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준 전 차관이 지난 2일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서초동 대검찰청사에 출석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또한 박 전 차관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전 청와대 고위인사 L 씨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L 씨는 이동조 회장을 통해 세탁된 자금을 건네받아 집행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박 전 차관과 이 회장, L 씨 모두 ‘영포라인’으로 분류된다. 검찰 수사가 현 정권 성골로 꼽히는 ‘영포라인’의 자금줄 전반으로 향할 것임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영포라인 인사들이 각종 이권사업 및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밝혀내는 게 수사의 핵심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일단 8부능선을 넘었다.”
지난 5월 3일 박영준 전 차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중수부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수부 고위 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사 초반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박영준 관련 수사에서 검찰이 번번이 물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중수부마저 실패하면 그야말로 망신이었을 것”이라면서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와 정부 부처 요직을 두루 거쳤던 박 전 차관은 이국철 SLS 회장 접대 로비, CNK 주가조작 사건, 민간인 불법 사찰 개입 등 각종 의혹에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법망에 걸려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밖에 중수부는 그동안 박 전 차관과 관련해 수집해놨던 파일들을 재검토하며 수사선상에 올릴지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엔 또 다른 자원외교 업체에 대한 특혜, 공기업 발주 사업 입찰 과정 외압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박 전 차관은 브로커 이동율 씨를 통해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로부터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를 받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2005~2006년에 박 전 차관에게 현금으로 2000만~3000만 원씩을 3~4차례 건넸고, 2006~2007년엔 매달 생활비 명목으로 1000만 원 정도를 줬다”고 진술한 바 있다. 중수부는 이 전 대표 진술과 계좌추적 결과가 일치하는 1억 원에 대해서만 우선 범죄사실에 포함시켰다. 중수부는 박 전 차관이 파이시티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서울시 공무원들을 이 전 대표에게 소개해주는 등 사업 인허가에 영향력을 행사한 물증을 확보한 상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최측근으로 꼽히는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 역시 박 전 차관으로부터 이 전 대표와 브로커 이 씨 등을 소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수부는 박 전 차관이 파이시티 외에 다른 기업들로부터도 금품을 받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광범위한 계좌 추적을 진행 중이다. 특히 박 전 차관이 받은 돈을 세탁 혹은 관리하는데 깊숙이 관여한 이동조 제이앤테크 회장 소유 계좌에 거액의 뭉칫돈이 수시로 오간 까닭을 파헤치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4월 25일 오전 9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출국했다. 공교롭게도 박 전 차관의 자택, 대구 선거사무실, 임시거주지 등 세 곳이 압수수색을 받던 날이었다. 이 때문에 박 전 차관이 본격적인 수사를 앞두고 이 회장을 도피시켰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중수부는 이 회장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소환을 통보하는 한편, 횡령 혐의를 적용해 강제 귀국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박 전 차관 수사가 여기서 멈추느냐, 더 큰 대어를 잡느냐 여부는 이 회장 신병 확보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전 차관의 비자금 출처, 규모, 사용처 등을 파악하기 위한 전제”라고 귀띔했다.
중수부는 박 전 차관이 불법적인 돈을 받으면 이 회장에게로 전달, 세탁한 뒤 다시 돌려받는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수부는 이 회장으로부터 자금 관리를 위탁받은 경북 포항의 한 은행 직원을 소환해 자세한 경위를 파악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 직원이 “이 회장 요청으로 계좌를 대신 관리해왔다”고 인정함에 따라 수사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고 한다.
중수부는 박 전 차관이 이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도 규명할 계획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박 전 차관이 개인적 용도로 쓰거나 혹은 인맥 관리 등을 위해 쓰지 않았겠느냐”면서 “대선 캠프 당시 사무실 운영비 혹은 MB 외곽 캠프였던 선진국민연대 인사들의 활동비로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 경우 대선자금으로 커지기 때문에 (수사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과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청와대 고위직을 지냈던 L 씨를 새로운 ‘키맨’으로 꼽고 있다. 대선 캠프 출신의 한 친이계 정치인은 “L 씨는 박 전 차관의 최측근이다. 그가 자금을 포함한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래서인지 현 정부 들어서 승승장구했다. 민간인 불법사찰로 물의를 빚은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과 함께 박 전 차관이 가장 믿었던 인사들 중 한 명”이라면서 “L 씨 역시 영포라인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공기업 고위직을 지냈던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일요신문>에 털어놨다.
