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전경. 국정원의 전신 안기부가 운영해온 미림팀은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지자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고 결국 해체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불법사찰 파문이 전·현 정권 간의 정보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현 정권의 민간인 사찰을 비롯한 불법사찰이 과거 정권에서도 관행처럼 은밀히 자행돼왔다는 사실이다. 국기문란 및 사회혼란, 불법·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공직자 감찰과 동향파악은 물론 반 정부 인사 같은 ‘정적’을 견제하기 위한 기획·표적사찰이 공식·비공식 라인을 통해 진행돼 왔다.
과거 정권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불법사찰 실태 및 어두운 그림자를 조명해봤다.
한국 현대사에서 사찰업무를 담당한 조직의 시초로는 1972년 6월 ‘미국 FBI와 같은 조직을 만들라’는 김현옥 당시 내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설립된 ‘치안본부 특별수사대’를 꼽을 수 있다. 특수대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비위에 대한 정보수집, 기업인들의 외화 해외유출 등 청와대의 특명사항을 전달받으며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다. 특수대는 훗날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던 사직동팀의 전신이기도 하다.
현 정부의 공직복무관리관실의 근원은 전두환 정권 시절 총리실 직속으로 설치됐던 사회정화위원회라 할 수 있다. 1980년에 발족된 이후 8년에 걸쳐 공직사회는 물론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사정기능을 담당했던 사회정화위원회는 애초 목적과 달리 단지 정권비호를 위한 전위기구로 악용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1990년에는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로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당시 보안사 소속 군인이었던 윤석양 씨가 “보안사가 야당의 유력 정치인을 비롯해 정치인과 학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노동계 인사 1300여 명에 대해 사찰을 했다”고 폭로하면서 수면위로 부상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국방장관과 보안사령관이 경질되는 등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또 보안사령부에 근무했던 재일동포 김병진 씨는 <보안사>라는 책을 통해 불법사찰 문제를 폭로하기도 했다.
사찰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조직은 일명 ‘사직동팀’이다.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라는 정식 명칭 대신 사직동팀으로 명명된 이 조직은 청와대 하명사건을 전담하며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동향 관리 및 관련 첩보수집을 담당했다. 정부 내 사설 정보기관과 권력 직할조직 등 음지의 성격이 강했던 사직동팀은 1997년 대선 당시 ‘DJ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사직동팀은 1999년 ‘옷로비’ 의혹 사건 내사, 한빛은행 대출 관련 비리 등과 얽히며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야당 정치인의 부인들까지 불법 사찰하고 권력 실세들에게 비선 보고를 했다는 의혹에 시달린 이 조직은 결국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10월 폐지됐다.
▲ 2005년 당시 열린우리당이 미림팀 재건과정에서 한나라당 관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요신문DB |
참여정부 시절에도 민간인을 상대로 한 전방위 사찰을 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어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여권은 폭로된 2600여 건의 문건 가운데 2200여 건이 참여정부 때 문건이라며 역공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 존재했다. 고위공직자 감찰업무를 맡은 이 조직은 건교부 장관의 동의없이 경찰청으로부터 차적 조회 단말기를 불법으로 들여와 2004년 6월부터 공무원과 민간인에 대해 1645건의 불법 차적조회를 한 의혹이 불거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청와대는 지난해 4월 서울지방법원이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직원이었던 고 아무개 씨가 이명박 대통령 주변인물 131명에 대해 불법사찰을 한 혐의로 유죄 판결한 사실을 근거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또 노무현 정부가 1000권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방대한 사찰 자료를 폐기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특히 청와대는 참여정부 당시 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 사찰한 사례들을 여러 건 공개했는데 공직자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사찰도 방대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조사심의관실이 정치인과 민간인을 상대로 불법사찰을 벌이면서 은행 계좌까지 추적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를 높이고 있다.
현 정권에서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비롯한 불법사찰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불법사찰을 지시한 ‘윗선’ 의혹 불똥이 청와대까지 튀면서 현 정권 최대 권력형 게이트로 확전될 조짐마저 일고 있는 형국이다.
이수향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