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남노 사태 불구 현장 경영인 배제해 뒷말…포스코 “지주사, 경영능력이 중요”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관치' 논란을 불러 일으킬 만큼 주인 없는 기업의 수장들이 힘없이 자리에서 내려왔다. 연임이 거의 확정적이던 구현모 전 KT 대표마저 결국 스스로 포기하면서 최정우 포스코 회장에게 눈길이 쏠린다. 재계 일부에서는 '다음은 포스코'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최정우 회장의 임기는 1년 남짓 남았다. 하지만 역대 포스코 회장들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번번이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터여서 최정우 회장이 끝까지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동안 정부는 KT와 포스코의 수장들을 에둘러 비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 선진화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KT와 포스코를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도 “포스코와 같은 소유 분산 기업의 대표이사들이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며 토착화하는 호족 기업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역시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를 이유로 “KT, 포스코 등 오너 없는 회사에서 최고경영자 선임에 ‘셀프·황제연임’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정우 회장은 일단 버티기에 들어간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오는 17일 개최되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우호 세력을 강화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포스코의 발전과 대척점에 있다는 문제제기가 나온다.
최정우 회장은 포스코에서 재무통으로 통한다. 현장보다 사무·경영 중심의 이력을 쌓은 그는 2018년 회장직에 올랐다. 최정우 회장은 효율적인 비용 관리를 통한 수익성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포스코그룹 본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제철소 현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동시에 나왔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지난해 태풍 힌남노 사태의 피해를 두고 최정우 회장의 현장 대응 능력 부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힌남노 태풍으로 1회성 비용이 급증하면서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4678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힌남노 사태의 피해로 포스코 실적에 미친 손실 규모는 1조 3400억 원으로 추산됐다.
문제는 이후의 대처다. 당시 포스코를 이끌었던 김학동 부회장은 큰 제재 없이 포스코를 계속 이끌고 있다. 올해 임기가 마무리된 포스코홀딩스의 기타비상무이사직도 오는 17일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재선임하기로 했다. 역대급 사고에도 굳건한 모습이다.
현장 출신으로 분류되는 김학동 부회장은 온건파로 알려졌다. 최정우 회장과 ‘코드’도 꽤 잘 맞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최정우 회장이 힌남노 사태를 적극적으로 묻지 않고 김학동 부회장을 중용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따라다닌다.
이번 주총을 통해 선임 여부가 결정되는 포스코홀딩스 사내이사 후보 명단을 보면 최정우 회장 중심의 인선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힌남노 피해에도 불구하고 현장 중심 이력을 쌓은 인사는 사내이사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기존 사내이사(최정우 회장, 전중선 사장, 정창화 부사장, 유병옥 부사장) 구성과 마찬가지로 사무직·연구직 중심 이력의 인사들만 포함됐다.
제철소 현장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포스코그룹은 철강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 사내이사 자리로 제철소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할 현장 출신 경영인 몫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지난해 힌남노 태풍 피해를 키운 것은 최정우 회장의 현장 대응 능력 부족으로 판단되고 있는데, 올해 새로 선임되는 사내이사 후보에도 현장 출신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포스코의 발전을 위해서) 현장 출신 인사가 포스코홀딩스 사내이사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임기가 만료된 사내이사는 전중선 사장, 정창화 부사장, 유병옥 부사장으로 이들 중 유병옥 부사장만 유일하게 재선임에 성공했다. 전중선 사장과 정창화 부사장의 빈자리는 정기섭 사장과 김지용 부사장이 채운다. 새로 선임되는 후보들 역시 모두 현장 능력에 의문이 있다. 현장 경력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아서다.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 예정인 정기섭 사장은 포스코인터내셔날 해외관리팀장(2012년)과 경영기획실장(2013년)을 거쳐 2015년 포스코 재무위원에 합류했다. 이후 포스코 국내사업관리실장(2016~2017년)을 거쳐 포스코에너지 기획지원본부장, 포스코에너지 사장 등을 역임했다. 올해 1월부터는 포스코홀딩스 전략기획총괄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제철소에서 이력은 확인되지 않는다.
신규 선임되는 김지용 부사장은 국내 제철소인 광양제철소에서 소장(2021년)으로 1년가량 역임한 이력은 확인되지만 이후에는 현장에서의 이력은 파악되지 않는다. 현재는 연구직군인 포스코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재선임 된 유병옥 포스코홀딩스 친환경미래소재팀장(부사장)도 이전 이력을 보면 △포스코 경영구조선진화TF팀 친환경미래소재팀장, 부사장 △포스코 산업가스·수소사업부장(2021년) △포스코 구매투자본부장(2019년) 포스코 경영전략실장(2017년) △포스코 원료실장(2016년) △포스코 스테인리스원료실장/원료2실장(2015년) 등으로 현장 출신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경력이다.
다만 최정우 회장의 연임에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국세청이 포스코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정부의 압박으로도 해석된다. 과거 정준양 전 회장과 권오준 회장은 국세청 세무조사 전후로 사퇴했다. 최정우 회장이 선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지주회사로 출범한 포스코홀딩스는 투자, 사업기획, 사업회사 관리가 주된 역할이기 때문에 경영능력이 중요하다”면서 “기술 측면에서의 중요성도 고려해 기술전문가인 김지용 연구원장을 사내이사로, 철강전문가인 김학동 부회장을 비상무 사내이사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포스코는 지난 3월 정부(외교부)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에 따라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최근 40억 원을 자발적으로 출연했다. 정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인 일본 기업이 아니라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1965년 대일청구권 자금 수혜를 입은 한국 기업들에서 출연금을 받아 배상하는 ‘제3자 변제’를 추진하고 있다.
대상 기업 중 출연금을 내놓은 곳은 포스코가 유일하면서도 가장 빠르다. '제3자 변제'와 관련해 여론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포스코는 '즉각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서 국민 여론보다 정부 눈치를 더 본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정부의 압박을 받고 있는 포스코의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결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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