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안국포럼 멤버였던 한 여권 인사는 이 씨와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박 전 차관이 ‘캠프에 많은 도움을 주는 형님’이라며 안국포럼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 그 후에도 이 씨가 여러 번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박 전 차관 ‘스폰서’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기도 했었다. 이 씨가 최시중 전 위원장과도 막역하게 지내 상당한 실력가로 알았다. 박 전 차관이 조달한 캠프 운영비 중 일부를 이 씨가 댄다는 게 정설이었다”고 귀띔했다.
당시 인수위원회에 몸담았던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박 전 차관을 통해 이 씨를 만났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박 전 차관은 당시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 총괄팀장이었다. 어느 날 점심 때 ‘친한 선배’라며 이 씨를 데리고 왔다. 밥값을 이 씨가 계산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 출신인 이 씨는 최 전 위원장의 구룡포중·대륜고 후배다. 동시에 박 전 차관이 근무했던 대우건설 출신이기도 하다. 이 씨는 1978년 대우건설에 입사, 리비아건설현장에 파견됐다가 귀국한 뒤 자재 업무를 담당했다. 그 후 대우전자로 옮긴 이 씨는 2002년 회사를 나와 실내장식 업체 이에이디자인을 인수했고, 2006년 5월엔 디와이랜드건설을 설립했다. 이 씨는 대우전자 근무시절 인연을 맺었던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의 도움을 받아 사업체를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파이시티 건 역시 선 회장 일가 비리를 수사하던 중수부가 이에이디자인이 하이마트 인테리어 공사대금 중 일부를 상납한 혐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씨가 최 전 위원장에게 금품을 건넨 정황이 나온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무명’에 가깝던 이 씨가 건설업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무렵이다.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 측과 가까운 것으로 소문이 나면서부터다. 이 씨는 지인들에게 “최시중 전 위원장, 박영준 전 차관 등과 친하다. 민원이 생기면 언제든 찾아와라”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 대선캠프가 본격적으로 꾸려진 후에는 “나도 안국포럼에서 일한다”며 당시 캠프에서 일하던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광화문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서 이 씨를 만난 적이 있는 한 언론인은 “이 씨가 ‘나도 포항 출신이다. 좋은 정보가 있으면 알려 주겠다. 아버님(최시중 지칭)이나 박영준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잘 알지 않느냐’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민정실에서는 이 씨와 관련해 잡음이 불거지자 확인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다음은 당시 민정실에 근무했던 한 사정기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처음엔 이 씨가 박영준, 최시중 이름을 팔고 다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친분이 상당하더라. 박 전 차관과는 2000년 대 초반 대우건설 임원 소개로 만난 것으로 들었다. 또 최 전 위원장과는 ‘구봉회’라는 모임을 같이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최 전 위원장이 후배 8명을 모아 만든 구봉회에서 이 씨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최 전 위원장 양아들로 알려진 정용욱 씨도 구봉회에 속해 있다.”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해 이 관계자는 “당시 물증이 없어서 확인 작업을 끝냈다. 압력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파이시티 사건이 터진 후 청와대 안팎에서 아쉬운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기에 걸러냈더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번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과 정치권 안팎에서 대선자금이 도마에 오르자 당혹해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이나 박 전 차관 모두 이명박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이자 핵심 실세다. 이 대통령도 착잡해 한다”면서 “우스갯소리지만 브로커 이 씨가 배달사고를 많이 냈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 중진 의원은 “이 씨와 박 전 차관의 친분을 고려하면 분명히 돈이 오갔을 것이다. 특히 박 전 차관이 실세로 떠오르던 2007년과 2008년 사이 돈 흐름을 잘 봐야 한다. 최시중 사람으로 분류되던 이 씨가 이때부터 박 전 차관을 집중 관리했다고 들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 당시 박 전 차관이 캠프 실무를 도맡았다는 점에서 이 씨가 돈을 건넨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일부는 대선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박 전 차관의 경우 전국 규모의 이 대통령 외곽 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를 총괄했기에 상당한 ‘활동비’가 들어갔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향후 검찰 수사가 청와대가 원치 않는 대선자금으로까지 불똥이 튈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 중수부는 “대선자금과는 별개”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박 전 차관과 관련해 불거진 의혹은 모두 짚고 넘어간다는 방침을 정했다. 중수부 관계자는 “박 전 차관이 이 씨를 통해 이정배 대표로부터 받은 돈의 사용처를 철저하게 규명할 것”이라면서 “수사에 그 어떤 정치적인 고려는 있을 수 없다. 대선자금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일단 중수부는 이 씨가 “박 전 차관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함에 따라 박 전 차관과 지인들 계좌에 대한 광범위한 추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앞서의 중수부 관계자는 “(박 전 차관 혐의 입증은) 시간문제”라며 수사가 상당히 진척됐음을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여론조사에 썼다”더니 도로 뒤집어
