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30일 당시 월남이라 불리던 남베트남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이른바 '월남 패망의 날'로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에서는 남진하는 북베트남 군을 피하기 위한 필사의 탈출 작전이 벌어졌다.
그 긴박한 현장에 우리 한국인들도 있었다. 바로 당시 주남 베트남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안희완 영사와 이달희 무관 보좌관을 포함한 외교관 15명이다. 그리고 베트남에 파견된 안병찬 당시 한국일보 기자다.
안 기자는 사이공 함락 한 달 전 모두가 사이공을 빠져나갈 때 함락 직전의 도시로 들어갔다. 안 기자에게 주어진 미션은 '사이공 최후의 표정을 컬러로 찍고 돌아오라'였다.
북베트남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남베트남의 4분의 3이 함락됐다. 수도 사이공 함락도 시간문제였다. 사이공 함락 D-2일 폭격으로 공항마저 폐쇄되고 사이공은 봉쇄되고 만다.
외교관들과 안병찬 기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탈출구는 미국대사관이었다. 미국대사관 측은 한국인들의 철수를 돕겠다고 약속한다. 이들은 한국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암호를 전달한다. 바로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40도의 무더위에 외교관들과 안 기자는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드디어 라디오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울려 퍼지고 안 기자와 외교관들은 서둘러 미국대사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미국대사관은 헬기를 타고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심지어 미군들은 총까지 들고 한국인들을 위협하는데 한국인들은 과연 최후의 탈출 헬기에 오를 수 있었을지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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