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4일 삼성과 롯데의 경기에서 삼성 손주인이 1루에서 아웃되고 있다. 전문가들의 삼성 독주 예상을 깨고 삼성은 하위권에 머물러 있고 롯데는 거포 이대호가 빠졌지만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시즌 전 야구전문가 대부분은 삼성의 독주를 예상했다. 7선발이 가능한 풍부한 선발진과 리그 제일의 불펜진, 이승엽이 가세한 폭발적인 타선 등 삼성은 어느 것 하나 약점이 없었다. 일부 전문가는 “삼성의 정규 시즌 1위는 떼어놓은 당상”이라며 “2000년 현대가 거둔 91승을 뛰어넘는 리그 최다승을 기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삼성 류중일 감독도 내심 “80승 이상은 거두지 않겠느냐”며 1위 싸움보다는 기록 싸움에 치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만큼 삼성은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삼성은 압도적 1위는 고사하고, 시즌 초 연패를 거듭하며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강점으로 꼽혔던 선발진이 무너지고, 불펜진의 위력도 지난해보다 현저히 떨어진 탓이다. 실제로 선발진의 평균자책은 5.18로 한화 다음으로 좋지 않다. ‘지키는 야구’의 심장인 불펜진도 1승 3패 7홀드 4세이브를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다. 불펜진의 승률이 3할 이하로 떨어진 건 구단 창단 이래 처음이다.
믿었던 타선도 인상적이지 않다. 삼성 팀 타율은 2할3푼5리로 넥센과 공동 6위다. 1번 타자 타율은 1할3푼5리로 3할2푼1리의 SK에 비해 2할 가까이 떨어진다. 득점권 타율은 2할6푼8리로 공동 5위다. 출루와 타점 생산 능력이 동시에 떨어진다는 뜻이다.
야구계는 삼성의 부진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본다. ‘5월에 들어서면 제 실력을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일부에선 “삼성 투수들의 부진이 야구 외적인 문제에서 오는 것이라면 예상 외로 슬럼프가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KIA의 하락세도 예상 밖의 결과다. 시즌 전만 해도 KIA는 삼성을 견제할 유일한 팀으로 꼽혔다. 투·타 안정이 돋보이고, 수비력도 강한 KIA가 선동열 감독을 만나 팀 전력이 한층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전망됐다. 선 감독도 “투수들의 부상이 다소 많아 걱정이지만, 타격이 좋아 상위권 싸움을 펼칠만 하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뚜껑을 여니 KIA에게 기다린 건 장밋빛 시즌이 아니라 불운의 연속이었다.
KIA는 5승 8패로 리그 7위를 달리고 있다. 마운드와 타선이 철저하게 붕괴된 까닭이다. KIA 팀 타율 2할1푼9리와 팀 평균자책 5.71은 공히 리그 최하위다.
선 감독이 강점으로 꼽았던 타선은 이범호와 김상현이 빠지며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다. 득점권 타율이 고작 2할2푼밖에 되지 않는다. 2, 3루에 주자가 있어도 적시타가 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나 6번부터 9번까지의 하위타선 타율이 1할5푼1리에 불과하다. 다른 팀 투수코치들이 KIA 하위타선을 가리켜 ‘휴게소’로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투수진으로 눈을 돌리면 더 비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윤석민, 서재응, 앤서니 르루 등이 버틴 선발진은 3승6패 평균자책 4.89를 기록 중이다. 한국 최고의 우완 에이스 윤석민이 버티고 있음에도 선발진의 성적은 리그 6위에 불과하다. 불펜진은 더하다. 철벽과는 거리가 멀다. 모래성에 가깝다. 평균자책이 7.00으로 최악이다. 삼성 사령탑일 때 ‘지키는 야구’를 구축했던 선 감독이 “6회 이후 이렇게 불안하기는 처음”이라고 고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KIA는 삼성과 달리 부진이 일시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부상선수가 원체 많은 데다 부상 복귀 시점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박찬호.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그러나 한화는 리그 최다인 팀 실책 11개와 팀 병살타 17개에서 보듯 세밀한 야구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투수들이 잘 던지고도 수비진의 구멍난 글러브 때문에 패전투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화 한대화 감독은 “그룹 윗분들은 내심 우승을 원하시는데 팀 성적은 거꾸로 가고 있다”며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롯데는 삼성과는 정반대다. ‘주포’ 이대호와 ‘에이스’ 장원준이 전력에서 이탈하며 시즌 전 롯데는 5, 6위가 예상됐다. 하지만 현실은 180도 다르다. 롯데는 삼성, KIA 등 강팀을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대호가 빠졌지만 팀 타율은 3할에 가깝고, 득점권 타율은 3할을 넘는다. 특히나 3, 4, 5번 중심타선 타율이 3할4푼6리로 2할1리의 SK에 비해 무려 1할3푼5리나 높다. 다른 팀 투수들은 “이대호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롯데의 불 같은 타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타선보다 고무적인 건 투수진이다. 해마다 10승 이상을 기록했던 장원준이 빠지며 롯데는 에이스 부재가 예상됐다. 하지만, 롯데 선발진의 평균자책은 3.81로 리그 4위다. 여기다 불펜진은 평균자책 2.55로 SK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특급 셋업맨 최대성과 마무리 김사율이 제 몫을 다하며 뒷문을 굳건히 지킨 까닭이다.
