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음대 교수가 부정 입학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한예종 음악원 이 아무개 교수(44)는 입시 준비생들을 상대로 불법 레슨을 하고, 제자들을 부정 입학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 11년 동안 모두 19명의 입시 준비생들을 불법으로 레슨하고 4000여만 원을 레슨비로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교수는 레슨 제자인 A 군을 부정 입학시켜주고 그 대가로 A 군의 학부모로부터 2억 6000만 원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교수는 지난 2004년에도 입학생을 상대로 불법 레슨을 한 사실이 밝혀져 학교로부터 직위해제당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오히려 정직기간 동안 개인 연습실을 만들어 본격적인 불법 레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대학 음대교수의 수상한 레슨 사건 전말을 들여다봤다.
2001년 9월 한예종 음악원 교수로 임용된 이 교수는 이듬해부터 불법레슨을 자행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교수의 불법 레슨이 이뤄진 곳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허름한 음악 교습실이었다. 낡은 상가 건물 2층에 위치한 이 교수의 연습실은 이 교수 부인 명의로 운영돼 왔다. 이 교수의 부인은 국내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지만 연습실에서 학생들이 연습하고 있던 악기는 콘트라베이스(더블베이스)였다. 콘트라베이스는 이 교수의 전공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교수가 지난 2004년에도 입학생을 상대로 불법 레슨을 한 사실이 밝혀져 이미 한 차례 학교 진상조사에서 ‘직위해제’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이 일로 정직 3개월에 입시평가 교수 1년 제외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교수는 오히려 2007년경 부인 명의의 연습실을 만들어 불법 레슨을 계속 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조사 결과 이 교수는 교수실과 방배동 연습실에서 시간당(1회) 15만 원의 레슨비를 받고 학생들을 지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 달에 한두 번 가르치다 입시 실기시험 때가 다가오면 집중적으로 레슨을 실시했다. 한 학생의 경우 9월 한 달에만 레슨비로 이 교수에게 900만 원을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한예종 음악원에 합격한 A 군도 2010년 3월부터 입학 실기시험이 있는 10월까지 이 교수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A 군은 이 교수로부터 악기도 빌려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교수는 A 군을 지도하면서 “좋은 악기니까 이걸로 입시 때까지 사용하라”고 조언했다는 후문이다. A 군은 이 교수로부터 총 40회 레슨을 받고 600만 원을 레슨비로 지불했다.
이렇게 지난 11년 동안 이 교수로부터 불법 레슨을 받은 학생은 모두 19명에 달했다. 문제는 레슨이 단순 불법 레슨에 그치지 않고 부정입학 의혹으로 번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 교수로부터 레슨을 받은 19명은 모두 한예종 음악원에 최종 합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간 동안 한예종 음악원에 합격한 학생이 44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애초 이 교수의 불법 레슨 및 부정입학 의혹은 지난 1월 일부 언론을 통해 처음 제기됐었다. 당시 학교 측은 교학처장, 음악원장, 교학 제1부처장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를 열고 이 교수의 비리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1월 18일 단 하루만 진상조사를 실시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교수는 대면 조사에서 불법 레슨과 악기 판매 사실만을 인정하고 부정입학이나 다른 교수들의 공모 등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학교 측에서는 이 교수를 ‘직무수행능력부족’을 이유로 ‘직위해제’ 하는 선에서 조사를 마무리했다. 업계 관계자는 “직위해제는 정직 3개월의 조치가 취해진다. 말 그대로 단순히 직무를 정지하는 것뿐이다. 징계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학교 관계자는 “현재 이 교수의 직위해제를 한 차례 더 연기했다. 경찰조사 결과를 보고 추가적으로 파면·해임 등의 징계가 이뤄질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이 교수는 부정입학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조사에서 여러 정황이 발견됐다. 지난 1월 경찰이 부정입학 첩보를 입수한 뒤 한예종 입학관리과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실기시험 평가표에서 이 교수의 부정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2002년~2012년 실기시험에서 매번 자신의 제자들에게 최고점을 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A 군 역시 2010년 10월 6일 한예종 음악원 입학 실기시험에서 이 교수로부터 최고 점수를 받고 합격했다.
부정입학의 정황은 이 교수와 A 군 부모의 통장거래내역에서도 드러났다. 이 교수는 A 군의 부모에게 “레슨 할 때 빌려준 악기를 합격 기념으로 구매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사실상 합격 대가로 금전을 요구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또 이 교수는 입학 사정에 도움을 준 다른 교수 및 본인 사례비로 8000만 원 등 합계 5억 원을 요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악기 값만 5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A 군의 부모는 너무 큰 금액에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A 군의 부모는 이 교수와 두 차례에 걸쳐 협의한 결과 2억 6000만 원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고, 이후 A 군의 부모는 2010년 11월 현금으로 1000만 원을 이 교수에게 전달하고, 다음 날 이 교수 장모의 계좌로 2억 5000만 원을 송금했다. 이밖에도 이 교수는 13명을 상대로 총 4000만 원 상당의 교습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통장거래내역만으로 나타난 결과이고, 추가 레슨비가 더 드러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앞서 학교의 진상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경찰조사에서도 불법 레슨과 악기 판매 부분만을 인정하고 부정 입학에 대해서는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황상 해당 학부모와 사전에 입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이 교수는 경찰조사가 진행되자 A 군의 부모를 만나 “아들이 학교에서 퇴학되지 않으려면 내가 살아야 한다. 경찰조사에서 함구하라”며 허위진술을 강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정입학한 학생이 사실을 밝힐 수 없는 부분을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사전에 말을 맞춘 이 교수와 A 군 부모는 경찰조사에서 똑같이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통장에 금액이 오간 내역에 대해 ‘악기 값’이라는 같은 대답이 나왔다. 최고 점수를 줘 입학시켰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최고 점수를 주더라도 최고 점수와 최저 점수는 제외하기 때문에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부정입학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직위해제 상태로 직무가 정지된 이 교수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은 말할 입장이 아니다. 할 말이 없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