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중앙지법에 들어서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최근 서울구치소는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의 구치소 내 휴대폰 사용 루머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에 힘을 써주고 1억 7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5월부터 구속 수감 중인 은 전 감사위원에게 구치소 직원이 휴대폰을 제공해 편의를 봐줬다는 얘기가 불거진 것이다. 구치소 측은 “모든 재소자들을 차별 없이 규정대로 대하고 있으며 특정 수용자에게 휴대폰을 제공한 사실은 결코 없다”며 관련 내용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 4월 서울구치소 출정과 소속 한 아무개 씨는 은인표 전일저축은행 전 대주주(2008년 구속)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현금 8900만 원을 받아 구속된 바 있다. 서울구치소 총무과 관계자는 “출정과 직원의 개인적인 범죄와 관계된 일이기에 자세히는 모른다”라고 밝혔지만 당시 재소자들 사이에선 한 씨가 은 씨에게 휴대폰 사용과 보직 배치 등에 있어서 혜택을 주고 돈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수감자들 사이에선 휴대폰 사용과 관련해 일부 인사들에 대한 ‘특별대우’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수도권 소재 A 구치소에서 복역 중인 이 아무개 씨는 지난 5월 초 기자에게 “휴대폰을 통해 외부 연락을 허용하는 일은 흔한 일”이라면서 “A 구치소 역시 규정을 어긴 휴대폰 사용이 있었다. 당시 한 재소자가 재판이 있어 출정을 가야했지만 구치소 출정과 직원의 실수로 재판에 나가지 못했고 이에 재소자가 항의를 하자 구치소 직원들이 그를 관할 사무실로 불러 담당 변호사와 통화를 하라고 휴대폰을 지급했다. 엄연한 규정위반”이라고 털어놨다.
일부 수감자들은 현 정부 실세들의 독방 수감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현재 서울구치소엔 최시중 박영준 은진수를 비롯해 부산저축은행 불법에 연루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이국철 SLS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4억여 원을 받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촌처남 김재홍 KT&G복지재단 전 이사장 등이 수감 중인데 대부분이 독방을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독방을 차지하게 된 것 자체가 특혜라는 시선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서울구치소 정문.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이처럼 범털들이 독방에 수용되는 것과는 달리 일반 재소자들은 도저히 같이 생활할 수 없을 정도의 성격 이상자나 환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혼거수용 형태로 수감돼 있다. 서울구치소 측은 “미결수의 경우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14조에 의거해 독거수용이 원칙”이라고 강조했지만 “예산 관계상 대부분의 재소자들이 혼거수용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는 재판 당사자의 경우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 검찰에서 별도로 독거수용을 요청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범털들에게는 독거수용 이외에도 특별접견으로 통하는 장소변경 접견도 비교적 쉽게 허용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언급한 재소자 이 씨는 “재소자들은 형 집행법에 따라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지만 이곳은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처우가 천차만별”이라며 “힘없는 재소자는 특별접견을 하고 싶어도 단 한 차례도 못하고 끝나는 반면 힘 있는 재소자는 몇 차례에 걸쳐 하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과거 특별접견으로 불리던 장소변경 접견은 수감자와 접촉차단 시설이 없는 장소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면담이 가능하다. 서울구치소의 경우 칸막이가 있는 허름한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정도지만 구치소 내에서는 ‘빽’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서울구치소는 얼마 전에도 특별접견을 남용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혐의로 수감 중이던 진경락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2010년 8월부터 2011년 4월에 걸쳐 청와대 및 총리실 고위인사들과 잇따라 장소변경 접견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서울구치소의 한 직원은 “진경락 씨의 특별접견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며 특혜는 없었다”면서 “1급 모범수나 취사를 담당하는 재소자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 특별접견을 할 수 있는 혜택을 주는 등 일반 수감자들도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항변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이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이 집행정지로 풀려난 사례들도 눈길을 끈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 씨는 지난 2008년 총선 당시 공천헌금 명목으로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장에게 30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2009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 대통령의 고려대학교 동기이자 재정후원자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은 워크아웃 조기 종료 등을 약속한 대가로 46억 원을 받은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현재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상태다. 