지난 4월 23일 최시중 전 위원장은 파이시티 인허가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2004년부터 지금까지 고향 후배 이동율 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시인하면서 “받은 돈은 2007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 비용 등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으로 썼다는 의미로 해석돼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러한 최 전 위원장의 ‘돌발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진 않았지만 하루 종일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이를 놓고 검찰 안팎에선 최 전 위원장이 이 대통령을 향해 일종의 ‘시위’를 했다는 게 우세한 관측이다.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을 경우 ‘혼자 죽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최 전 위원장이 언급했던 여론조사에 들어간 돈은 2000만~300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액수가 가장 작은 사례를 거론한 것은 더 큰 게 있으니 지켜 달라고 이 대통령을 협박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사실 청와대는 파이시티 사건에 대해 검찰 측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최 전 위원장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신속하게 이뤄지는 것을 보면 알지 않느냐. 증거가 워낙 확실해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정부측 경로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최 전 위원장에게 전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청와대 뜻을 접한 최 전 위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섭섭한 감정을 내비쳤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최 전 위원장이 하루 만에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4월 2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얼떨결에 (여론조사에 썼다고) 말했다. 정식 캠프 여론조사 비용으로 쓰지 않았다. 개인적 활동을 하며 모두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 돈을 어디에 썼느냐는 질문엔 “검찰에서 소명할 것”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수사팀은 최 전 위원장이 말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도 확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최 전 위원장의 이러한 입장 번복을 놓고 청와대와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전 위원장 발언 이후 곤혹스런 처지에 빠진 청와대가 뭔가 다른 카드를 제시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은 “청와대와 최시중 전 위원장이 입을 맞추고, 검찰이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맞춘 짜 맞추기 수사로 진실을 틀어막고 있다”면서 “대선자금 수사를 차단하고 개인비리로 몰고 가려는 검찰의 뻔한 각본대로 간다면 청와대는 민심의 거센 불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
대선자금 ‘투트랙’ 모금 비화수상한 냄새…불길 옮겨붙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비용으로 21억, 그리고 대선에선 327억 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은 캠프 핵심 인사들의 사재출연, 후원금, 금융권 대출 등으로 충당했다. 이 대통령의 ‘평생지기’ 로 알려진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지난 2007년 12월 말 이 대통령의 특별당비 30억 원을 대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캠프 참여 인사들은 “이 대통령 대선자금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최 전 위원장이 “파이시티로부터 받은 돈 일부를 대선 여론조사 비용 등으로 사용했다”고 밝힌 후 이 대통령 대선자금의 합법성이 도마에 올랐다.
MB 대선캠프 자금은 크게 ‘투 트랙’으로 조달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득·최시중 등을 주축으로 한 원로그룹과 박영준 전 차관이 이끌었던 선진국민연대를 통해서다. 공교롭게도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은 이번에 불거진 파이시티 비리 의혹에 연루돼 있다.
대선자금 모금에 핵심 역할을 했던 둘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것에 대해 캠프에서 일했던 한 여권 인사는 “돈은 어른들(최시중, 이상득)이 알아서 가져 왔다. 또 박 전 차관도 일정 역할을 했다. 출처가 어디인지는 캠프 극소수 인사만이 알 것”이라고 귀띔하면서 “대선자금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당시 캠프 주변에서는 “코오롱 출신인 이상득 의원이 박 전 차관 등을 통해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끌어왔고, 최 전 위원장은 지역 유지들로부터 ‘스폰’을 받아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특히 당내 경선 과정에서 상상 이상의 돈이 투입됐을 것이란 얘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박근혜 당시 후보자와 초 접전을 벌였던 이 대통령 측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지방 및 직능 조직표를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 전 차관이 적지 않은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의 경우 캠프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거의 내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여의도의 한 빌딩에 직접 콜센터를 차린 뒤 여론조사 등 홍보를 하는데 대부분의 지출을 했다고 한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