트만을 기술했던 것은 아니었음을 방증하고 있다.
2009년에 작성된 ‘YTN 최근 동향 및 경영진 인사 관련 보고’에는 “노조와 회사 양쪽을 기웃거린 간부들을 강력히 경고해 태도를 시정하게 했고, 친노조 좌편향 경영·간부진은 해임 또는 보직변경 등 인사 조치했다”고 적시해 YTN 사태에 지원관실이 깊숙이 개입했음을 암시했다. 또한 ‘KBS 최근 동향 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에선 “반노조 세력이 노조 집행부의 사퇴를 요구했다”면서 KBS 노조 내부 분열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에 불씨를 지폈던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와 관련한 보고서에는 김 전 대표 주변 인사들의 실명과 출신 고교, 인적 관계 등도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특히 현 정권 지원관실에서는 64개 공공기관장과 감사, 233개 기관 임원 등에 대해 각각 정형화된 점검 양식과 특이동향 보고양식을 바탕으로 전 방위적인 감찰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양식에는 감찰 대상자의 경력상 특이사항 및 인적 네트워크를 기재하는 인적사항란을 비롯해 주요 정부정책 이행 및 경영효율화 추진실적, 직무역량, 도덕성 및 복무기강, 구체적 비위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도록 명시돼 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확보한 보고서 문건에는 이러한 양식에 맞춰 감찰 대상자들의 동향 및 행적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일부 장차관의 경우 항목별로 별점(최고 별5개)으로 평가를 하는가 하면 ‘대통령 지시사항 이행실태’란에 충성심과 사명감 등에 대한 자체평가를 기재하기도 했다.
경찰 고위급 인사들에 대한 동향 및 성향을 분석한 문건도 상당수에 달했다. ‘경찰청 보고’ 파일에는 전·현직 경찰청장의 성향 및 동향이 적시돼 있었고, ‘경찰 인사자료’ 파일에는 경무관, 치안감, 치안정감 승진 예정자들의 출신지역, 학력, 이력, 성향 등이 정리돼 있었다.
2009년 3월에 작성된 ‘경찰청 특수수사과 팀장 후보’ 자료에는 5명의 후보자 인사파일이 기재돼 있었다. 특이한 점은 특정 후보 비고란에 고딕체로 ‘적극 추천’이란 문구가 적시돼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원관실이 경찰 요직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정황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일본 불법대부업자 돈도 ‘꿀꺽’
지원관실이 작성한 ‘첩보입수 대장’ ‘내사 처리부’ ‘하명사건 처리부’ 등에는 접수일시, 피내사자의 소속과 직책, 첩보 및 하명 내용, 담당자, 진행상황 및 처리결과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특히 하명사건 처리부에는 BH(민정), 총리실 등 하명관서가 사안별로 적시돼 있다. 문건에 기재된 주요 인사들의 비리 첩보 및 하명 내용 등을 정리해봤다.
우선 첩보입수 대장에는 △조 아무개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이 비자금 50억 원을 조성한 뒤 참여정부 이 아무개 수석에게 제공 △이 아무개 국세청 S 세무서 조사과장은 ㈜일성산업개발의 법인제세 통합조사하면서 탈루 세액 삭감해주고 2억 상당 수수 △이 아무개 ○○경찰서 정보·보안과장은 승진심사와 관련,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사칭하여 승진에 영향력을 미치게 하고 있음 △백 아무개 행안부 차관보는 평소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여러장 소지하고, 부산지역 지인들로부터 달러나 현금 등을 용돈 명목으로 수수 △김 아무개 한나라당 중앙위원은 일본인 불법 대부업자로부터 문제 발생시 편의제공 및 변 호사 소개비 명목으로 금 4000만 원을 수수 △차 아무개 전 KBS 시청자센터장은 VIP 등 고위층과의 친분을 빙자하여 사기, 뇌물수수 및 인사개입 의혹이 있고 기획자 신 아무개 씨로부터 투자유치 명목으로 2억 2000만 원을 편취함 등이 적시돼 있다.
BH가 하명한 주요 내용은 △학력평가 담당 13개 교육청의 장학사들이 10박 11일 동안 이집트 등 관광성 외유 △신 아무개 방통위 국장이 민간기업 인사 청탁 및 방통위 내부 정보를 민간기업에 유출 △국립청소년 수련원 김 아무개 이사장이 편파인사 및 인사비리 단행 △‘댐을 세우면 수질 되레 악화’ 제하 ○○일보 기사(박○○ 기자)와 관련 환경부 내 정보유출자 색출 △고위공직자 중 아파트의 펜트하우스 분양받는 등 비위행위 내사 등이 적시돼 있다.
