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의 주변에서 뭉칫돈이 발견되면서 ‘노무현 비자금’ 의혹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그야말로 고구마 덩굴을 파헤친 꼴이다. 줄기를 따라 파면 팔수록 점점 굵직한 놈들이 줄줄이 딸려 나오고 있다. 잡아당겨 보니 생각도 못한 거대한 놈도 발견됐다. 하지만 이제 막 손에 잡힌 고구마 덩굴 한 줄기를 당겼을 뿐이다.
최근 검찰이 파고 있는 노건평 씨 의 이권개입 비리 수사가 딱 그 짝이다.지난 18일 노 씨의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창원지검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노 씨의 이권개입 비리 수사 도중 주변인 통장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수상한 뭉칫돈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정체불명의 이 괴자금은 어떻게 발견된 것일까. 지난해 연말부터 창원지검 특수부는 노 씨와 관련한 비리개입 의혹을 수사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포착된 것은 공유수면 매립사업에 노 씨가 개입했다는 것이었다. 노 씨는 지난 2008년 경남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 공유수면 17만 9000m²의 매립사업권에 개입해 사돈 강 아무개 씨의 명의로 사업권을 따낸 업체의 지분 일부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렇게 챙긴 지분은 다른 사업체에 팔아 현금 9억 4000여 만 원을 챙겼다. 이러한 개입 정황만으로도 노 씨는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한다.
검찰 수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검찰은 노 씨가 챙긴 자금 일부가 노 씨가 실소유주로 있는 전기안전기기 제조업체 KEP 법인 통장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KEP는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로 알려졌으며 측근인 이석주 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였다.
검찰 수사 결과 노 씨는 KEP 명의로 지난 2006년 태광실업 소유의 김해시 진영읍 땅 5000㎡를 5억 7000만 원에 사들인다. 그리고 얼마 후 용도를 변경해 건물을 짓고 33억 원에 되팔아 큰 차액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노 씨는 회삿돈 14억 원을 착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괴자금은 바로 이 KEP라는 노 씨 실소유 회사의 자금흐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지난 2006년 KEP는 1억 원을 증자했다. 서류상 이 증자 자금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한 측근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 돈이 들어 온 곳은 노 씨의 집사로 알려진 최측근 박영재 씨의 부인 계좌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검찰은 박 씨 계좌 흐름을 추적했다.
그 결과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5년부터 퇴임 직후인 2008년 5월까지 거대한 자금이 쌓인 흔적을 발견했다. 검찰이 구체적인 금액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뭉칫돈은 300억대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검찰 수사가 노 씨의 개인비리 정황을 밝히는 전반전이었다면 이제 후반전은 이 괴자금의 성격과 실체를 밝히는 것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현재 검찰은 이 자금의 성격에 대해 “노 전 대통령과 그 가족과는 상관없는 돈이다. 노 전 대통령을 아주 나쁜 쪽으로 이용한 사람들의 자금이다”라며 일정한 선을 그으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어찌됐건 괴자금이 노 씨의 비리개입 수사 과정에서 발견됐고, 최측근 박 씨가 괴자금 관리자라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노 씨가 숨겨 놓은 비자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더 이상한 점은 이 괴자금이 2008년 5월 이후부터는 아무런 입출금도 없이 지금까지 그대로 묶여 있었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 활발하게 자금흐름이 있었던 이 계좌의 자금은 묘하게도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직후부터는 완전히 흐름을 멈췄다. 만약 이 자금이 박 씨의 단순한 사업자금이었다면 무려 4년이라는 세월 동안 계속 묶여 있지는 않았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더군다나 이 자금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검찰은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 자금이 권력형 비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직 검찰 수사가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이 자금의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려면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금까지 2차례 노 씨를 소환 조사한 검찰은 조만간 노 씨를 기소해 괴자금 실체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검찰은 괴자금 수사 과정에서 노 씨 이외에 측근인 박연차 전 회장의 개입 여부도 철저히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노 씨가 대통령 친인척 파워로 각종 이권에 개입해 자금을 쌓아뒀을 가능성도 있지만 괴자금 규모를 감안할 때 박 전 회장의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실제로 이 괴자금의 흐름이 활발하던 시기는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386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대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또한 박 전 회장이 KEP에 지분 40%를 투자했다는 점도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검찰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노 씨 측은 불쾌한 감정을 표출하면서도 여론추이를 살피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 씨는 검찰 브리핑 직후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황당하다. 무슨 얘기인지, 정말 꿈같은 얘기다”라며 황당한 반응을 보였으며 또 다른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는 “검사들이 만든 작품이다”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정재성 변호사도 “피의사실을 언론에 공표한 검사를 고소하겠다”고 밝히는 등 적극적인 대응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노 씨는 그동안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연임 청탁 및 금품수수’ ‘박연차 회장 불법 선거자금 종용’ ‘세종증권 매각 과정 개입 및 금품수수’ 등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 내내 크고 작은 구설수가 끊이질 않았고, 실형까지 받은 전력이 있다. 동생인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입버릇처럼 말한 ‘소박한 농촌의 촌로’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영구미제로 잊혀지는 듯했던 이른바 ‘노무현 비자금’ 사건이 노건평 씨 측근 계좌에서 300억대 괴자금이 발견되면서 다시금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노 씨의 비자금으로 의심되고 있는 괴자금의 실체는 무엇일까. 또한 이번 사태가 ‘노무현 비자금’ 사건으로 확전될지 검찰의 수사 추이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 전경.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회사 통장 잔고 220만 원뿐”
노건평 씨에 대한 공금횡령 수사가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노 씨 측근의 계좌에서 300억 원의 뭉칫돈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300억 원의 괴자금은 검찰이 노 씨의 비리수사 중 측근인 박영재 씨(57)가 운영하던 폐기물 업체의 회사계좌에서 발견했다. 검찰은 돈이 오간 시기가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인 2005~2008년 초까지라는 점에서 조성과정에 건평 씨와 제3자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300억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괴자금의 출현과 함께 박 씨가 노 전 대통령이나 건평 씨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점도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건평 씨와 중·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박 씨는 건평 씨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경남 진영읍 진영리에서 오리농장과 오리요리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던 박 씨는 현재 영재고철이라는 폐기물업체를 운영 중이다. 또 박 씨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진영읍(봉하마을) 번영회장이기도 하다.
