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총선 투표 종료 후 출구조사를 지켜보고 있는 이정희ㆍ유시민ㆍ심상정 공동대표.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진보당은 이번 19대 총선 내내 민주노동당계의 ‘경기동부연합’ 세력이 당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그 실체에 관해서는 이견이 엇갈리지만 총선 결과를 놓고 볼 때 당권파인 민주노동당 출신 후보들은 대거 국회로 진출한 반면 유시민 공동대표를 비롯한 국민참여당 출신 후보들은 대부분 낙천하거나 낙선했다.
지역구 후보 선정 과정에서도 한 차례 갈등을 겪었던 민주노동당계와 국민참여당계는 비례대표 순번 선정 때도 치열한 세 대결을 벌였고 결국 그 파열음은 부정선거 의혹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선공은 국민참여계가 날렸다. 지난 4월 17일 국민참여당 출신의 이청호 부산 금정구의원은 진보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를 규탄하며’라는 글을 통해 4·11 총선 과정에서의 부정선거 의혹을 낱낱이 알리고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 구의원이 제기한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의 화살은 대부분 민주노동당계를 향하고 있다.
진보당 비례대표 경선과 관련해 이 구의원은 크게 세 가지 의혹을 제기했는데 순번 결정을 위한 현장투표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점을 첫 번째로 지적했다. 온라인투표에선 국민참여당계 오옥만 후보(비례 9번)가 앞섰지만 현장투표에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출신인 윤금순 후보(비례 1번)에게 역전을 당했는데, 국민참여계는 노동자들이 많은 민주노동당계가 현장투표소를 다수 설치하는 과정에서 의혹이 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구의원은 “중앙당은 30인 이상의 사업장이나 지역의 요청이 있을시 현장투표소를 추가로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지역위원장인 나조차 30인 이상이 신청하면 이동투표함(현장투표소)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총선이 끝난 뒤에 알았다”라고 밝혔다.
현장투표 과정에서 소스코드(투표시스템 개요를 볼 수 있는 설계도)를 건드린 흔적이 남은 것도 문제가 됐다. 이청호 구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소스코드를 열었다는 것은 개표 과정에서 비례대표 후보들의 등수를 사전에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 조작은 없었다 해도 중앙당 고위당직자가 선거 과정 중 소스코드를 열람했다는 것은 팩트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앞서의 당 게시판 글에서는 “이번 비례대표 투표에서 전산관리를 담당한 업체는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10년 이상 운영을 맡아온 곳이다. 백번 양보해 이 업체를 믿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선거 도중 소스코드는 왜 열어보느냐. 자기들 쪽(이석기)이 1등이 아니면 무슨 대책이라도 세우려고 한 것 아니냐”며 민주노동당계의 부정선거 의혹을 강하게 주장했다.
국민참여당계인 노항래 후보가 스스로 비례대표 후순위로 배치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두고 특정 계파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당초 진보당은 경선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8번은 국민참여당 정책위원장을 지낸 노항래 후보가, 10번은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을 지낸 이영희 후보가 배정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투표인과 투표용지 숫자가 달라 관리상의 문제가 제기된 현장투표소 7곳의 결과를 반영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빚어졌다.
결국 노 후보는 스스로 8번 자리를 양보했는데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계에 밀렸다고 주장하는 참여당계의 반발을 받았다. 현재 진상조사를 하는 과정임을 고려, 말을 아끼고 있던 노 후보는 지난 4월 24일 당 게시판을 통해 “저와 오 후보가 서로 원칙만을 주장했다면, 우리 당은 비례후보 등록을 미루거나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국민참여당계는 두 후보가 9번(오옥만), 10번(노항래)을 받으면서 비례대표 의원을 한 명도 만들지 못했다.
이 같은 당내 부정선거 의혹이 당 외부로까지 알려지자 유시민 공동대표는 사죄의 뜻을 밝히며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약속했다. 하지만 유 공동대표는 이후에 진행되고 있는 진상조사와 관련한 보고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진보당 진상조사위원회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출신의 조준호 공동대표가 위원장을 맡고 비례대표 경선을 다퉜던 윤금순 이영희 당선인과 노항래 오옥만 후보 측이 선정한 사람들로 구성됐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국민참여당 출신의 한 진보당원은 “1번과 2번이 아니면 후순위로 밀려 당선이 어려운 상황에서 당권을 쥔 이들은 어떡하든 당내 경선에서 이기고 싶었을 것”이라며 “비례대표 경선에서 남자 1위를 차지한 이석기 당선인은 당권을 가진 주류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두 회사(씨앤피전략그룹, 사회동향연구소)를 통해 총선 관련 여론조사 및 홍보물 제작 등의 업무를 맡아 왔다”라고 전했다. 이 당선인 측 관계자는 “현재 나오고 있는 이야기에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다. 진상조사위 결과가 나오면 그 때 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번 부정선거 의혹을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총선 이후 당권과 대권에서 멀어진 국민참여당계의 과도한 정치 공세라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는 “진상조사위 구성이 무슨 민주노동당계와 국민참여당계의 협상테이블처럼 꾸려졌다. 참여당계가 총선에서 밀리자 진상조사위를 압박, 비례대표 승계를 요구하며 국회 입성을 시도하려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진보당은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진상조사위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민주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원인 “이번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은 진보당 내에서도 다들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이 도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거대 정당처럼 계파 갈등만을 드러낸다면 어찌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오는 12월 대선에서의 야권연대 역시 불투명해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