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호영(왼쪽)과 양희종은 대표팀 주전자리를 놓고 다시 한번 실력을 겨루게 됐다. 사진제공=KBL |
사실 양희종의 자극적인 윤호영 도발 발언은 ‘죽자고 덤벼든 것’이 아니었다. 원정 2차전 승리 이후 기자회견실을 찾은 양희종은 기자들의 노림수를 덥석 물었다. 시쳇말로 기자들의 ‘떡밥’이기도 했다. 양희종은 심각하거나 진지하지 않았다. 농을 섞어 툭 던진 말이었다. 양희종의 발언은 ‘동부가 아니면 선수도 아니다’라는 의미로 해석돼 일파만파 퍼졌다.
이날 동부 구단 관계자들은 양희종의 발언 수위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둘이 친하면 그 정도 얘기를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둘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좀 심한 것 아니었나”라며 발끈했다. KGC 구단 관계자도 “선수끼리 얘기한 것에 구단이 끼어들어 뭐라 하면 문제 있는 것 아니냐?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면 안 된다”며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양희종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더 이상 자극적인 발언을 자제했다.
윤호영의 귀에 들어간 것은 당연지사. 윤호영은 확실하게 자극을 받았다. 윤호영의 한 측근은 “호영이가 그 얘기를 듣고 상처를 받은 것 같다. 양희종에게 인간적으로 실망을 한 것 같다. 하지만 호영이 성격상 차라리 신경을 끄면 껐지 대응을 하진 않을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둘의 라이벌은 예고된 그림이었다. 둘의 역사는 대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은 동갑내기다. 농구를 늦게 시작한 윤호영이 대학과 프로 데뷔는 1년 늦다. 여기서부터 불편한 관계가 형성된다. 양희종은 삼일고-연세대 출신이고 윤호영은 낙생고-중앙대를 나왔다. 고교 시절부터 맞대결을 펼쳤던 사이다. 한 농구 관계자는 “아마 예전엔 양희종의 기량이 월등했기 때문에 그 기억의 잔상이 남아 윤호영을 한 수 아래로 평가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윤호영은 기대와 달리 프로에서 뒤늦게 꽃을 피운 선수다.
둘의 라이벌 관계가 재밌는 이유는 서로 엇갈린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평행이론’으로 굳이 끼워맞추지 않아도 꼭 맞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둘은 신인 드래프트 지명 순위도 같다. 양희종은 2007년, 윤호영은 2008년 드래프트 3순위로 프로에 데뷔했다. 황금세대로 조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포워드로 같은 포지션인 둘은 맞대결을 펼칠 기회가 많지 않았다. KGC는 하위권에 머물렀고, 양희종은 2009년 군에 입대했다. 반면 동부는 플레이오프에 꾸준히 진출하며 우승을 넘봤다. 윤호영은 동부의 우승을 위해 군 입대도 늦춰 양희종과 국군체육부대(상무) 생활도 엇갈렸다. 윤호영은 4월 30일 입대할 예정이다. 챔프전이라는 큰 무대에서 둘의 맞대결이 뒤늦게 성사된 이유다.
성격도 정반대다. 양희종은 연예 프로그램에도 출연할 정도로 외향적이면서 톡톡 튀는 성격이다. 코트에서도 제스처가 크고 팀 전체의 분위기를 띄우는 세리머니가 일품이다. 근성과 열정이 넘치는 선수다. 반면 윤호영은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이다. 코트에서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세리머니라고는 가벼운 미소가 전부다. 말수는 적고 언제나 진중하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두 아이를 뒀고 비시즌에는 가족에 올인하는 가정적인 남자다.
둘은 올림픽 최종예선을 앞둔 남자농구대표팀에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팀 사령탑으로 내정된 KGC 이상범 감독은 이미 “둘을 모두 뽑겠다”고 공언했다. 단 한 번도 대표팀에서 함께 뛰어 본 경험이 없는 둘의 합숙 생활 자체에도 관심이 가지만, 또 다시 주전 경쟁 체제로 맞대결을 벌인다는 것이 흥미롭다.
서민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