롯데는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팀 전력에서 제외된 정대현과 이승호가 복귀하면 마운드가 더 단단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 이용찬.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
지난해 와해됐던 팀 분위기는 찰흙처럼 단단해졌고, 김 감독은 초보 사령탑치고는 빠른 판단력과 온화한 리더십으로 팀을 장악한 상태다. 이토 수석은 김 감독에게 철저히 복종하며 포수진 재건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나 ‘더스틴 니퍼트-김선우’ 원투펀치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했던 선발진에 이용찬, 임태훈이 가세하며 마운드가 한층 강화됐다. 지난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선수생명까지 위협받았던 임태훈은 3승 평균자책 0.53으로 특급 투수대열에 올랐다.
뒷문이 탄탄해진 것도 두산 상승세의 중요한 요인이다. 지난해 두산은 이용찬, 임태훈이 선발진에 합류하며 마무리가 약해졌다. 하지만, 올 시즌은 외국인 투수 스콧 프록터가 붙박이 마무리로 등판하며 벌써 4세이브를 거두고 있다.
부상자가 눈에 띄지 않고, 백업층이 두터운 두산은 시즌 내내 안정된 전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이변의 주인공은 넥센과 LG다. 시즌 전 두 팀은 최하위 싸움을 펼칠 라이벌로 예상됐다. 김병현, 이택근을 영입하며 팀 전력강화에 힘썼지만, 넥센은 허약한 투수진과 그보다 나약한 타점 생산능력이 결정적 약점으로 꼽혔다. LG는 조인성, 송신영, 이택근 등 주축 선수들이 FA(자유계약선수)자격을 취득하고서 팀을 떠나고, 경기조작 사건에 선발투수 2명이 연루되면서 팀 전력과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 팀은 롯데, 두산, SK에 이어 공동 3위에 올라 있다. 꼴찌 싸움이 아니라 4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넥센이 고공행진을 하는 주된 이유는 약점이 되레 강점이 됐기 때문이다. 에이스 브랜든 나이트가 무릎부상에서 벗어나고, 강윤구가 건강하게 복귀하며 넥센 선발진의 평균자책은 4.07로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불펜진 역시 평균자책 3.54로 리그 4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나 지난해 주자만 나가면 범타로 끝나 ‘잔루의 여왕’으로 불렸던 넥센은 득점권 타율이 리그 최고인 3할6푼으로 급상승하며 ‘찬스의 여왕’으로 변모했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김병현이 돌아오고, 유한준과 송지만이 복귀하면 팀 전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며 “우리는 더 이상 약팀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LG는 삼성과의 개막 2연전을 승리로 이끌며 파란을 일으켰다. 선발요원 두 명이 퇴단했음에도 선발진의 평균자책이 3.39로 뛰어나고, 유원상과 우규민이 버틴 불펜진도 지난해보다 더 강력하다. 4번 타자로 우타자 정성훈을 기용한 것도 적중했다. 무엇보다 LG 김기태 감독의 ‘보스 리더십’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김 감독은 베테랑을 존중하고, 신인선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하는 신구 조화 카드로 팀 화합과 전력강화를 동시에 이뤘다.
하지만, 뒷문이 약하다는 건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이자 언제 문제로 작용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지난해까지 선발로 뛰던 레다메스 리즈를 마무리로 기용했지만, 리즈는 경기마다 불안한 제구로 블론세이브를 연발하고 있다. 마무리임에도 평균자책이 13.50으로 대단히 나쁘고 이닝당 볼넷 허용수도 2개에 이른다. 한 이닝에 두 타자를 볼넷으로 보내는 마무리는 지구상에 없다.
LG 김기태 감독은 “시즌 초반 상승세가 마지막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투수진을 처음부터 다시 구상하겠다”고 말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