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초등학교 신입생 예비소집일.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다. 직업 만족도 조사에서 초등학교 교장은 1위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
한국고용정보원 조사결과 지난해 우리나라에는 9000여 개의 직업이 존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마다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고 또 일부 직업은 소멸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는 직업군의 변화뿐만 아니라 직업에 대한 인식이나 만족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많은 연봉을 받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최고의 직업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그 척도가 되고 있다.
실제로 조사 결과에서도 우리가 좋은 직업이라고 인식해 온 판사(22위)나 변호사(57위), 의사(44위)는 베스트 2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외부적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종사자 스스로는 해당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은 무엇일까. 759개의 직업을 따돌리고 직업만족도 1위를 차지한 직업은 ‘초등학교 교장’이었다. 초등학교 교장은 백분위로 환산한 점수에서 총점 9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사회적 기여도, 직업의 지속성, 발전가능성, 업무환경과 시간적 여유, 직무만족도 등 5개 요소에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베스트 20 안에는 초등학교교장을 비롯해 대학교 총장과 교수 등 교육계 직업이 5개나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다음으로 만족도가 높은 직업은 성우(2위)와 상담전문가(3위)가 차지했다. 전문상담가인 가톨릭대학교 아동청소년가족상담센터 정순중 박사는 “현대사회에서 상담을 필요로 하는 가족이나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와의 상담을 통해 가족과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며 자신의 직업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98점으로 4위에 오른 가톨릭 신부는 종교계에서 유일하게 베스트 2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개신교 목사는 91점으로 40위, 전도사는 87점으로 64위를 기록했고, 수녀와 승려는 각각 100위권과 200위권 밖에 위치했다. 이에 대해 천주교 관계자는 “신부는 종교적 신념에 의해 선택되어진 것으로 일반 직업과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해 종교계의 만족도가 일반 직업의 만족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물론 만족도 조사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좋은 직업이라고 단정하거나 편한 직업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각 직업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고충이나 애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98점으로 직업만족도 6위를 차지한 학예사(큐레이터)는 종종 종사자들 사이에서 ‘학예노무사’로 지칭되기도 한다. 한국민속박물관 김창호 학예사는 “큐레이터는 한편의 영화를 찍는 일과 같다. 전시를 기획하고 유물을 전시하고 음향과 조명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또 유물 수집을 위해 1~2년을 해외에서 보내기도 하고 직접 귀한 유물들을 나르기도 하기 때문에 힘도 든다. 그래서 우린 큐레이터를 학예노무사라고 지칭한다”고 말했다.
11위(96점)를 차지한 ‘도선사’는 항만의 운항을 조정하는 직업으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동시에 요구한다. 도선사는 도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소형 도선선에 승선하여 거친 파도를 헤치고 다가가 보통 7∼10m에 달하는 도선사용 사다리를 이용해 수직암벽을 오르듯 거침없이 선박에 올라야 한다. 또 특수학교 교사(20위)의 경우 남다른 사명감이 없이는 힘든 직업으로 감히 편한 직업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이처럼 직업 만족도는 말 그대로 자신의 직업에 얼마나 만족하느냐의 차이에서 순위가 매겨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 조사는 각 5개 항목별로 만족도를 알아봤는데 각 항목별 만족도에 도 차이가 있었다. 사회적 기여도 부문에서 만족도 직업 1위는 도선사로 나타났고 장학사, 신부, 성악가, 학예사가 그 뒤를 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의 지속성 항목에서는 시인이 1위를 차지했다. 시인은 전체 직업 만족도에서는 54위에 그쳤지만 오랜 시간 자신의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직업의 지속성 부문에서는 1위를 기록했다.
발전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만족도를 나타낸 직업은 학예사로 나타났다. 김창호 학예사는 “학예사라는 직업 자체가 자신의 전공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직업이라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업무환경과 시간적 여유에서는 시인, 초등학교 교장, 대학교 총장, 철학연구원 등의 순으로 만족도를 나타냈다.
