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원식 회장. |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남양유업의 행보에 동종업계 관계자들이 보이는 공통된 반응이다. 카제인나트륨 논란으로 한바탕 업계를 들썩인 남양유업이 이제는 소포제로 또다시 경쟁업체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터뜨리고 보는 남양유업의 무리수와 홍원식 회장의 ‘은둔경영’을 조명했다.
남양유업이 카제인나트륨에 이어 자사 두유제품 광고에 “소포제를 넣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또다시 눈총을 받고 있다. 소포제는 두유 제조 과정에서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넣는 보조제다. 인체에 유해하진 않으나 인공 첨가물이란 점에서 두부나 두유와 같은 식품을 제조할 땐 사용을 꺼리는 분위기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쟁사 두유제품에도 소포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남양유업은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광고를 내보냈고 그 결과 마치 타사 제품에는 소포제가 첨가된 것 같은 효과를 낳았다. 앞서 커피믹스 ‘프렌치카페’ 광고에서 “합성첨가물인 카제인나트륨을 넣지 않았다”는 광고로 벌어진 논란과 유사한 모습이라 더욱 밉상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 카제인나트륨이 포함된 불가리스 20s. |
연이은 사건으로 동종업계는 물론이고 소비자들에게도 미운털이 박혔지만 이전부터 남양유업을 둘러싼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주주권익을 배려하지 않는 독자적인 경영행보, 지나치게 폐쇄적인 기업문화 때문에 사방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특히 전문경영인 뒤에 숨어 어떤 사건에도 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홍원식 회장에 대한 불만도 날로 더해가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남양유업의 주주총회장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지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변호사는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전혀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이기적인 기업이다. 주가가 60만~70만 원에서 거래됨에도 불구하고 배당은 겨우 1000~2000원에 불과하다”며 “회사가 현금을 보유하면 투자를 하든지 하다못해 청사진이라도 제시해야 하는데 그냥 돈을 깔고 앉아만 있다”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또 “이사회 구성을 보면 오너 가족이 두 명이나 있다. 이름만 올렸을 뿐 회사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나 분명 권력의 중심은 홍 회장과 그 가족들이 쥐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도 이런 사실을 알기에 여러 차례 홍 회장과의 만남을 요청했으나 이를 다 묵살했고 주주총회장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양유업 관계자는 “회사는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홍 회장은 전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동반자 관계인 낙농업자들도 답답함을 하소연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목장주씨는 “까다로운 관리를 통해 최고의 품질을 생산한다고는 하지만 그 뒤에는 피 말리는 낙농업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아주지 않는다. 남양은 현금지원이나 기술전수와 같은 혜택을 내세워 특별한 배려를 해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른 업체들과 차이가 없다”면서 “하지만 급할 때면 낙농업자들만 들들 볶아대니 힘들다. 그렇다고 납품을 안 할 수도 없으니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곱지 않은 시선들이 남양유업을 둘러싸고 있지만 홍원식 회장은 여전히 은둔경영을 고집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별세한 홍두영 명예회장에 이어 2세 경영을 이어나가고 있으나 잇따른 비리 혐의로 구설수에 오른 전력이 있어 조만간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 남양유업 본사가 자리한 대일빌딩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경쟁사와 돌아가며 ‘맞짱’
남양유업은 유독 타 업체들과 마찰이 많았다. 1990년대 파스퇴르를 상대로 낸 허위비방광고 행위금지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첫 번째. 파스퇴르가 ‘남양유업의 제품에 비식용 화학첨가물이 들어있으며 식품에 사용할 수 없는 기계를 쓴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내자 발끈한 남양식품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아 대법원의 판결을 받기에 이르렀고 결국 남양유업의 승리로 끝났다.
그 사이 서울우유와도 한판 전쟁을 벌였다. 1993년 서울우유의 신제품 용기가 자사의 것과 식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모방했다며 의장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는데 이에 서울우유도 맞소송에 나선 것. 법원 서울우유의 손을 들어줬으나 이후로도 두 기업은 사사건건 부딪치며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2005년엔 기능성 요구르트 상표명을 둘러싸고 매일유업과 제대로 맞붙었다. ‘불가리스’의 상표권자인 남양유업이 신제품 ‘불가리아’를 출시한 매일유업을 상대로 ‘불가리아 제품의 판매·유통·수출을 금지해 달라며 부정경쟁행위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것.
매일유업도 맞소송으로 대응했고 당시 주한 불가리아 대사까지 나서 기자회견을 통해 “매일유업의 ‘매일 불가리아’는 불가리아가 공식 인정한 제품으로 상표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남양유업에 유감을 표시해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하지만 법원은 남양유업의 손을 들어줬고 매일유업은 ‘장수나라’로 이름을 바꿨으나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빙그레와도 한바탕 다툼이 있었다. 2005년 빙그레는 남양유업의 ‘우유 속 진짜 바나나과즙 듬뿍’ 광고가 자사의 ‘바나나맛우유’를 모방했다며 광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결국 법원은 빙그레의 손을 들어줬으나 직후 또 소송전이 벌어졌다. 2006년 남양유업이 빙그레가 내놓은 ‘참 맛 좋은 우유 NT’가 자사의 ‘맛있는 우유 GT’를 모방했다며 부정경쟁행위 금지 등 청구소송을 낸 것. 요구르트 제품까지 소송에 휘말린 이 사건은 결국 남양유업의 승리로 끝나면서 ‘복수극’이란 말도 나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