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조 원대 다단계 사기사건을 벌인 조희팔 공개 수배 전단지. |
건국이래 최대의 다단계 사기사건으로 꼽히는 일명 ‘조희팔 사건’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최근 경찰이 조 씨 측근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금융거래 내역 추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실상 재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대구의 전·현직 경찰 2명을 포함, 조 씨의 내연녀와 친인척 등 22명의 금융거래 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2008년 조 씨가 해외로 도피한 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했던 이 사건은 조 씨의 비자금 정황을 포착한 경찰이 자금흐름 추적에 들어감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사당국의 의지에 따라 ‘조희팔 게이트’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08년 가을 피해자들이 고소장을 제출했을 당시부터 이 사건을 둘러싼 검은 커넥션 의혹은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조 씨가 현 정권 실세로 꼽히는 인물과 심심찮게 어울렸으며 조 씨의 사업확장 및 불법행위 무마는 물론이고 조 씨의 밀항에도 깊숙이 관여한 거물급 인사들이 존재할 것이란 얘기들이 나돌았다.
따라서 향후 사정당국의 수사 초점은 조 씨와 권력 실세들 간의 검은 커넥션 의혹을 파헤치는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이번 수사는 조 씨가 도피 전 사업을 정리하면서 100억 원대의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첩보에서 시작됐다. 수사진행 사항에 대해 경찰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20명이 넘는 인물들을 특정해 금융거래 내역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단순한 첩보 수준 이상의 정황 및 증거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불법 다단계사업으로 돈을 모은 조 씨가 부동산, 고철, 요트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다가 중국 밀항 한 달 전쯤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거액의 현금을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사정당국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조 씨가 만든 비자금의 행방이다. 그리고 비자금 통로로 포착된 것이 차명계좌다. 경찰은 조 씨가 내연녀와 조카, 회사 관계자 등 측근들 명의로 만든 여러 개의 차명계좌를 자금줄로 이용해 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한 조 씨는 여전히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하지만 조 씨가 4년째 호화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는 첩보가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는 이상 조 씨가 조성한 비자금이 차명계좌를 통해 그에게 다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 수사는 조 씨와 주변인들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것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조 씨가 조성한 거액의 비자금이 다시 조 씨에게 흘러들어간 정황만 포착된다면 조 씨의 행적도 조만간 꼬리가 잡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번 수사가 단지 조 씨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찰은 주변 인물들의 금융거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조 씨와 부적절한 금전거래를 한 거물급 인사들이 하나 둘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사건이 생각 이상으로 훨씬 복잡하고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조희팔 사건은 조 씨가 지난 2004년 전국에 10여 개 다단계 업체를 차린 뒤 의료기기 대여업 등으로 투자자들을 끌어 모아 5년간 5만여 명의 투자금을 가로챈 사기사건이다. 피해 금액이 무려 4조 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은 사상 최대의 서민 범죄에서 이제 권력형 게이트로 확전될 조짐이 일고 있다.
조 씨와 거물급 인사와의 커넥션 의혹은 피해자들 사이에서 이미 여러 번 제기됐다. 실제로 조 씨는 2008년 가을경부터 경찰수사가 시작되자 전국에 흩어져있는 사업장을 관할하는 일부 경찰을 비롯한 수사 관계자들에게 수사 무마조로 5억 원 이상의 로비 자금을 뿌리기도 했다. 조 씨가 수사기관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전국을 무대로 사기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나 중국으로 밀항할 수 있었던 것. 4년째 호화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수사당국과 현 정권 실세들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실 조 씨의 밀항 전후 경찰의 태도는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조 씨 도피 직전에 벌어진 경찰 압수수색은 이미 조 씨 일당에 의해 모든 자료가 파기된 후에 이루어졌고, 2008년 12월 조 씨는 수사당국을 비웃듯 유유히 중국으로 밀항했다. 조 씨와 권력의 수상한 커넥션 의혹에 물꼬를 튼 것은 수사 책임자와 조 씨 간의 수상한 돈거래였다. 대구지방경찰청 간부로 수사를 지휘했던 권 아무개 총경은 대구지방경찰청이 조 씨의 대구 사업장을 압수수색하기 전 날 조 씨를 만나 9억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권 총경은 검찰조사에서 ‘투자유치자금’이라고 주장했고, 검찰은 ‘참고인 중지’로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하지만 권 총경은 참고인 중지 상태에서도 타 경찰서 서장으로 승진했다가 다시 사건의 수사책임자 자리로 돌아온 사실이 드러나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
조 씨 비호 의혹을 받은 인물은 또 있다. 당시 해경은 밀항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조 씨의 신원을 마약사범으로 오인하면서 작전을 마약반입 현장을 덮치는 방향으로 잘못 짜는 바람에 조 씨의 도주를 막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해경청장은 후에 경찰청장이 된 강희락 씨였는데 애초부터 밀항한 조 씨를 체포·송환할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냐는 비난에 시달렸다.
피해자들은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안 잡는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 피해자는 “조 씨가 밀항 전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온 정황이 뚜렷한데 이를 수사기관이 몰랐을 리 없다. 피해가 이렇게 커질 때까지 조 씨가 사기행각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이나 유유자적 밀항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조 씨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수사기관뿐만 아니라 보다 큰 권력과 거물급이 조 씨 비호세력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희팔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로 구성된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김상전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 사건을 ‘비리 종합선물세트’로 규정했다. 4년 동안 조 씨의 뒤를 쫓아온 김 대표는 “자체적으로 파악한 바로는 피해액이 8조 원 이상, 직접적인 피해자만 10만 명 이상”이라며 경찰을 넘어선 정권 차원의 비호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A 씨와 B 씨는 중학교 동문으로 각별한 관계이며 탄탄한 자금력을 갖고 있는 B 씨는 예전부터 조 씨 사건에 깊숙이 개입해왔다는 것이었다. 조 씨와 A 씨의 다리를 놔준 인물도 다름 아닌 B 씨라는 것이다. 이들 간에 수상한 돈거래가 있었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사는 “조 씨가 B 씨에게 사건 수습 및 뒤를 봐달라는 명목으로 20억 원을 건넸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쯤되면 A 씨에게도 상당한 금액이 전해지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기자는 사실확인을 위해 B 씨와의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지인을 통해 “응하지 않겠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사정당국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조 씨의 ‘상납 리스트’다. 조 씨가 경찰수사 무마 및 밀항을 위해 5억 원 이상을 뿌렸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추가로 조 씨에게 부적절한 금품을 받은 인사가 존재할 것이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최근 조 씨의 핵심 측근이 중국에서 긴급 체포되고 경찰이 전·현직 경찰관을 포함한 측근 22명의 금융거래 내역을 조사함에 따라 답보상태에 머물던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과연 이번에는 조 씨가 “MB정권에서는 절대 나를 못 잡는다”고 호언장담해 온 진짜 이유를 밝힐 수 있을까.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