마지막으로 직무만족도에서는 초등학교 교장이 1위, 국회의원이 2위를 나타냈다. 또 목사와 육군장교, 도선사도 본인 직무에 높은 만족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업만족도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직업들은 대체로 업무환경이 열악하고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는 직업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목재가공 관련 조작원과 고무 및 플라스틱제품 조립원은 가장 낮은 만족도를 나타내 워스트 공동 1위에 올랐다. 전체 757위로 워스트 3위에 꼽힌 노점상이나 청소원(워스트 15위) 등은 열악한 직무환경 탓에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웨이트리스(워스트 12위)와 홍보도우미 및 판촉원(워스트 19위) 등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 직군들도 대체로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이밖에 사회적 인식보다 낮은 만족도를 보인 직업도 눈길을 끌었다. 국회의원은 전체 73위에 그쳤고, 전체 교사직은 90위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고연봉직으로 알려진 프로골프선수나 투자분석가(애널리스트)는 각각 96위와 100위에 그쳐 일반인들의 기대보다 낮은 순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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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철학 현실에 반영되면 뿌듯”
▲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강 선생님은 “대부분의 직업이 자본추구를 목적으로 하지만, 교장은 향후 20년을 내다보고 미래의 인재를 양성 하는 직업이다. 난 어린시절부터 초등학교 교사를 꿈꿔왔다. 그리고 그 꿈을 이뤘다.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20년 후 사회에 나가는 상상을 하면 무척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교장이라고 하는 자리는 ‘교육의 꽃’이다. 일반 교사들은 일선 학급에서 아이들을 위해서만 일하지만 교장은 학교 전체를 이끄는 교육자이면서 경영자다. 그만큼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더군다나 초등학교의 경우, 입시 부담이 있는 중·고등학교와는 또 다른 환경이다”라고 설명했다.
강 교장은 자신의 교육철학이 교사와 학생들에게 제대로 반영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직업 특성상 여가시간이 다른 직업에 비해 많다는 점도 이번 만족도 조사에 크게 반영됐다. 이에 대해 강 교장은 “물론 수업시간 때는 절대 수업에 집중해야한다. 다른 일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은 출근시간이 빠른 반면 퇴근시간도 빠르다. 또 방학이 있다. 가족과 보낼 여유가 많다는 뜻이다. 나 역시 내 아이와 방학기간 동안 지도를 들고 전국을 찾아 나섰던 좋은 추억이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직업만족도 조사 1위라는 타이틀과는 별개로 초등학교 교장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스트레스도 당연히 존재한다. 교장이라는 위치에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과의 소통을 잘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적 능력과 자질이 요구되기도 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만족도 2위=성우 서문석 회장
“아이들 언어전도사 보람 대단”
▲ 전영기 기자 |
서 회장은 “군대 가기 전 윤 선생님의 추천으로 CM송 몇 곡을 불렀다. 방송에서 내 목소리를 듣는데 전율을 느꼈다. 이후 성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군 제대 후 KBS 21기 성우공채시험을 통해 성우가 됐다”라고 말했다.
이번 직업만족도 조사에서 성우가 2위를 차지했다는 결과에 대해 그는 무척 자랑스러워 했다. 서 회장은 “현재 협회에 속한 각 방송사 공채 성우들은 750명 정도다. 우리 성우들 대부분은 최소 4~5년이라는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 자신의 꿈을 실현시킨 사람들이다. 우리는 단순히 입만 맞추는 사람들이 아니다. 목소리로 혼신을 다해 연기한다. 모두들 녹음할 때면 열정을 갖고 생방송처럼 진행한다. 심지어 최근 신입 공채 중에는 꿈을 위해 대학교 사회교육원 전임교수 자리를 포기하고 입사한 40대 성우도 있다. 그 만큼 다들 자기 일에 대해 열정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우로서 느끼는 보람은 무척 크다. 특히 난 애니메이션 더빙을 많이 했다. 영유아 아이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말을 배운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언어 전도사다. 이는 어마어마한 보람이다. 또 성우는 공채 2년 전속계약이 끝나면 프리랜서로 풀리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도 많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조사가 현실과는 다소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내적인 평가기준에서 성우라는 직업이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반면 현실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정기적으로 매년 공채 성우를 뽑는 곳은 KBS가 유일하다. 최근 방송 편성에서 외화 등 더빙 프로그램도 대부분 사라졌다. 직업에 대한 높은 만족도와는 별개로 취업 현황과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이 외부의 평가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