박 씨는 건평 씨와의 친분에 대해 지난 5월 1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번영회 회장직으로서 노 전 대통령 관련 행사를 하며 건평 씨와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돈거래를 하거나 사업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지역 번영회 회장이었던 박 씨는 노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노 전 대통령의 진영중학교 후배인 박 씨는 번영회 회장으로서 노 전 대통령 관련 지역행사를 도맡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도 지역 축하 행사를 주최하는 등 앞장서서 축하행렬을 맞이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 그는 지역에서 해마다 노 전 대통령 당선 기념행사를 주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박 씨는 지난 2007년 5월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진영읍 번영회가 지역 상품인 단감을 북한 주민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박 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고 계신데 우리도 도움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 씨는 지난 19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300억 괴자금 의혹에 대한 소회를 피력했다.
―검찰 발표와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진 300억 원의 실체는 무엇인가.
▲300억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만큼 큰 돈을 만질 수도 없고, 노건평 씨와 돈 거래를 한 적도 없다.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 영재고철 회사 통장에 입금된 돈이 300억 원 이라던데.
▲현재 회사 통장 잔고는 220만 원이다. 어제 찾아온 기자들에게 다 보여줬다. 장사하면서 물건 값 등으로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게 정상이다. 그게 뭐 잘못된 건가.
―노건평 씨나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두 분과 다 중·고등학교 선·후배 관계다. 노건평 씨와는 같이 낚시 한 번 간 적이 있을 뿐 사업을 해본 적은 없다.
―300억 뭉칫돈과 관련해 검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있나.
▲아직 연락을 못받았다. 더군다나 나는 지난 2007~2008년 5월에 창원지검 특수부로부터 내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도 이번과 똑같았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13억 돈상자’와 무슨 상관
노건평 씨의 괴자금 사건은 상황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비자금 의혹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있다. 박영재 씨의 계좌로 들어온 돈의 조성 경위뿐 아니라 사용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은 일단 “현재까지는 돈의 성격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며 노무현 일가와의 연관의혹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어떤 수상한 자금흐름이 포착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일명 ‘13억 돈상자 사건’으로 불똥이 튈지에 대해서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13억 돈상자 사건은 노 전 대통령 딸 정연 씨가 미국 뉴저지 아파트 구입자금조로 재미교포 경연희 씨에게 13억 원을 환치기해서 전달했다는 의혹을 핵심을 하고 있다. 2010년부터 경주현 전 삼성종합화학 회장의 딸 경연희 씨의 외화밀반출 및 상습도박 의혹에서 시작된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일요신문>은 수사진행 범위와 방향에 따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밀반출 의혹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거론한 바 있다.
지난 2월 13억 원을 경 씨에게 송금한 수입차 딜러 은 아무개 씨를 불러 자금출처 및 송금경위를 조사한 검찰은 은 씨로부터 “누구 돈인지는 모르지만 경 씨에게 13억 원을 환치기해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마치 마피아 영화를 방불케 했던 13억 돈상자와 마스크 남성의 존재, 1만 원권 13억 원이 환치기되어 달러로 경 씨에게 들어갔다는 폭로자 댄 리 형제의 주장이 서서히 사실로 드러나면서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물론이고 정치권의 긴장감도 고조됐다.
13억 원의 존재사실을 확인한 검찰수사는 경 씨에게 들어간 자금의 출처가 정연 씨와 노 전 대통령 일가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규명하는 작업으로 가닥이 잡혔다. 하지만 2009년 정연 씨가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 ‘허드슨 클럽 400호’의 매입자이자 노무현 일가의 해외 자금유출 의혹을 풀 수 있는 키맨인 경 씨가 이제껏 검찰에 출석하지 않아 사건의 진실은 드러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경 씨로부터 전해들은 노무현 일가의 비자금 문제 및 자금유출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던 댄 리 씨는 노 일가의 비자금 문제와 관련해 “경 씨에게 돈이 유입된 과정 및 흐름을 파보면 정연 씨 문제를 포함한 모든 의혹들에 대한 실마리가 잡힐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검찰 안팎에선 이번에 드러난 괴자금이 13억 돈상자 사건과 어떤 경로로든 연결된다면 3년 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못지않은 파문이 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