최시중 전 위원장의 경우에도 5월 23일 심장수술이 예정돼 있어 상당 기간을 병원에서 지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천 위원장처럼 구속집행정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구속집행정지나 형집행정지는 일반 수감자에게는 시도조차 하기 힘든 일로 여겨진다고 한다. A 구치소 이 씨는 “지난해 결핵성 흉막염으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증상까지 왔으나 구치소 측에서는 일주일 동안 감기약 처방만 할 뿐 청진기 한 번 대주지 않았다”며 “아파서 풀려나는 것은 개털(범털의 반대말로 일반 재소자를 가리키는 은어)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가 수감 중인 A 구치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처럼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이 왔다고 해서 특별히 예우하는 관행은 사라졌다”면서도 “범털들이 많은 서울구치소는 관리에 품이 많이 들기에 교도관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 또 이들을 혼거수용 시키면 일반 재소자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사실상 통제하기가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 수감자들이 장소변경 접견을 가지거나 구속집행정지를 받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구치소 직원들은 규정대로 하려고 한다. 문제는 바깥에서나 안에서나 권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 김홍업 씨는 2년간 5차례의 형집행정지 연장을 신청했다. 일요신문 DB |
우울증 홍업 씨, 상당기간 창살 밖 생활
서울구치소는 역대 대통령들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던 곳일 뿐만 아니라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씨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김홍업 씨,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형 노건평 씨도 서울구치소에 머물렀었다. 1995년 안양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만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자네 구치소에는 계란 프라이 주느냐”고 물어 본 일화는 유명하다.
1997년 김현철 씨 구속은 현직 대통령 아들의 구속이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한겨레>엔 “현철 씨는 새벽 3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첫 식사로 쌀과 보리가 8:2 섞인 밥에 참치찌개, 야채무침, 깍두기가 나왔는데 반공기도 비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등과 같은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되기도 했다. 현철 씨와 함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등도 수감돼 있어서 당시 서울구치소 측은 면회시간이나 운동시간을 달리해 이들이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는 후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홍업 씨는 2003년 5월 특가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홍업 씨는 2005년 6월 출소할 때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형집행정지 연장을 신청해 상당기간을 창살 밖에서 생활했다. 병명은 우울증으로 당시에 흔하지 않은 사례였다. 이 때문에 형집행정지가 특권층의 전유물이라는 여론의 비판이 거세졌고 그 이후 교정당국은 재소자가 수술을 필요로 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형집행정지를 허용하지 않고 기간도 최장 3개월로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수]
최강 뻔뻔 범털은 누구
A 비서관 “MB 너무 몸 사려 석방 지연”
범털들이 구치소에 입감이 되면 며칠 동안은 ‘배신감’에 떨며 식사도 잘 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적응이 좀 될 만하면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여전히 실세 행세를 하며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시키는 경향도 있다.
이명박 정권 초반에 한창 잘나가던 A 비서관은 서울구치소에서 자주 특별 면회를 해 범털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한다. 그는 특별면회를 할 때 별 일 아닌 듯 면회객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A 비서관은 자신의 석방과 관련, 면회객과의 대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배짱이 너무 없고 언론 눈치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석방이 지연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그는 “이 대통령이 요즘 지지율이 많이 올라가 일을 열심히 잘하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여전히 정권 실세 행세를 하기도 했다.
범털들은 구속되면 자신들이 죄를 지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주군’을 대신해 ‘몸빵’을 했다는 의식이 강해 여전히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한 소장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권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구속되었다고 생각하는 권력실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범털들은 대통령을 팔아 자신들의 사익을 챙길 대로 챙기다가 결국 구속까지 된 파렴치범에 불과할 뿐”이라고 했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