“2008년 8월경 박 전 차관이 머물고 있다는 서울 중심가 호텔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마침 인사를 앞둔 시기였다. 평소 친분이 있던 L 씨를 통해 연락이 왔다. 박 전 차관이 특정 인사의 승진을 요청해 왔다. 최고 실세인 박 전 차관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시기적으로 보면 박 전 차관이 이 공기업 인사를 접촉한 때는 ‘권력사유화’의 장본인으로 지목돼 청와대에서 물러난 이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당시 박 전 차관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나타내준다. 또한 박 전 차관과 L 씨가 상당히 가까운 사이임을 알게 해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중수부 역시 박 전 차관과 이 회장 사이의 돈 거래 수사가 어느 정도 진척되면 L 씨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체크할 것으로 전해졌다.
‘박영준-이동조-L 씨’로 이어지는 자금 흐름을 중수부가 수사한다면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란 게 정가의 공통된 관측이다. 그 결과에 따라 대선 캠프를 거쳐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최고 실세로 꼽혔던 ‘영포라인’의 비자금 실체가 공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선자금을 비롯해 그동안 박 전 차관을 주축으로 하는 영포라인 몇몇 인사들이 개입했다는 설이 무성했던 각종 이권사업 관련 의혹도 어느 정도 실타래가 풀릴 것으로 보인다.
즉, 박 전 차관 등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업체에 사업을 밀어주거나 혹은 인사 청탁을 받아주는 대가로 돈을 챙겼다는 소문의 진상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중수부는 이동조 회장이 운영하는 제이앤테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포스코건설이 파이시티의 단독 시공사로 참여한 과정에 대해 비리가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제이앤테크는 2008년부터 포스코건설 하청업체로 선정된 뒤 매출이 급성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다음 수순은 형님?
더군다나 이 의원은 박 전 차관의 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이동조 회장과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왔다고 한다. 포항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인으로 알려진 이 회장은 이 의원 추천으로 한때 새누리당 중앙위원에 선임된 적도 있다. 포항 지역에서는 제이앤테크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포스코건설 하청업체로 선정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중수부 관계자는 “(이 의원에 대해) 아직 수사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살아 움직이는’ 수사 속성상 단언하기는 어렵다.
파이시티 수사와는 별개로 중수부가 지휘하는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합수단)도 지난 3월 초부터 이 의원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보좌관 박배수 씨(구속)의 금품수수 혐의 수사 과정에서 이 의원 여비서 임 아무개 씨 계좌에 괴자금 7억 원이 입금된 사실을 파악하고 그 출처를 추적하고 있다. 또한 이 의원이 프라임저축은행으로부터 퇴출 저지 로비 명목으로 4억 원을 수수했다는 첩보에 대해서도 확인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이밖에 울산지검에서는 박배수 씨가 은행 대출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데, 이 의원 연루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이 의원을 동시 다발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이 의원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일축하고 있다. 합수단 관계자는 “중수부의 파이시티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이 의원 조사와 관련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너무 가혹하다”며 억울해하는 입장이다. 이 의원은 지난 5월 3일 TV에 출연해 “차라리 나를 뒷조사해 달라. 이것저것 개입한다고 말들이 많으니까 내가 (이권) 했는지 조사해보면 되지 않느냐”면서 “무슨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언론에 내 이름이 나와 괴롭다”고 호소했다. 불법 정치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7억 원에 대해서는 “2년 반 동안 매달 사무실 전체 운용비로 쓴 것이다. 매달 개인적으로 또 직원들이 쓰는 돈의 합계다. 아무 문제가 없는 돈”이라고 해명했다. 마지막으로 이 의원은 박 전 차관과 최시중 전 위원장 구속에 대해 “나와 인연이 있는 분들인데 불행한 일이 생겨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국회에 안가고 사무실에서 근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