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거물로 통했던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을 겨냥했던 검찰의 사정칼날이 서서히 서울시와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서울시가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를 복합개발할 수 있도록 인허가를 내 줄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MB와 그 측근들이 대거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MB는 서울시장 재임시절(2002~2006년) 파이시티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MB는 2004년 11월26일 시장실에서 서울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로부터 양재동 화물터미널 개발사업 문제와 관련해 첫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MB는 특히 2005년 하반기 서울시 정책회의에서 “기업이 돈 벌면 배 아프냐. 양재동 화물터미널 사업은 도시물류기본계획에 따라 처리하라”고 발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MB의 이 같은 발언은 파이시티 부지에 판매시설이 들어설 수 있도록 허용하라는 복심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초 화물터미널 용도인 파이시티 부지에는 판매시설이 들어설 수 없도록 돼 있었지만 MB 발언 이후 파이시티 인허가 업무는 급물살을 탔다. 실제로 서울시는 2005년 11~12월 터미널 연면적의 4배에 이르는 대규모 점포를 허용할 경우 수천억대의 특혜가 예상됐던 이 사업을 ‘경미한 사안’으로 분류하고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에 심의·의결 안건이 아닌 자문 안건으로 상정했다. 그리고 서울시는 2006년 5월 양재동 화물터미널 터에 백화점 등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유통업무설비 세부시설 변경 결정’을 고시하기에 이른다. 서울시가 삼척동자도 알 만한 대규모 특혜사업을 시장 임기 만료 50일 전에 밀어붙인 셈이다. 건축업계 관계자들은 파이시티 개발 사업의 핵심은 2006년 5월에 고시된 용도지역 변경이고, 사실상 이 고시로 사업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 MB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정황들이다. 특히 검찰은 MB가 파이시티 사업에 관심을 보인 시점이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가 브로커 이동율 씨(구속)를 통해 최 전 위원장과 당시 서울시 정무국장이었던 박 전 차관을 상대로 인허가 로비를 벌인 시기와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최 전 위원장은 한국갤럽 회장 시절인 지난 2004년 말 브로커 이 씨를 통해 이 전 대표를 처음 만났고, 이 씨를 통해 수시로 5000만 원에서 1억 원씩 금품을 전달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2005년엔 이 전 대표가 한국갤럽 회장 사무실을 방문해 만 원 권 현금이 담긴 쇼핑백을 최 전 위원장에게 직접 건네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시티 인허가가 진행되던 시기에 서울시 정무국장으로 재직한 박 전 차관은 2005년 이 전 대표로부터 사업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시 공무원을 소개해주는 대가로 2000만~3000만 원을 3~4차례에 걸쳐 받는 등 수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차관은 또 선진국민연대 시절(2006~2007)에 이 전 대표로부터 매달 생활비 명목으로 1000만 원씩 받은 의혹과 함께 2008년 아파트 구입비 명목으로 10억 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전 대표 역시 검찰 조사 과정에서 “2004년 말 최 전 위원장을 소개받았고, 2005년 초에 박 전 차관을 처음 만났다”고 진술했다. 이후 인허가 청탁과 함께 두 사람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거액의 로비 자금을 건넸다고 이 전 대표는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 전 대표는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에게 전해달라며 돈을 건넨 것은 이명박 서울시장을 보고 준 것”이라고 말해 로비의 최종 종착지가 MB였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따라서 검찰은 파이시티 인허가 진행 당시 MB의 측근들이 서울시 고위직에 대거 포진해 있었고, 일부 측근들은 도계위 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들의 역할 및 로비 개입 여부를 철저히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는 MB의 측근들이 대거 개입된 흔적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백용호 청와대 정책특보는 2005년 3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양재동 화물터미널에 상업시설을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구용역을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 특보는 이러한 연구용역 결과를 MB에게 직접 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서울시는 이 연구용역에 따라 물류기본계획을 작성했고, 이는 파이시티 인허가를 다룬 도계위에서도 근거자료로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특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국세청장과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MB의 최측근이란 점에서 당시 그의 역할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물류 기본 계획은 법에 따라 수립된 것이고 파이시티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당시 원 원장은 결제라인에 있었을 뿐 물류 기본 계획을 주도하지 않았고 인허가 과정에도 일체 개입한 적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MB의 또 다른 측근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은 서울시 도계위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이 전 수석은 2005년 11월 24일 열린 파이시티 용도변경안 자문회의 때 참석했고, 곽 위원장은 2005년 12월 7일 파이시티 시설 변경과 관련된 도계위 자문회의 때 참석해 모종의 역할을 한 의혹을 받고 있다. 