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9일 열린 두산과 KIA의 경기에서 8회말 역전에 성공한 두산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
시즌 전 두산을 4강 후보로 점치는 야구전문가는 극히 드물었다. 이유는 많았다.
먼저 지난해 악재가 올 시즌에서도 부정적으로 작용하리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도 그럴 게 지난해 두산은 주전투수가 여성 아나운서 자살에 연루되며 큰 홍역을 앓았다. 두산 관계자가 “창단 이래 최대 위기”라고 칭할 만큼 두산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야구에 집중해야 할 선수들도 야구 외적인 이유로 흔들리면서 두산의 팀 분위기는 거대한 냉장고를 개방한 듯 차갑기만 했다. 원체 후폭풍이 컸던지라, ‘올 시즌도 팀 분위기가 바로 잡히기는 틀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 김진욱 감독.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눈에 띄는 전력보강이 없던 것도 부정적 전망의 한 이유였다. 실제로 두산은 외부 FA(자유계약시장)를 한 명도 영입하지 않았다. 정재훈, 임재철 등 소속 FA 선수들과 계약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막상 뚜자껑을 여니 두산의 악재는 호재로 작용했다.
두산 선수들은 지난해의 악몽을 훌훌 털어내는 데 성공했다. 임태훈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대형 스캔들에 휩싸이며 1승1패 7세이브 평균자책 3.79를 기록했던 임태훈은 그해 후반기엔 아예 등판조차 하지 못했다. 선수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울 것이란 소릴 듣기까지 했다. 하지만 임태훈은 겨우내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하며 새로운 투수로 거듭났다. 임태훈은 3승1패 평균자책 2.53으로 두산 선발진에서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 다음으로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두산의 한 선수는 “팀원들끼리 ‘(임)태훈이의 재기를 도와주자’는 말을 자주 한다”며 “지난해 태훈이 문제가 악재로 작용했다면 올 시즌엔 태훈이가 우리를 뭉치게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 감독의 리더십도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손혁 MBC SPORTS+ 해설위원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김 감독은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리더십으로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따르도록 만들었다”며 “그 때문인지 두산 선수들 사이에서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결의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 FA 영입 선수들을 능가하는 중고참 선수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2008년 이후 하향세를 타던 고영민은 올 시즌 부활에 성공했다. 오재원에게 빼앗겼던 붙박이 2루수 자리를 되찾으며 타율도 3할 이상을 꾸준히 유지 중이다.
‘차세대 김동주’로 꼽히는 윤석민은 3할에 가까운 타율을, ‘최강 백업’ 이원석은 홈런 3개로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군 제대 선수 허경민과 최재훈도 타격과 수비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두산 상승의 숨은 일꾼으로 꼽히고 있다.
두산의 상승세엔 프런트의 역할도 크다. 두산 프런트는 현장을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현장의 부족한 점을 ‘딱딱’ 짚고, 현장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서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례가 있다. 니퍼트다. 두산 프런트는 초보 감독의 순항을 위해선 반드시 수준급 외국인 투수가 필요하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에이스 니퍼트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서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기로 결심을 굳힌 상황이었다. 요미우리는 시즌 중 스카우트를 파견해 이미 니퍼트에게 거액을 제시한 터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요미우리 기요다케 에이지 구단 대표와 구단주인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이 서로를 비난하는 이전투구를 펼치며 니퍼트 입단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요미우리행을 준비하던 니퍼트는 당황했고, 두산 프런트는 이 틈을 노려 미국까지 날아가 니퍼트를 설득했다. 결국 니퍼트는 자신을 찾아 미국까지 건너온 두산 프런트의 노력에 감동해 두산 잔류를 선언했다.
▲ 두산의 선발 투수 니퍼트와 포수 양의지.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
결국 양의지는 2008년 경찰청에 입대했고, 2군 무대에서 풀타임으로 뛰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포수로 성장했다. 만약 두산 프런트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양의지를 계속 백업포수로 활용하거나 2군에 뒀다면 지금의 주전포수 양의지는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두산 프런트가 확실한 비전을 갖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구단 고위층의 능력 때문이다. 두산 김승영 사장과 김태룡 단장은 일반사원과 2군 매니저로 구단 일을 시작한 이들이다. 다른 구단 임원들이 모그룹에서 파견된 낙하산 인사라면, 두산 고위층은 입지전적인 인물들인 셈이다. 따라서 누구보다 구단과 야구계 생리에 대해 잘 알고, 경험도 풍부하다. 두산이 갖가지 스캔들과 풍파에 시달리면서도 늘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던 것도 구단 고위층이 방패막이 돼 줬기 때문이다.
많은 야구인이 “서울 라이벌 LG가 두산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부분”으로 프런트의 힘을 꼽는 것도 과장은 아닌 셈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