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이제 50대, 그는 세계 최대 규모 비즈니스 여행사 CWT(Car
lson Wagonlit Travel) 한국 파트너 회장, 한국 최초 비즈니스 호텔체인 이사회의장, 리조트 대표이사, 바이오회사 특별고문 등을 맡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사업이 ‘동업’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 ‘만인의 동업 멘토’를 자처하는 김병태 회장(54) 스토리를 시작한다.
#명분과 자기 역할
‘동업의 달인’이라 불리는 그다. 하지만 사실 첫 동업은 완벽한 실패였다.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 실패담부터 들어보자. 아이템은 야구공이었다. 그가 ROTC 장교에서 막 전역한 1982년께. 야구선수를 하다가 프로야구단 주무로 있는 친구의 사업 제안을 받고 덜컥 응했던 게 화근이었다.
“그 친구가 야구공을 만들기만 하면 이 구단 저 구단에 납품할 수 있다고 해서 50%, 500만 원을 출자했죠. 그러나 얼마 뒤 친구는 회사도 차리기 전에 야구공 제조업자한테 돈을 줬는데 도망갔다고만 얘기하고는 미국에 가버렸습니다. 한푼도 못 받고 확인할 길도 없고….”
이 첫 실패에서 그는 평생 사업의 원칙이 되는 두 가지, ‘명분과 역할’을 얻었다.
“명분 없는 사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야구용품 제조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돈 욕심에 나섰던 거니까요. 명분 없는 사업은 추진력이 떨어져 난관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망해도 후회하지 않을 사업을 해야 재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돈만 내놓고는 제 역할도 분명하지 않았어요.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동업 공증 서류를 금고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허허.”
이런 원칙을 가지고 1984년 시작한 사업이 ‘전국도로교통지도’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1988년 올림픽이 열리는데 제대로 된 지도책이 없다”는 친구 아버지의 말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먼저 신혼집 전세금을 빼 자금을 만들고 지도 전문가들을 수소문해 불러 모았다. ‘외인구단’처럼. 그러나 사업은 돈 먹는 하마였다. 선친의 부의금까지 쏟아 부어서야 지도책은 완성됐고 부도 직전에야 매스컴을 타고 극적 반전, 대박을 쳤다.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지도책을 만드는데 총 7000만 원 썼습니다. 당시 강남의 작은 아파트 하나가 그 정도 했지요. 지금으로 치면 한 7억 원쯤? 그중 빚이 5000만 원이었고. 나중에 계산해보니 3억 원가량 벌었더군요. 무엇보다 국립지리원 관계자로부터 ‘고산자 김정호 이후 지도를 제일 많이 발전시켰다’는 말을 들었고 교보문고에 지도 코너가 생기는 등 제가 사회에 순기능을 했다는 자부심이 컸습니다.”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새로운 출판 시장을 열어놓은 그는 여기저기서 지도책이 쏟아져 나오고 올림픽이 끝날 즈음 직원 5명의 여행사에 입사한다. 출판사 사장 출신의 여행사 ‘넘버3’. 그는 들어가자마자 보증보험증서를 확보하며 직원들을 놀라게 하더니, 남의 빌딩에서 영업하는 ‘빌딩타기’, 하와이 효도여행 상품 성공 등 승승장구, 7년 만에 대표이사가 된다. 입사 때부터 깍듯하게 ‘모신’ 나이 어린 여성 창업자와의 동업을 통해서다.
이후 그의 사업 파트너 리스트에는 유독 여성이 많다. CWT 회장직도 한때 부하직원이었던 여성 후배와의 동업을 통해서 맡게 됐다. 김 회장은 신용카드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업계 1위 업체에 인수·합병(M&A)당한 적이 있다. 그 M&A 상대의 제안으로 동업을 했는데 그 상대도 여성, 그것도 싱글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여성과의 동업을 성공의 열쇠 중 하나로 꼽는다.
“출판사를 할 때 월급을 못주는 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사를 지켜준 이들은 여직원들이었습니다. 여성은 상대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판단력도 예민해서 사업이 어려워지는 순간을 정확하게 잡아냅니다. 사업에 있어 여성들은 대개 낭비하지 않습니다. 여성과 남성은 다릅니다. 동업을 통해 서로 보완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여기서 드는 걱정 하나. 성인 남녀가 사업을 함께하다 보면 ‘스캔들’이 생기거나 사실은 아니더라도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어찌 해야 하나.
“그럴 개연성이 있지요.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업가가 아니라도 사회생활을 하려면 직장 동료나 비즈니스 파트너가 여성이 꼭 있을 수밖에 없어요. 다른 이유 때문에 동업 파트너로 여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오해가 있더라도 결국은 남의 얘기, 정도를 지키면 됩니다. 선친께서 여성을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본적으로 저처럼 여성을 존중하면 그런 유치한 사고는 안 납니다.”
#멘토링 동업의 꿈
고교 동창, 직장 상사와 부하, 매형, 동호회 강사, 심지어 M&A 상대 등 다양한 파트너와 출판사, 여행사, 부동산, 카드 제조, 클래식 아카데미, 바이오, 호텔 등 다양한 아이템의 동업을 성공시킨 김 회장. 그는 “스펙 달리는 보통사람이 성공하는 길은 동업”이라며 “미래의 파트너들이여 나에게 동업하자고 들이밀어라”고 외친다. 요즘엔 하루 걸러 하나씩 들어오는 제안서를 검토하고 일일이 답을 해주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한 독자가 소니 워크맨 수백 종을 모아 박물관을 내겠다고 제안서를 보내왔어요. 소니 향수를 가진 일본인 관광객 10%만 온다면 비즈니스가 된다면서요. 수집 열의에 경의를 표한 뒤 전시 공간 확보, 직접 들어보는 체험에 있어서 내구성 문제, 일본인 관광객 모집 문제 등을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제안서가 들어오고 다듬어지다보면 사업화할 수 있는 게 반드시 나올 겁니다.”
계속해서 그는 책과 강연을 통해 아주 실용적인 멘토링(가르침)을 하는 사회적 기업을 꿈꾸고 있다. “사람들은 멘토(스승)가 귀하다고 하지만 멘티(제자) 없이 멘토링 할 수 없습니다. 용기 있는 멘티들, 정말 사업에 열의가 있는 멘티들을 모은 다음 멘토를 조직해 수십 명이 함께 동업을 할 겁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