신 전 차관은 언론인 시절인 2005년도 도계위원으로 활동했으나 파이시티에 대한 특혜시비가 일고 있는 두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 MB를 정점으로 한 측근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파이시티 개발사업은 구속된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이 로비 활동을 주도했고, MB의 지시에 따라 도계위원에 포진한 측근 그룹 등이 실무진에서 인허가를 밀어붙였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나아가 야권 주변에서는 2007년 대선을 준비하던 MB 측근 그룹이 총알을 마련하기 위해 파이시티 측과 인허가를 조건으로 빅딜을 시도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파이시티 측이 인허가 과정에서 1500억 원대에 이르는 돈을 로비 자금으로 뿌렸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로비자금의 사용처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 전 대표 또한 로비 자금으로 61억 원을 브로커 이 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상황이다. 따라서 검찰은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에게 건네진 십수 억 원은 조족지혈에 불과하고 정권 실세를 비롯한 MB 측근그룹과 당시 서울시 고위관계자 등에게 거액의 로비자금이 뿌려졌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정권 실세 및 MB 측근그룹에 건네진 거액의 ‘검은 돈’ 일부가 대선자금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날 경우 MB와 현 정권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과연 검찰이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을 넘어 현직 대통령과 살아있는 권력 심장부를 상대로 정면승부를 펼칠 수 있을지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파이시티 업무시설 확대 사인
파이시티 사건 불똥이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까지 튈 조짐이다.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명박 서울시장 재직 시절뿐만 아니라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인사들에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검 중수부는 오 전 시장 재직 당시인 2008년 9월 서울시 도계위의 파이시티 업무시설 확대 승인 과정에서 브로커 이 씨가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47)에게 수천만 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5월 3일 강 전 실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상태다. 검찰은 강 전 실장의 신변이 확보 되는 대로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건네받은 로비 액수와 용처, 당시 실무라인에 압력 행사 등 그의 역할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할 방침이다. 강 전 실장은 박 전 차관을 통해 브로커 이 씨를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실장의 개입 정황이 드러난 만큼 향후 검찰 수사는 서울시의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파이시티에 대규모 점포와 창고 등을 허용하는 도시계획 세부시설 변경 결정이 내려진 2006년부터 업무시설 확대 승인 등이 이뤄진 2008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시의 인허가 과정에서 전 방위적인 비리가 있었는지 여부를 철저하게 파헤친다는 각오다. 검찰이 파이시티 인허가 의혹과 관련해 2005년과 2008년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총괄팀에 근무했던 현직 공무원 10여 명에 대해 소환 조사를 병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당시 과장·팀장급뿐만 아니라 주무관급 직원들 전원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서 강 전 실장 등 정무라인으로부터 실질적인 청탁이나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강 전 실장이 오 전 시장의 최측근이란 점에서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오 전 시장에게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강 전 실장은 오 전 시장이 국회의원 재직 당시 보좌관으로 일하다 서울시장에 당선되자 줄곧 서울시에서 근무했다. 2006년부터 서울시 홍보기획관을 맡아 온 강 전 실장은 2010년 정무조정실장을 맡아 정치적 현안을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따라서 강 전 실장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 칼날이 ‘오세훈 사단’의 정무·실무라인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열려 있는 형국이다.
검찰은 오 전 시장 재직 시절에도 파이시티 사업은 진행형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오 전 시장이 재직했던 2008년 7월 14일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오피스텔 분양이 가능한 부대시설인 업무시설 비율을 6.8%에서 23%로 늘려달라는 내용의 건축심의 신청을 받은 서울시는 8월 20일 도계위를 열어 업무시설 비율을 20%까지 늘려주기로 결정한 바 있다.
따라서 검찰은 이 과정에서도 파이시티 측이 서울시 고위관계자들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전개했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검찰은 특히 강 전 실장의 역할과 맞물려 오 전 시장의 직간접적인 개입 내지는 영향력 행사 여부도 꼼꼼히 파헤친다는 방침이어서 또 다른 파문 확산을 예고하고 있다.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