또 총리실 하명 내용으로는 △좌파환경단체 보조금 중단 관련 공문 △HID가 환경자원공사에 난입하여 난동을 부렸고, 그 배후에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동생이 있다는 첩보가 있어 확인 필요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 위촉자들에 대한 세평 및 여론 동향 수집 등이 적시돼 있다.
‘내사 처리부’ 문건에는 △김유정 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경찰청 홍보 담당관실로 용산사태 대비책 관련 이메일 발송 확인 △국방부정보사령부 공작여단장인 고 아무개 씨는 중국활동 중 중국국가안전부에 체포되어 방첩기관에 극비를 제공한 자로 현재 부당한 진급으로 내사 △이 아무개 한국석유관리원 이사장은 가짜 휘발유 판매조직과 결탁하여 골프 및 향응을 제공받고 단속정보 제공 혐의 등이 기록돼 있다. [홍]
‘JU그룹’ 사찰 내역 들여다보니… 여기만 14명 돈으로 강남서 구워삶았다
불법사찰 파문이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정부 시절 JU그룹에 대해 대대적인 사찰이 이뤄진 정황이 포착됐다. JU그룹 주수도 회장은 불법 다단계판매 영업을 통해 2조 1000억 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이고 회사 돈 284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7년 10월 대법원으로부터 12년 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이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2006년~2007년 사이 참여정부는 JU그룹과 관련, 수십 건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보고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부분은 주수도 회장이 경찰 간부들을 상대로 벌인 로비와 관련된 내용이다. 보고서에는 경찰 간부급 인사들이 JU그룹 핵심관계자와 석연찮은 채무거래를 한 과정과 내역이 상세히 담겨 있다. 그리고 검찰은 외관상으로 금전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채무변제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당사자들에게 소명서를 제출받은 것은 물론 가족 등 주변인들의 계좌 확인까지 진행한 것으로 적시돼 있다.
당시는 JU그룹이 경찰과 검찰, 판사와 공정위 간부 등 공직자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금품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을 때였다. 일부 고위공직자의 경우 투자 후 수당 명목으로 가족이나 친지 명의의 계좌로 거액을 수수했다는 구체적인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언론은 JU그룹 ‘금품로비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을 영문 이니셜로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보고서는 JU그룹 관련 계좌추적 결과 ○○경찰서 정 아무개 총경과 경찰청 박 아무개 치안감 외에는 관련된 경찰이 없다고 언급하면서도 주수도 회장이 2심 이후 자포자기 심리로 추가폭로할 경우 여전히 많은 변수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또 보고서에는 각 방송사별로 JU그룹 로비 관련 동향을 어떻게 상이하게 보도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나와 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JU그룹 경찰 금품로비(의혹) 명단’이다. 명단에 따르면 로비 의혹을 받은 경찰 간부는 경무관(1명)과 총경(13명), 경정(9명)을 포함해 총 39명이 리스트에 올라있다.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서울 경기권은 물론 대구 울산 전남 제주도까지 전국 경찰서에 골고루 분포해 있었는데 당시 강남경찰서에서 직책을 맡고 있었던 인물이 무려 14명이었다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연도와 금액이 상세히 적힌 금품로비 내역서까지 작성됐다는 사실이다.
보고서에는 해당 인사들을 상대로 △JU그룹 수사 관련 주수도 회장을 비롯해 언론에 거론된 한 아무개 씨 등 관계인을 알고 있는지 여부 및 알게 된 경위 △JU그룹 관계자와 식사 등 접촉 정도 및 선물·금품 등을 제공받은 사실 여부 △JU그룹 관련사에 가족·친척 포함 직간접적 투자(구좌 납입, 주식 투자 등)여부 △없다면 투자 권유를 받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 △JU그룹 관계자와 채권·채무 등을 이유로 금전거래를 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소명서를 받은 정황도 나와 있다.
그렇다면 당시 정부가 공기업도 아닌 JU그룹의 동향에 대해 예의주시하며 전방위적으로 사찰을 진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참여정부가 JU그룹을 상대로 대대적인 정보를 입수하고 보고받은 정황은 이미 과거 주 회장의 주장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주 회장은 2009년 5월 “노무현 정권 실세들이 ‘바다이야기’라는 초대형 권력형 비리를 덮기 위해 국정원, 검찰 등을 동원해 JU와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며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승규 전 국정원장, 명계남 전 노사모 회장 등 친노인사 9명을 고발한 바 있다. 당시 주 회장은 고소장을 통해 “‘바다이야기 게이트’ 무마를 위해 JU그룹의 사기 및 공무원 로비행각 등의 허위정보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같은 해 9월 각하처분을 내렸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