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무영은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불펜의 핵심 투수로 성장하고 있다. |
4월 4일 일본 미야기현 크리넥스스타디움. 이날 소프트뱅크는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원정경기를 치렀다. 7회까지 소프트뱅크는 4 대 6으로 뒤졌다. 8, 9회 남은 2이닝 동안 전세를 역전시켜야만 했다. 대개 2점 차 승부면 팀의 필승조 셋업맨들이 나오게 마련. 8회 소프트뱅크가 선택한 투수는 김무영이었다.
2009년 소프트뱅크 입단한 김무영은 올 시즌 전까진 2군 선수였다. 게다가 일본 독립리그 출신 선수이기에 무명에 가까웠다. 그런 무명 선수가 박빙의 승부에 등판한 건 눈여겨볼 장면이었다. 하지만, 김무영은 이미 검증된 기대주였다. 김무영은 지난해 1군에서 9경기에 등판해 15⅓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2.35를 기록했다. 2군에서도 평균자책 0.22를 기록했다. 스프링캠프에선 팀 내 불펜투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구위를 자랑했다.
김무영은 이날 등판에서 코칭스태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3타자를 상대로 8개의 공을 던져 1피안타, 1탈삼진으로 1이닝을 완벽하게 막았다. 소프트뱅크는 김무영의 호투를 발판삼아 9회 1점을 냈으나, 더는 점수를 올리지 못해 5대 6으로 패했다.
김무영은 10일까지 3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 0의 행진을 펼치고 있다. 시즌 전만 해도 패전 혹은 점수 차가 크게 날 때 등판이 예상됐다. 그러나 김무영은 서서히 필승조 셋업맨으로 자릴 잡아가고 있다. 덕분에 소프트뱅크도 퍼시픽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일본야구계에서 김무영을 높이 평가하는 건 그가 재일교포가 아니라 유학생 출신의 저연봉 선수이기 때문이다.
김무영은 15세 때 일본 하야모토고로 진학했다. 중학교는 부산에서 나왔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혼자 짐을 싸들고 부산항에서 시모노세키행 배를 탔다. 이유는 간명했다. “야구는 계속하고 싶은데, 구타가 심한 한국에선 선수로 뛰기 싫어서”였다.
김무영은 고교 3년 동안 언어의 장벽과 외국인 학생이라는 편견과 싸우면서도 야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야모토고가 원체 약체라, 고시엔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후쿠오카경제대에 입학하며 야구를 계속했다.
후쿠오카경제대에서 시속 149㎞의 강속구를 던지며 일본 스카우트들 사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김무영은 요미우리와 한신 같은 명문팀에서 ‘콜’을 받았다. 하지만, 4학년 졸업반 때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스카우트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결국 김무영은 2008년 시코쿠·규슈 아일랜드 독립리그의 후쿠오카 레드와블러스에 입단했다. 독립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 일본 프로팀의 지명을 받겠다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독립리그 출신이 프로팀의 지명을 받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설령 지명을 받는다손 쳐도 일본인 선수 위주이거나 신고선수 입단이 전부였다.
그러나 김무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해 독립리그에서 35경기에 등판해 2승무패 17세이브 평균자책 0.41을 거뒀다. 프로팀과의 연습경기에선 시속 150㎞의 강속구를 뿌리며 야구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2008년 10월 신인지명회의에서 김무영은 드디어 소프트뱅크에 6순위로 지명되며 꿈에 그리던 프로팀 유니폼을 입었다. 김무영은 “포기하지 않으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마음먹은 게 프로입단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며 “소프트뱅크 입단 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 김무영이 일본의 한 방송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무영은 이대호의 부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대호 형은 훌륭한 타자다. 지금 부진한 건 일본야구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적응해나가면 한국에서의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오릭스와 소프트뱅크는 같은 퍼시픽리그 소속이다. 여기다 이대호와 김무영은 같은 부산 출신이다. 우정의 맞대결을 자주 펼칠 것이다. 이대호에게 집중됐던 한국 야구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김무영에게도 모일 전망이다.
한편 김무영의 맹활약에 국내 구단들의 아쉬움은 깊어지고 있다. 삼성과 롯데다. 지난해 삼성은 김무영과 접촉해 입단 의사를 타진했다. 롯데도 연고지 출신의 김무영 영입을 검토했다. 하지만 입대 문제와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무영은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아들을 뒀으나, 국적은 여전히 한국이다. 따라서 아직 병역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다 김무영은 한국 진출 시 신인지명회의를 거쳐 입단해야 하므로 삼성과 롯데가 물밑작업을 펼쳐도 다른 팀에서 지명하면 공염불이 된다.
김무영은 “귀화는 고려하지 않는다”며 “한국에서 뛸 수 있는 기회만 제공되면 언제든 한국 무대에서 던지겠다”고 밝혔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