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DB |
정치권에선 삼화저축은행 퇴출을 막기 위한 이 씨의 정·관계 로비 실체가 드러날지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을 포함해 여권 유력 인사들 이름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 역시 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이 씨 계좌를 집중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가 이 씨 체포 소식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총선에서 패배한 야권은 ‘초대형 게이트’로 확전시켜 국면 전환을 노리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이철수 씨는 사채시장에서 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으로 불렸다. 금융권에선 ‘발이 넓은 로비스트’로 통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이 씨의 정체에 대해 아는 이들은 드물다. 평소 ‘이성민’ ‘이정훈’ 등 가명을 사용했고, 휴대폰 역시 여러 개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 씨와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다는 한 사채업자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고려대학교 법학과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니었다. 또 여당 현역 국회의원들과의 친분을 자랑한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검찰이 지난해 5월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지 않고 달아난 이 씨 체포에 애를 먹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합수단 관계자는 “이 씨가 신출귀몰했다기보다는 워낙 자료가 부족했다. 그만큼 이 씨가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해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를 체포함에 따라 그동안 답보상태였던 검찰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우선 수사팀은 이 씨가 지난해 영업 정지된 삼화저축은행과 보해저축은행을 사실상 자신의 ‘사금고’처럼 사용한 부분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 이 씨는 지난 2009년 보해저축은행에서 불법 대출받은 1000억대 돈으로 삼화저축은행의 대주주가 됐다. 그 후 이 씨는 신삼길(구속) 전 삼화저축은행 회장과 공모해 은행돈 175억 원을 또다시 부정한 방법으로 빌렸을 뿐 아니라 보해저축은행이 담보로 제공받은 52억 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빼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이 씨는 “모든 대출은 오문철(구속) 보해저축은행 대표가 주도한 것”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검찰 측은 “혐의 입증엔 문제가 없다”면서 “오문철 대표와 대질신문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씨는 주가조작 및 횡령 의혹도 받고 있다. 이 씨는 삼화저축은행에서 현금을 빼내 지난 2009년 7월 나무이쿼티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두 달 뒤 이 씨는 나무이쿼티를 내세워 코스닥업체 씨모텍을 인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 조카사위 전종화 씨가 등장한다. 전 씨는 나무이쿼티 사장 및 씨모텍 부사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와이브로 단말기를 생산하며 업계에서 우량기업으로 손꼽히던 씨모텍은 이 씨가 인수한 후 급격하게 자금사정이 악화됐다. 이 씨가 280억 원에 달하는 회사 자금을 횡령했기 때문이다. 결국 씨모텍은 지난해 3월 대표이사 김 아무개 씨가 자살했고, 9월엔 상장 폐지됐다.
지난해 12월 증권선물위원회는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제4이동통신 사업을 준비한다는 허위공시)과 관련해 이 씨와 전종화 씨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우량 중소기업이 악질적인 기업사냥꾼에 걸려 빈껍데기 회사로 전락하고, 수많은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이 이번 검찰 수사에 ‘유독’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 씨가 삼화저축은행과 보해저축은행 퇴출을 막기 위해 정치권과 금융당국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도 수사의 종착점을 로비 부분으로 잡고, 이 씨의 비자금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체포 당시 이 씨는 수중에 단돈 50만 원밖에 없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이 씨가 어딘가에 비자금을 숨겨놓았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합수단 관계자도 “이 씨 개인금고를 찾아내는 게 이번 수사의 핵심”이라면서 “로비에 들어갔던 돈도 여기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이 씨와 연관이 있는 계좌들을 모두 뒤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합수단은 지난해 신삼길 전 회장이 구속될 때 제기됐던 삼화저축은행 구명로비에 이 씨가 깊숙이 연루돼 있을 것으로 보고 당시 수사 파일들을 체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엔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 정진석 전 정무수석, 권재진 법무부 장관 등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모두 신 회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이다.
합수단 관계자는 “이 씨 역시 신 전 회장으로부터 그들을 소개받고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 중 일부와는 여러 차례 골프를 쳤다는 첩보도 있다”면서 “베일에 싸여있었던 이 씨가 신 전 회장 대신 구명로비 전면에 나섰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한 검찰은 삼화저축은행 대주주였던 이 씨가 회사 퇴출을 막기 위해 신 전 회장과 함께 이명박 정부 고위급 공무원들을 접촉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한다. 향후 이 씨에 대한 수사가 지난해 석연치 않게 마무리된 삼화저축은행 로비 쪽으로 확대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지난해 검찰이 신 전 회장을 수사할 당시 야권은 연일 ‘몸통설’을 제기하며 이상득 의원이 로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신삼길 전 회장과 친한 이웅렬 코오롱 회장이 이상득 의원에게 삼화저축은행 구명로비를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또한 신 전 회장과 박지만 회장 간 친분도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박 회장 부인 서향희 변호사가 삼화저축은행 고문으로 재직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박 회장과 신 전 회장이 만난 자리에 정진석 전 수석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참여했던 것으로도 전해졌다.
그러나 당시 검찰 내부에선 이들에 대한 수사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신 전 회장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고위 간부는 “신 전 회장이 여권의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할 만큼의 ‘거물’은 아니었다. 또 그럴 만한 배포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대부분 신 전 회장 주변에 있는 박지만 회장 등을 보고 모여든 것이었다. 밥 먹고 골프 쳤다는 이유만으로 유력 대권주자 동생을 섣불리 수사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씨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합수단 관계자는 “이 씨는 전문 로비스트다. 따라서 신 전 회장이 자리를 만들어주면 이 씨가 나머지는 알아서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석연치 않게 끝났던 구명로비 의혹의 실타래가 풀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이 씨 체포 소식에 청와대는 긴장해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이 대통령 형님을 비롯한 친·인척(전종화)과 측근들 이름이 다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으로 근무했던 윤 아무개 IB캐피탈 이사는 이 씨로부터 1억 원을 받고 씨모텍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50억 원에 인수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윤 씨 구속 후 조영택 전 민주당(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권력형 게이트로 발전될 사안”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었다.
총선에서 승리해 한껏 고무돼 있는 새누리당 역시 이번 사건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력 대권 후보인 박근혜 위원장에게도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신 전 회장과 관련해 동생이 구설에 오르자 박 전 대표는 “본인(박지만)이 아니라고 밝혔으니 그것으로 끝난 것 아니냐”며 옹호하고 나섰지만 이 씨 체포라는 새로운 변수가 나타난 이상 수사 결과에 따라 박지만 회장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얼마 전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차라리 민간인 사찰 정국이 계속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철수 수사는 청와대, 당 모두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검찰을 통제할 수도 없고…. 이철수 건이 총선과 사찰 때문에 묻혀서 다행이긴 한데 앞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청와대 분위기를 전했다.
야권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한 민주통합당 중진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비리 종합선물세트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또 박근혜 위원장 이름도 나오지 않느냐. 대선 정국에서 좋은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야권은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과 ‘미래 권력’이 동시에 얽혀있는 수사를 과연 성역 없이 해나갈지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이 씨가 총선과 사찰 정국으로 어수선한 시점에 전격 체포된 것도 곱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 앞서의 민주통합당 의원은 “검찰이 일찌감치 이 씨 신병을 확보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다는 얘기다. 이 씨와 가까운 사정기관의 고위 관계자들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말도 들렸다. 검찰이 민간인 사찰 수사에 이목이 집중된 틈을 타 ‘물타기’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합수단 관계자는 “말도 안 된다. 지금 민간인 불법 사찰 부실 수사로 검찰도 위기다. 정치적인 고려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가장 ‘스마트’하고 투명한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일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